얼마 전 이집트를 다녀왔다. 이집트 남동부 아스완(Aswan) 누비안(Nubian) 박물관에는 이집트 여신 이시스가 어린 호루스(Horus)에게 젖을 먹이는 모습을 표현한 "수유하는 이시스(Isis Lactans)" 조각상(그림1)이 있는데, 설명판에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이시스 여신이 어린 호루스 신을 젖먹이는 조각상은 고대 이집트에서 모성의 개념을 상징한다. 후대에 콥트 예술가들은 이 개념을 활용하여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에게 젖을 먹이는 모습을 표현했다.” 무슨 소리일까? 과연 사실이고,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 콥트 미술로 본 성모 마리아와 이집트 여신의 관계
초기 기독교 미술사에서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형상과 고대 이집트 여신이 아기를 안고 있는 조각상 간의 관계는 미술사학자와 종교학자들 사이에서 지속적인 논쟁의 대상이 되어왔다. 일부 학자들은 두 도상 사이의 직접적 영향 관계를 강조하는 반면, 다른 학자들은 이러한 유사성이 과장되었거나 우연의 일치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학술적 논쟁의 맥락을 염두에 두고, 특히 콥트 미술(Coptic Art)이 두 전통 사이의 가교 역할을 했을 가능성을 중심으로 이 관계를 살펴 보자.(그림2)

△ 수유하는 이시스(Isis Lactans): 모성과 재생의 이집트적 상징
고대 이집트 미술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모자 이미지는 여신 이시스가 아들 호루스를 무릎에 앉히거나 품에 안은 형상이다.(그림3) 기원전 3000년경부터 헬레니즘 시대까지 지속적으로 제작된 이 이미지에서 이시스는 왕좌 형태의 머리 장식이나 태양 원반을 쓰고 있으며, 호루스는 매의 머리나 인간 아이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특히 이시스가 호루스에게 젖을 먹이는 '수유하는 이시스(Isis Lactans)' 도상은 모성과 풍요, 보호와 재생의 상징으로 이집트 전역에서 숭배되었다. 특히 신성한 존재에서 나오는 젖은 생명과 신성의 양분을 나타냈다. 이 모자상은 단순한 예술적 표현을 넘어 신화적 서사(오시리스의 죽음과 재생)와 왕권 계승의 정당성을 시각화한 정치-종교적 상징체계의 일부였다.

△ 초기 기독교 성모자상의 양식적 발전
초기 기독교 예술에서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의 형상은 4세기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기독교 공인 이후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특히 5세기 에페소 공의회(431년)와 칼케돈 공의회(451년)에서 마리아가 '테오토코스(Theotokos, 하느님의 어머니)'로 공식 인정받은 후 성모자상은 기독교 도상학의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초기 성모자상(그림4,5)은 카타콤(catacomb)과 비잔틴 아이콘에서 발견되며, 마리아는 후광을 두르고 긴 로브를 입은 채 예수를 무릎에 앉히거나 한쪽 팔에 안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이러한 표현은 점차 ‘호데게트리아(Hodegetria, 길을 보여주는 성모, 그림6)'나 '엘레우사(Eleusa, 자비로운 성모)' 등의 특정 양식으로 정형화되었다.



△ 콥트 미술(Coptic Art): 이집트 전통과 기독교의 만남
이시스-호루스 형상과 마리아-예수 도상은 모두 어머니가 아이를 무릎에 앉히거나 품에 안은 형태를 취하며, 정면성을 강조한 엄숙한 분위기와 위계적 구도를 공유한다. 또한 신성한 모성, 보호, 중재의 상징으로 기능한다는 점에서도 유사하다. 두 전통 사이의 잠재적 연결고리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로 콥트 미술을 들 수 있다. 콥트 미술은 이집트에서 기독교가 발전하면서 형성된 독특한 예술 양식으로, 고대 이집트 전통과 기독교적 요소가 공존하는 모습을 보인다.(그림7) 예컨대, 콥트 미술은 앙크(ankh) 십자가와 같은 이집트 상징을 기독교적 십자가로 재해석하는 등 기존 시각 언어의 의미를 변형시키는 경향을 보인다.(그림8,9)



△ 결론: 종교 도상의 문화적 융합
BBC에서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이시스 락탄스(Lactans)와 마리아 락탄스의 연결성은 알렉산드리아에서 시작되어 초기 기독교 아이콘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특히 이시스와 호루스의 이미지가 당시 지중해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었고, 새로운 종교인 기독교가 익숙한 시각적 언어를 통해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기독교가 이집트에서 발전하는 과정에서, 기존 이집트 문화의 시각적 언어와 상징체계를 완전히 무시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며, 동시에 단순한 모방을 넘어 새로운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는 창조적 재해석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성모자상의 도상학적 전통은 이러한 문화 간 대화와 융합의 복잡한 역사를 반영하고 있다.

전홍철 교수 우석대 경영학부·예술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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