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의 건물들에 설치했던 페이디아스의 조각은 지난 2500년간 가장 위대한 조각품이었다. 그러나 오스만 식민시대에 방치와 전쟁으로 60%가 파괴되었다. 그나마 남아있던 절반 이상의 조각들은 영국 엘긴 백작이 19세기 초 약탈해 ‘엘긴 마블스’란 컬렉션으로 대영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그리스는 줄기차게 반환을 요구했다. 그러나 적반하장, 변변한 박물관이 없는 그리스보다 영국이 더 잘 보존할 수 있다며 번번이 반환을 거절했다. 그리스 정부는 1978년부터 새 박물관 건립을 위해 네 차례나 계획안을 공모하다, 베르나르 추미 안을 채택해 2009년 드디어 새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사진)을 개관했다.

아크로폴리스 동남쪽 대지는 로마와 비잔틴 시대의 도시 유적지이다. 여기에 몇 개의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박물관 건물을 띄워 유적 훼손을 최소화했다. 현대 아테네를 이루는 격자 가로망을 따랐으나 3층은 파르테논 신전의 축선과 일치시켜 23도 비틀려있다. 건축가는 원본 아크로폴리스를 존중해 박물관의 기념비적 성격을 제거했다. 단순한 형태와 명쾌한 수학적 비례는 고전 그리스에 대한 오마주다.
아크로폴리스 발굴 때 출토한 유물을 전시한 1·2층은 거대한 경사로 전시장이다. 신전 도시에 오르는 언덕길을 박물관에 재현한 것이다. 유명한 에레크테이온의 여인 모습 기둥(카리아티드) 원본도 전시되었다. 대부분 유물은 야외용 조각품이라 유리 벽을 통해 자연광을 최대한 도입했다. 3층에 파르테논 신전과 같은 크기의 전시대를 만들어 남아 있던 조각품을 원래 위치대로 부착 전시했다. 둘레에 관람 동선을 꾸려 야외에서 건물 외관을 불러보는 듯한 현장감을 준다.
파르테논 전시실은 비어 있는 부분이 70%나 된다. 사라진 조각품들이 돌아와 빈자리를 채우길 갈망하고 있다. 2021년 유네스코는 영국 정부에 조속히 반환하라고 통고했다. 물론 영국은 여전히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