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북특별자치도립국악원 창극단이 최근 선보인 정기공연 ‘청’을 둘러싸고, 주역 배역의 캐스팅 과정에서 불공정 논란이 불거졌다. 김차경 창극단 예술감독이 오디션이나 내부 심사 없이 자신의 제자이자, 일각에서 ‘조카’로도 알려진 인물을 객원 주역으로 기용한 사실이 알려지며 공정성과 공공성 논란이 거세다.
배역 캐스팅이 예술감독의 권한이라고 해도, 도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립 예술단체는 다르다. 객관적 절차 없이 특정 인맥에 의존해 주요 배역에 앉힌 이번 사례는 명백한 운영 윤리 위반이자 권한 남용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특히 ‘청’은 김 감독 임용 이후 사실상 처음 선보이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실망감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크다.
국악원 안팎에 따르면, 해당 객원 배우는 별도의 오디션 없이 발탁됐으며, 김 감독의 제자일 뿐 아니라 친인척 관계라는 말까지 돌고 있다. 김 감독은 “제자일 뿐”이라 해명했지만, 국악계 안팎에서는 “그렇다면 제자를 주역에 절차도 없이 캐스팅하는 것은 문제가 아닌 것이냐, 감독이 창극단을 사유화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날선 지적도 나온다.
이로 인해 창극단 단원들의 사기 저하와 박탈감도 심각해질 수 있다는 비판도 뒤따른다. 전직 단원 A씨는 “고작 2회 공연을 위해 더블캐스팅까지 하면서 제자도 아닌 조카를 기용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분노했다”며 “이는 조직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공립 예술단체인 창극단은 그 자체로 ‘예술 공공성’의 표본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번 캐스팅을 통해 드러난 것은 철저한 폐쇄성과 인맥 의존적 조직문화다. 국악계의 도제식 전통이 여전히 뿌리 깊게 작동하고 있으며, 상명하복 문화 탓에 내부의 문제 제기도 어려운 실정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곪아 터져도 내부에서는 아무 말도 못한다”는 국악원 안팎의 증언이 이를 방증한다.
문제는 단지 김 감독 개인의 일탈에만 그치지 않는다. 이 같은 결정을 묵인하거나 승인한 유영대 국악원장에 대한 책임론도 불가피하다. 공립 예술단체를 관리·감독해야 할 기관장이 조직 내 공정성과 투명성을 바로잡지 못한 데 따른 후폭풍은 결국 국악원 전체의 신뢰도 추락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유 원장에게 수차례 전화와 문자로 입장을 문의했으나, “일정이 바쁘다”는 이유로 응답을 회피했다. 공립예술단체 수장으로서 책임 있는 자세를 보이지 못했다는 비판이 따른다.
반면, 또 다른 전직 단원 B씨는 “캐스팅은 예술감독 입장에서는 권한이며, 기존 단원들도 외부에서 실력 있는 객원이 오면 긴장하고, 경쟁의 대상으로 삼아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서 다른 시각도 제시했다.
예술계 일각에서는 이번 일을 계기로 도립예술단체 운영 시스템 전반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객관성을 확보한 외부 심사위원제 도입, 투명한 오디션 절차 명문화, 그리고 내부 구성원이 자유롭게 의견을 제기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공립 예술기관의 신뢰는 투명한 절차와 조직문화에서 비롯된다. 전북특별자치도는 이번 논란을 단순 해프닝으로 넘기지 말고, 제도 개선을 통해 공공예술단체의 책무성과 신뢰를 강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전언이다.
김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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