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로봇 마라톤이 예고하는 중국 로봇의 ‘딥시크 모멘트’

2025-03-09

지난 1월 중국 최대의 명절인 춘절 갈라쇼에서 항저우의 로봇 기업 유니트리는 휴머노이드 로봇 무용단을 공개했다. 음악에 맞춰 좌우로 이동하면서 양손으로 손수건을 빠르게 360도 돌리고, 공중으로 던졌다가 다시 받는 등 사람뿐 아니라 그동안 공개되었던 어떤 로봇보다도 곡예에 가까운 동작을 실수 없이 해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지난달에는 CES 2025에서 주목받은 휴머노이드 로봇 G1의 쿵푸 영상을 공개했다. 부드럽고 섬세한 손동작과 날렵하고 민첩한 돌려차기를 연속적으로 보여주면서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리고 3월, 중국 최대 정치 행사인 양회에서 중국 지도부는 인공지능과 휴머노이드 로봇 등 첨단 기술의 성과를 집중적으로 치하했다. 인공지능만 잘하는 줄 알았던 중국이 언제 휴머노이드 로봇도 잘하게 되었을까? 어떻게 된 걸까.

놀라운 중국 휴머노이드 로봇

세계 3대 로봇 도입국으로 도약

젊고 유능한 청년 인재 몰려와

한국, AI에 로봇까지 뒤져서야

중국 휴머노이드 로봇의 가장 큰 경쟁력은 ‘실전 경험’이다. 연구실 안에만 머물지 않고 공장에서, 거리에서, 무대에서 넘어지고 부딪히면서 축적한 데이터와 노하우가 가장 큰 장점이다. 2016년에 설립된 중국 선전의 대표적인 휴머노이드 로봇 기업 유비테크는 올해 세계 최초로 자사의 로봇 워커를 팀 단위로 전기차 기업 지커의 생산 라인에 도입했다. 영상에 공개된 휴머노이드 로봇들은 마치 인간 노동자들처럼 부품을 서로 주고받고, 큰 물건은 함께 들고 이동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덕분에 작업의 속도와 정확도가 큰 폭으로 개선되었다고 한다. 다칠 위험이 있는 단계의 작업은 전적으로 로봇 팀이 수행하기 때문에 근로자의 부상 위험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지난해 갓 설립된 후발주자 애지봇의 행보는 더욱 과감하다. 소프트웨어부터 하드웨어까지 주요 기술을 자체 개발한 것뿐 아니라 오픈소스로 공개하기까지 했다. 게다가 완성품 외에도 모듈별 DIY(Do it Yourself) 키트를 제공하고 있어 사용자가 목적과 용도에 맞게 맞춤형으로 활용할 수 있다.

신기술에 열광하는 14억 소비자

중국 소비자들은 지난 10여년 간 모바일 페이, 원격 의료, 로보택시 등을 경험하며 세계 최고의 얼리어답터로 성장했다. 신기술에 대한 거부감이 낮고, 구매에도 매우 적극적이다. 춘절 공연에 열광한 중국 소비자들은 유니트리의 휴머노이드 제품 G1, H1이 예약 판매를 개시하자마자 품절시켰다. 중국 기업들 역시 경쟁력 강화를 위해 로봇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자동차 기업 외에도 알리바바·핀둬둬 같은 물류 기업, CATL·하이얼과 같은 첨단 제조업, 그리고 멍니우 같은 유제품 기업까지 대다수 산업의 중국 기업들은 생산라인의 로봇화에 몰두하고 있다. 실제로 중국은 지난 4년 동안 전 세계에서 로봇 도입이 가장 급격하게 상승하며, 세계 3대 로봇 도입국으로 도약했다. 중국 기업은 더 이상 저렴하고 풍부한 노동력의 상징이 아닌 로보타이제이션(robotization·로봇화)의 첨병으로 거듭나고 있다.

2025년 양회에서 중국은 올해 연구개발(R&D) 투자 예산 규모를 전년 대비 10% 증가한 4조 위안(약 800조원)으로 책정했다. 이러한 추세라면 중국은 2027년 R&D 1000조원 시대를 열게 된다. 전 세계적인 경기 침체와 국가 R&D 예산 투입 감소에 역행하는, 국내총생산(GDP)보다 R&D 예산이 더 큰 폭으로 증가하는 몇 안 되는 국가다. 청년 인재들의 휴머노이드 로봇 분야 유입도 주목할 만하다. 유니트리 창업자 왕싱싱(1990년생), 애지봇 창업자 펑즈후이(1993년생), 유닉스AI 창업자 양펑위(2000년생) 등 젊고 유능한 인재들이 중국 휴머노이드 로봇 분야를 이끌면서 새로운 혁신을 만들어 내고 있다. 중국 정부는 과학기술과 첨단산업의 전폭적인 투자와 청년 인재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어, 향후 더 많은 예산과 더 많은 청년 인재가 유입될 것으로 보인다.

돈과 인재가 몰려드는 ‘로봇 골드러시’

다음달 13일, 중국 베이징의 로봇 혁신 클러스터 이좡(E-town)에선 세계 최초의 휴머노이드 로봇 하프 마라톤 대회가 열린다. 휴머노이드 로봇과 일반 참가 선수들이 동일한 코스를 달리게 되는데, 로봇은 3시간 30분, 일반 선수들은 3시간 10분 이내에 완주해야 한다. 왜 로봇이 바퀴 없이 사람과 똑같이 뛰어서 마라톤을 완주해야 할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 질문의 답은 2004년 미국 모하비 사막에서 개최한 자율주행 그랜드 챌린지에서 찾을 수 있다. 사람의 개입 없이 사막을 완주해야 한다는 조건만 제시한 이 대회는 결과적으로 자동차의 발전이 아니라, 스스로 학습하고 판단하는 심층학습의 발전을 가속화시켰다.

이번 로봇 마라톤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로봇이 21㎞ 코스를 얼마나 빨리 달리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복잡한 환경 인식과 판단, 균형 유지와 에너지 효율 등 마라톤을 완주하는 과정에서 해결해야 할 수많은 난제가 휴머노이드 혁신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가능성이 크다. 2016년 3월 우리나라에서 개최된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은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그때 우리는 늦었고, 중국은 빨랐다. 2017년 차세대 인공지능 발전 전략을 세우고 단숨에 글로벌 AI G2로 도약했다. 2025년 4월 베이징 로봇 마라톤이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휴머노이드 로봇의 ‘딥시크 모먼트’가 오고 있다. 이번엔 우리가 먼저 달려야 한다.

◆백서인=중국 광둥에서 중·고교를 졸업하고, 베이징 칭화대 학부에서 정밀기계 공학을 전공했다. 이후 한국에 돌아와 KAIST에서 기술경영으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을 거쳐 2023년 한양대 교수로 부임, 중국의 과학기술 첨단산업을 가르치고 연구하고 있다.

백서인 한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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