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 지역 혁신 성장의 동력, 과학기술 인재 양성이 답이다

2024-10-21

“만약 1년을 계획한다면 쌀을 심고, 10년을 계획한다면 나무를 심으며, 100년을 계획한다면 사람을 교육하라.”

제(齊)나라 정치가인 관중의 사상이 담긴 책 '관자(管子)'에는 이같은 구절이 있다. 이 명언은 인재와 지혜를 키우는 것의 중요성과 지속 가능한 발전은 사람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지금은 바야흐로 복합적 위기, 항구적 위기의 시대다. 장기간 경기 침체와 인공지능(AI)의 급격한 확산으로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렵다. 이러한 초불확실성 시대일수록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가장 중요하고 확실한 투자는 바로 '사람'이다.

과학기술과 이를 수행하는 인적자원은 혁신을 위한 핵심 요소다. 특히 지금은 '기정학(技政學)의 시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기술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과거 국가 간 힘이 영토의 크기, 인구의 규모, 군사력의 정도로 결정됐던 것과 달리 4차 산업혁명, AI 등 급격한 산업 변화와 함께 이제는 과학기술과 우수한 과학기술 인재를 얼마나 보유하느냐에 따라 그 나라 힘과 부를 결정하고, 나아가 미래를 결정하는 시대가 됐다.

◇수도권 과밀화 현상과 지역의 혁신 인재 부족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는 저출산에 따른 인구 감소, 수도권 인구와 자원 과밀화 등으로 인해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기준 합계출산율은 0.72명으로 OECD 국가 중 최하위를 기록하며 인구 감소세가 뚜렷하다.

또 국토 면적의 약 12%에 해당하는 서울, 경기, 인천에 전체 인구의 50%가 거주하고 있는 수도권 과밀 문제로 다양한 사회적, 경제적 문제에 직면해 있다.

주택 수요가 급증하면서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인해 중산층 및 저소득층에게 주거 부담이 가중되고 있으며, 수도권에 집중된 양질의 교육, 의료, 문화 인프라는 지역 인구 수도권 유입을 가속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는 곧 지역 인구 감소와 더불어 일자리를 감소시켜 지역 소멸 위기까지 초래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의 '2023년 지역 과학기술혁신 역량 평가' 중 지역 과학기술 인재 혁신역량을 간접적으로 나타내는 △인적자원 △지식자원 △지식창출 항목 조사 결과 또한 주목해야 한다.

조사 결과를 보면 총 연구원 수를 나타내는 인적자원 항목에서 17개 시·도 중 경기와 서울이 전체의 62.5%를 차지하고 있다. 과학기술 논문과 특허 수를 나타내는 지식자원 항목과 논문 및 특허 품질을 나타내는 지식창출 항목에서도 경기, 서울이 상위권을 유지해오고 있다.

반면 나머지 지역은 모든 항목에서 경기의 절반 이하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5년간 상·하위 지역 분포가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지역 간 인재 혁신 격차가 굳어지고 있으며, 이는 단기간 지역 과학기술 인재 혁신역량을 끌어올리기 어렵다는 점을 시사한다.

그렇기에 지역 혁신을 통한 우수 인재 유입과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지역 우수역량 결집을 통한 성공사례에 주목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지역 우수역량을 결집해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낸 사례들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충북도와 경북도 사례에서 성공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충북도 국가첨단전략산업 이차전지 특화단지 지정이 하나의 예이다. 충북에는 이차전지 관련 기업들이 이미 소재해 있었지만, 이들 간 협력과 산업 확장은 구심점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충북도는 지역 혁신기관과 과학기술 인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청주시, 관련 대기업 및 중소기업, 충북테크노파크 등과 협력해 소재·부품·장비 기업과 대기업 간 시너지를 도모했다. LG에너지솔루션, 에코프로비엠 등이 참여해 중견기업 육성과 이차전지 인재 양성까지 고려한 국가첨단전략산업 이차전지 특화단지 청사진을 마련했다.

2030년까지 매출 196조원, 부가가치 51조원, 고용 14만5000명을 전망하고 있다. 지역 내 다양한 이해관계자 간 협력으로 지역 경제 활성화뿐 아니라 관련 분야 인재가 지역에 정주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경북도의 안동·포항 바이오 분야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 선정도 주목할 만하다. 경북도는 SK바이오사이언스, 국가첨단백신기술센터 등 안동의 백신 생산 기반 강점과 포스텍, 가속기연구소 등 포항의 연구 인프라 및 과학기술 인적자원을 결합해 첨단 바이오 의약품 기술 개발과 산업 확장을 추진하고 있다.

아울러 5년간 1조원 규모 민간투자 펀드 조성을 통해 지역 내 관련 스타트업과 인력을 육성하는 데 주력하면서 바이오산업 새로운 허브로 부상하고 있다.

◇지역 과학기술 혁신을 위한 협력과 역량 강화 필요

이처럼 지역 과학기술 혁신을 위해선 무엇보다도 중앙 및 지방정부 등 다양한 관련 기관 간 긴밀한 협력체계가 요구된다.

현재 지역이 직면한 위기는 다차원적인 원인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중앙과 지방 어느 한쪽 노력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중앙 정부는 국가 균형발전 관점에서 정책을 수립하고, 지방정부는 지역 특성에 맞는 맞춤형 정책을 추진해 자율적 성장 동력을 발굴해야 한다.

지역 과학기술 정책·사업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인력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물론 지역 과학기술 인력 혁신역량을 단시간에 끌어올리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과학기술 환경 변화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어 지역 과학기술 인력도 지속해서 새로운 기술과 관련 지식을 습득해야 한다.

이것이 선행돼야 중앙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과 사업을 지역 실정에 맞게 반영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역 정책을 효과적으로 수립·운영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따라 국가과학기술인력개발원(KIRD)은 지역 발전 성공사례와 현장 목소리, 제6차 지방과학기술진흥종합계획에 근거해 지자체 연구개발(R&D) 담당 공무원, 전국 R&D 지원단 및 테크노파크 재직자 등을 대상으로 지역 과학기술 정책 기획과 실행 역량 등 지역 과학기술 인력 혁신역량 강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 지자체와 협력체계를 강화해 지역 과학기술 인력이 중앙 정부 정책을 지역 실정에 맞게 적용하고, 지역 특화 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이를 위해 지역 과학기술 인력 영역별(기본, 전문, 특화, 해외연수) 교육체계를 단계적으로 수립하고, 지역별 특성과 혁신 우수사례 공유를 위한 교육과정을 개발·보급함으로써 지역의 자생적 혁신역량 강화에 힘쓰고 있다. 향후에는 지역 과학기술 인력 교육을 전담하는 기관으로서 역할을 단계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지역 소멸을 지역 활력으로

실리콘밸리는 혁신의 중심지로 발전하기 전 '과수원의 계곡'이라 불리는 농업 지역이었지만, 샌프란시스코시는 스탠퍼드대학 부지를 저렴하게 임대해 기술 기업 정착을 유도했다.

그 결과 우수 인재 유입과 더불어 다수의 전자 스타트업 설립이 이어지며 지역 내 기술 기반 기업 성장 환경이 조성됐다. 1960년대 반도체 산업 성장과 함께 현재는 애플, 구글 등이 자리 잡은 세계적인 기술 혁신의 중심지로 거듭나게 됐다.

시애틀 또한 2010년대 초반 기업에 매력적인 도시가 아니었다. 주 정부와 시의 주거 및 교통 환경 개선, 각종 규제 완화 정책 등으로 정주 환경이 개선되고 아마존, MS 등 고용으로 '전 세계 클라우드 수도'가 된 것이다.

이처럼 중앙 정부와 지자체, 대학 및 연구기관, 혁신 기업들의 실질적인 협력체계와 파격적인 규제 혁파는 지역으로의 우수 인재 유입과 지역 산업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실질적인 해법이 될 것이다. 우리는 현재 지역 소멸을 막을 골든타임에 놓여 있다는 것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배태민 국가과학기술인력개발원 원장 baetmin@kird.re.kr

〈필자〉 경북고, 서울대 원자력공학과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원자력공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90년 과학기술부 사무관으로 공직에 입문한 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과학기술위원회 등 주요 요직을 두루 거쳤다. 이후 대통령실 과학기술비서관 선임행정관, 국립중앙과학관장, 육군미래혁신연구센터장을 역임하며, 2023년 8월 제6대 국가과학기술인력개발원장에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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