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헝거게임> 시리즈로 유명해진 소설가 수잔 콜린스가 원작 <캣칭 파이어>를 쓰게 된 배경이 새삼 회자되고 있다. 수잔 콜린스가 원작을 구상하게 된 때는 바로 이라크 전쟁이 발발했던 2003년이었다. TV를 켜고 채널을 돌려보니 화려한 무대에서 거액의 상금을 놓고 경쟁하는 예능이 펼쳐졌다. 그리고 다른 채널에는 이라크 전쟁이 시작한 뒤 쏟아지는 뉴스가 있었다. 그렇게 채널을 번갈아 돌리는 순간 느껴진 괴리감을 담아 미래 계급사회의 암울한 서바이벌 게임과 혁명을 담아낸 소설이 완성된 것이다.
2024년 대한민국의 상황도 비슷했다. 한 편에는 내란의 실체가 하나둘 드러나면서 분노하는 시민들의 집회 장면이 나오고, 또 다른 편에는 화려한 드레스와 연미복으로 차려입은 연예인들을 초청한 연말 시상식이 등장했다. 특히 12월 21일 저녁부터 36시간 동안 계속된 이른바 ‘남태령 대첩’ 때가 정점이었다.
양곡법 거부와 내란 정국을 규탄하며 상경한 농민들의 트랙터가 경기도까지 아무 탈 없이 올라오다 서울 입구 남태령에서 막히자 시민들이 달려갔다. 그리고 수천 명이 함께 밤을 지새며 농민들을 지켰고, 결국 과잉 진압 계획을 세웠던 경찰을 돌려세우고 차벽을 치우게 만들었다. 매우 긴박했지만 약자들의 연대가 얼마나 강한지 보여준 역사 현장이었다.
다음날에는 가수 이승환이 구미시에서 12월 25일에 열기로 한 콘서트〈HEAVEN>이 구미시장의 독단으로 취소됐다. 구미시장은 안전상의 이유라고 했지만, 내란에 동조하는 성명불상의 극우세력을 등에 업고 탄핵 집회 무대에 올랐던 이승환의 입을 막으려 했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공연 주최 측은 경찰의 협조를 받고, 경비업체를 통해 안전한 공연 준비를 마친 상태였지만, 구미시장은 이승환에게 정치 발언을 않겠다는 서약서를 요구했다. 따라서 표현의 자유를 막고 정치 중립을 버린 결정을 구미시장이 내렸다는 비판이 힘을 얻고 있다.
다음날 크리스마스이브에는 1990년대 문화 대통령으로 불렸던 서태지가 팬들에게 현 시국에 대한 걱정을 담은 메시지를 남겼다. 탄핵 집회에 나서는 팬들을 걱정하면서, 20대 친구들의 많이 참여하는 것을 특별히 언급했다. 그리고 서태지는 “이제는 우리가 미래를 이끌어갈 젊은 그들을 변함없이 지지해줄 수 있는 삼촌, 이모가 돼주자”라는 말로 자신의 노래 <시대유감>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내란과 탄핵의 물결 속에 이렇게 대중문화계도 자유로울 수가 없다. 사실 크게 일렁거리며 앞장서는 연예인들이 있다. 하림, 박규리, 조진웅처럼 평소 사회문제에 대해 발언을 해왔던 이도 있지만 아이유, 소녀시대 유리, 뉴진스처럼 아이돌들이 집회에 참석하는 팬들을 위해 식당과 커피숍을 선결제한 사실이 알려지고 있다.
내란이 벌어진 후 집회 때마다 아이돌 문화의 하나였던 응원봉이 촛불보다 더 환하게 광장과 거리를 밝히고 있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남태령에서 트랙터가 막히자 체포를 각오했던 농민이 하룻밤을 시민들과 보낸 후 적은 후기도 그 상황을 잘 보여준다. “나는 그들의 음악을 유심히 들었는데 티어스와 밤이면 밤마다, 여행을 떠나요, 남행열차, 질풍가도, 다만세와 로제의 아파트 윤수일 아파트와 BTS 등을 불렀고 여기에 적지 못한 노래가 더 많다.”
내란을 획책하고 옹호하는 자들은 사람들의 입을 막고 눈과 귀를 가리려고 하겠지만 세상은 바뀐 것이다. 과거의 운동과 또 다른 그리고 새로운 물결은 막을 수 없다.
배문석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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