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코발트 생산지 민주콩고
구리·우라늄·금·은 등 자원 부국
1인당 국내총생산 세계 최하위권
배경엔 ‘절대적 착취 시스템’ 존재
노예·아동 노동·인신매매 등 만연
서구 식민지 때부터 이어온 ‘수탈’
독립 이후에도 강대국 탐욕에 희생
멈추지 않는 ‘핏빛 착취’ 현장 고발
아프리카 중부 국가 콩고민주공화국(민주콩고)은 세계 최대의 코발트 생산지다. 2021년 기준 전 세계 코발트 공급량의 72%에 해당하는 총 11만1750t이 민주콩고에서 생산됐다. 코발트는 스마트폰, 태블릿PC, 노트북, 전기자동차에 사용되는 리튬이온 배터리의 핵심 재료로 수요가 폭증하고 있다. 민주콩고는 이외에도 구리, 철, 아연, 게르마늄, 텅스텐, 우라늄, 금, 은 등이 풍부하게 매장된 ‘자원 부국’이다. 그러나 민주콩고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전 세계 최하위권이다. 풍부한 자원과 극심한 빈곤의 공존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현대판 노예제 연구자인 영국 학사원 교수 싯다르트 카라에 따르면 민주콩고에서는 코발트를 더 많이, 더 빨리 추출하기 위한 “절대적 착취 시스템”이 국가를 재앙으로 몰고 가고 있다.
코발트 레드
싯다르트 카라 지음 | 조미현 옮김
에코리브르 | 368쪽 | 2만3000원
“2022년 현재, 깨끗한 코발트 공급망 같은 것은 콩고에 존재하지 않는다. 민주콩고 출처의 코발트는 모두 노예제, 아동 노동, 강제노동, 채무 노동, 인신매매, 위험하고 유독한 작업 환경, 초저임금, 부상과 사망, 극심한 환경 공해 등 갖가지 차원의 학대로 얼룩져 있다.”
카라 교수가 쓴 <코발트 레드>는 민주콩고에서 코발트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핏빛 착취’의 현장을 고발하는 책이다. 코발트 생산 중심지인 루알라바주 콜웨지에서 끝나는 저자의 여정은 책에서도 언급된 조지프 콘래드(1857~1924)의 소설 <암흑의 핵심>을 닮았다.
민주콩고에서 코발트 채굴은 대부분 중장비 대신 사람의 노동으로 이뤄진다. 광부들은 곡괭이, 삽, 쇠꼬챙이 같은 기초 도구를 사용해 땅을 파내고, 큰 돌은 망치로 부순다. 이렇게 파낸 흙과 돌을 물웅덩이로 가져가 헤테로제나이트(코발트 광석)를 걸러낸다.
광부들이 하루 종일 40~50㎏의 헤테로제나이트를 채굴하고 받는 돈은 2000~2500콩고프랑(1.10~1.40달러)에 불과하다. 채굴장은 먼지 구덩이다. “땅을 파헤칠 때마다 흙먼지가 유령처럼 피어올라 사람들의 폐 속으로 들어갔다.” 사고가 일어날 위험이 높고 각종 중금속에도 노출돼 있지만 채굴장 주변에는 변변한 위생시설조차 없다.
저자가 “끔찍한 환경”이라고 말하자 한 주민은 이렇게 대답한다. “아뇨! 우리는 우리 무덤에서 일하고 있소.”
특히 문제가 되는 건 아동 노동이다. 가용한 모든 노동력을 동원해야 가계를 꾸릴 수 있는 가난한 가정에서 아이들은 날마다 학교 대신 채굴장으로 향한다. 저자가 목격한 광부 중에는 8세 아동도 있었다. 갱도를 내려가다 발을 헛디뎌 다리가 골절되거나 하반신이 마비되기도 하고, ‘네고시앙’이라 불리는 상인과 직접 거래를 시도했다는 이유로 군인이 쏜 총에 맞기도 한다. 최악은 터널 붕괴로 사망하는 경우다. 소녀들은 이 같은 위험 이외에도 남성 광부, 네고시앙, 군인의 성폭력에 노출돼 있다. 10대 소녀들이 성폭행으로 태어난 아이를 업고 채굴 현장에서 일하는 모습도 드물지 않다.
마치 국가 전체가 ‘착취 기계’처럼 돌아가는 것 같은 민주콩고의 암담한 현실 뒤에는 서구인들의 탐욕이 빚어낸 비극적 역사가 자리 잡고 있다.
벨기에 국왕 레오폴드 2세(1835~1909)는 1885년 현재의 민주콩고 지역을 자신의 사유지로 선포하고 수탈에 나섰다. 레오폴드 2세의 군대는 원주민 남성들이 고무 채취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마을에 남는 가족의 손과 코, 귀를 잘랐다. 1960년 마침내 독립했으나 독립 영웅 파트리스 루뭄바 총리가 자원 국유화를 선언하자 미국, 유엔, 벨기에가 제동을 걸었다. 미국은 애초 루뭄바를 암살하려던 계획을 접고 군 책임자였던 조제프 모부투의 쿠데타를 지원했다. 벨기에는 자원이 많은 카탕가주 정당 대표 모이즈 촘베와 손을 잡고 루뭄바 총리를 고문한 뒤 총살했다. 서방 세력을 등에 업은 모부투는 32년 동안 통치하면서 국가의 자원을 서방에 내주고 이익을 편취했다.
모부투도 쿠데타로 실권했는데, 새로 집권한 로랑 카빌라 또한 국가를 “개인의 부를 축재하는 기계”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벨기에 식민주의자들이나 모부투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이후 1990년대 말 이웃 르완다의 내전을 계기로 최소 500만명의 민간인이 사망하는 혼란을 겪은 뒤 2019년 최초로 평화적 정권 교체가 이뤄졌으나 서구인들이 물러간 자리를 지금은 중국인들이 차지하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2000년 이후 아프리카에 도로, 댐, 공항, 교량 등을 건설해주고 자원에 대한 접근성을 확보한다는 정책을 추진해온 중국은 민주콩고의 코발트 광산업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카빌라의 후계자로 2019년 취임한 치세케디 대통령은 중국 광산 회사들을 상대로 투명성을 높이고 근로조건을 개선하라는 압력을 넣고 있어 향후 귀추가 주목된다.
저자는 CATL, BYD, 한국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이노베이션, 삼성과 파나소닉,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델, 테슬라, 포드, 제너럴모터스, BMW, 다임러·크라이슬러 등 코발트 공급망의 꼭대기에 자리 잡은 글로벌 기업들의 이중성도 비판한다.
이들 기업은 대외적으로 자신들이 국제 인권 규범을 준수하고 있으며 아프리카 최빈층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그러나 “누가 콩고까지 가서 그들의 주장이 거짓이라 입증할 것이며, 설사 입증한다 해도 누가 그것을 믿겠는가”라고 반문한다.
“하지만 진실은 여기에 있다. 바로 코발트에 대한 수요와 스마트폰, 태블릿PC, 노트북 및 전기차 판매로 축적되는 막대한 수익이 없다면 ‘코발트 때문에 피 흘리는’ 경제 자체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