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탄핵 여부 놓고 대한항공 기장∙부기장 몸싸움
정치적 성향 따라 교제 거부하는 사례 늘어
“남편이 동료 따라 A정당에 후원금을 낸 사실을 알고 너무나 화가 나더라고요. 남편은 정치적 색깔이 없는 사람인데 친구 말 듣고 함께 후원금을 냈더라고요. 제가 성향이 분명한 편이라서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어요. 만약 다음에 또 남편이 그 당을 후원하면 크게 부부싸움을 할 것 같네요.”
결혼 전 상대의 정치적 성향을 주요 조건 중 하나로 고려했던 B씨는 딱히 성향이 없는 남편에게 합격점을 줬다. 그런 남편이 주변 권유에 B씨가 지지하는 정당과 대척점에 선 곳을 후원한 것을 알고는 격정에 휩싸였다. 다행히 남편이 확고한 주관을 갖고 움직인 게 아니란 걸 파악하고는 앞으로 자신과 상의하라고 거듭 당부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까운 이와 생각이 다를 경우 말을 삼가며 충돌하지 않도록 노력한다. 그러나 애초에 불편한 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이념적으로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무리지으려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사회 갈등이 심해지면서 정치적 성향이 친밀한 관계에 미치는 영향도 커지고 있다.
대한항공 기장과 부기장이 윤 전 대통령 탄핵 여부를 놓고 주먹다짐을 했던 게 대표적 사례다. 지난해 12월 대한항공 인천발 브리즈번행 노선을 운항한 두 사람은 호주의 한 호텔에서 탄핵과 관련해 대화를 나누다가 몸싸움을 벌인 사실이 최근 뒤늦게 알려졌다.
정치적 성향에 따른 한국인의 분열은 상당한 수준이다. 2023년 한국행정연구원의 ‘사회통합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6명(58.2%)은 정치적 성향이 다를 경우 연애 및 결혼을 할 수 없다고 답했다.
학력이 짧고 소득수준이 낮을수록 배척 성향이 강하게 나타났다. 학력별로 중졸 이하는 71.45%가 정치 성향이 다른 사람과의 교제를 거부했고 고졸은 55.6%, 대졸 이상은 54.49%이 그렇게 응답했다.

소득 수준으로는 가장 낮은 1분위의 61.37%가 배척 성향을 보였고 2분위는 60.1%, 3분위 56.66%, 4분위 55.26%, 5분위 51.89% 순이었다. 소득이 높을수록 그나마 교제를 거부하는 비율이 낮아진 것이다.
연령별로는 나이가 많을수록 거부 비율이 높았다. ‘청년’은 51.81%가 정치 성향이 다르면 연애 및 결혼이 안 된다고 답했고, ‘중장년’은 56.62%, ‘노년’은 68.64%가 배척 성향을 보였다.
정치 성향이 다른 친구∙지인과는 술 자리를 갖지 않는다는 응답은 33.02%로 나타났다.
재혼을 바라는 남성이 여성의 ‘가사’ 능력 보다 정치 성향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재혼정보업체 온리-유, 결혼정보회사 비에나래가 지난해 1월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남성 응답자는 여성의 ‘경제 관념’(29.5%)이 가장 중요하다고 답했고 ‘자녀관’(23.6%), ‘정치 성향’(18.7%), ‘가사에 대한 인식’(15.1%)이 뒤를 이었다.
남녀가 소개팅하기 전에 ‘어느 당을 지지하는지’를 묻는 풍속도 생겨난 상태라고 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곽윤경 부연구위원은 ‘사회갈등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 변화와 시사점’ 보고서에서 “(사회통합실태조사에) 참여한 응답자들은 남녀 갈등 보다 진보와 보수 간 갈등이 더 심각하다고 인식하고 있다”며 “정치 영역의 갈등이 다른 사람과의 교제 의향에도 부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현미 기자 engine@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