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칼럼] 누가 밥상을 엎었을까?

2024-09-22

파동 신세계연합의원 원장

2주 전, 3년을 끌어오던 한 의료사고에 대한 법원 판결이 내려졌다. 복통으로 전남대 병원으로 전원된 6세 소아가 장폐색으로 진단받고 응급수술을 받은 후 사망한 사건이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의료진의 진단에 문제가 없고, 의료적 처치에 과실이 없으며, 동의서를 받은 후 수술에 들어갔으니 의료진의 과실은 없다고 명시했다. 즉 의료진의 과실이 없다는 것을 법적으로 명확히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보호자가 주장하는 ‘설명의무 위반’에 대해 유죄를 인정, 2천만원의 배상 판결을 내렸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판결이다.

소아의 장폐색은 그 원인이 심각한 경우가 많고, 폐색 자체의 합병증도 위급 또는 중한 경우가 많아 시간을 다투는, 그야말로 소아 외과의 응급 중의 응급 질환이다. 이는 이번 배상판결의 이유인, ‘수술 여부에 대한 환자와 보호자의 선택권’이 매우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는 뜻이다. 즉, 수술 전 동의를 위해 설명을 하든 또는 못하든 수술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인 것. 더군다나 전남대 의료진은 수술 전 동의서를 다 받았고, 동의서에 사인을 한다는 것은 수술과 관련된 일체의 설명을 들었다는 말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사는 확실한 설명의 증거인 동의서와 해당 보호자의 서명은 무시하고, 보호자의 주관적인 주장만을 받아들여 유죄를 선고하고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해당 의사는 호남 지역 전체에 단 한 명 밖에 없는 소아외과 전문의다. 그야말로 사명감 하나로 버티던 의사라는 얘기. 그런 그에게 판사는 ‘당신은 죄가 없지만 환자가 죽었으므로 어쨌든 죄가 있다’라고 명시를 한 것이다. 넌센스도 이런 넌센스가 없다. (이밖에도 70대 환자가 어깨 수술을 받다 갑작스런 심정지로 사망한 사건에 대해 법원은 의사와 병원에 무죄를 선고하면서 동시에 무죄이지만 민사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황당한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 판결을 해당 의사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죄가 있다 하니 겸허히 수용하고 의사라는 사명감의 무게로 억울함을 감내하게 될까, 아니면 최선을 다해 진료하고 잘못이 없어도 모든 환자들의 치료 결과를 짊어지고 가야 한다면 이쯤에서 호남지역 소아외과의의 마지막 메스를 내던지게 될까?

법이 상식을 벗어나면 법을 집행하는 자에게 권한이 집중되고 그 권한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다시 앞선 판결을 인용하여 또 잘못된 판결을 내리는 소위 ‘순환논리’에 빠지기 쉽다. 의사의 과실은 없지만 환자가 잘못됐으니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고, 이런 책임은 다른 판결에 서로서로 영향을 미치면서 많은 ‘무죄’가 죄없는 ‘유죄’가 되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정브리핑에서, 현재 응급실 뿐만 아니라 1차, 2차, 3차 병의원의 의료 전달체계는 원활히 돌아가고 있으며 언제든 응급실에 가보라는 권유까지 했다. 필자는 윤석열 대통령 본인이 최근 한 번이라도 응급실을 가 본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 한 번이라도 가서 해당과 의료진의 부재로 구급차에서 내리지도 못하는 환자들을 본 적이 있는지말이다. 병식(병에 걸렸다는 자기 인식)이 있어야 치료가 가능하고, 현실인식이 정확해야 정부 수반으로서 적절한 처방이 가능한 것은 당연지사, 그러나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브리핑은 그런 일말의 기대마저 포기하게 만들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나는 언제나 맞고, 나에게 맞서는 너희들은 언제나 틀렸다’ 는 것이다.

의사는 적어도 의료적 상황에 대해서는 소위 ‘촉’이라는 게 극도로 발달한 직역군이다. 큰 사고로 일반인들이 봤을 땐 도저히 살 가망이 없어보이는 환자라도, 의사의 눈에는 응급이 아닌 경우도 있고, 반대로 단순이 소화가 안된다는 컴플레인을 하는 경증 환자도 의사들의 머리숱을 쭈뼛 서게 만드는 초응급 상황이 되기도 한다. 무슨 뜻이냐면, 의사들 눈에는 충분히 살릴 수 있는 환자들의 죽음이 보인다는 것, 살릴 수 있지만 살릴 수 없는 시스템으로 간다는 것, 하지만 그 시스템에 손댄 또는 손댈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이의 눈에는 절대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이없는 판결로 의사들로 하여금 살릴 수 있는 무수한 환자를 외면할 수 밖에 없도록 몰고 간 판사들과, 지지율 폭락을 얘기하지 않더라도, 의사들의 희생으로 힘겹게 돌아가고 있던 시스템을 아무 근거도 없는 소위 ‘뇌피셜’ 정책을 들고나와 재난적 상황을 만든 대통령과 보건복지부의 헛발질 퍼레이드를 국민들은 알고 있을까? 이제는 어렵게 차린 밥상을 엎은 이가 누군지 국민들은 알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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