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전 문화가 다시 돌아오고 있는가?

2024-11-27

어느 날 현직 교사들이 진행하는 팟캐스트를 우연히 듣게 됐다. 요즘 학생들의 읽고 쓰는 능력과 흥미 저하를 우려하는 내용이었다. 해당 방송에서 ‘고등교육 연대기’(The Chronicle of Higher Education) 저자 베스 맥머트리(Beth McMurtrie)는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와 아테네 귀족 파이드로스가 글쓰기의 발명에 대해 나눈 대화를 소개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문자를 이집트 신 토트가 상이집트 신화 속 파라오인 타무스에게 선물한 것으로 믿었다. 토트는 인류가 기억력이 부족해 자칫 상실하기 쉬운 지혜를 물질적인 형태로 축적 및 증가시키는 방법이 바로 문자라고 알려주었다. 그러자 파라오 타무스는 문자가 정반대의 부작용을 일으킬 것이라고 반박한다. 생각, 규칙, 발견을 돌에 새기게 되면서 우리의 기억력은 더 쇠퇴해 버린다는 것이다.

문자·기록이 기억 대신하면서

점점 멀어져 버린 구술의 전통

그러나 구전 교육 여전히 중요

진짜 실력 드러내는 구술시험

문서가 지시하는 대로 사는 것이 당연해진 오늘날, 수천 년 전 타무스의 예언이 얼마나 지혜로운 말이었는지 알 수 있다. 우리는 역사, 문화 전통, 법률 등을 ‘돌에 새기고’ 나면 그런 것들이 불변의 존재가 되었다고 착각해 버린다. 기록이 우리를 대신해 기억하게 되면서 정작 우리는 쉽게 잊어버린다. 선명하게 새겨 두었던 석판 위로 세월의 물방울이 떨어지면서 표면이 침식되고 만다. 기억하고 전수하는 것은 더 이상 우리의 책임이 아니며, 누구라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사방에 공개되어 있다.

고대의 신탁 시대와는 달리 문서 저장고는 조용하다. 문자는 침묵한다. 문자는 말하거나, 질문에 대답하거나, 자신을 변호하지 못한다. 의견이 다른 역사서들은 서로 논쟁하지 못한다.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식별하는 작업은 (오랜 시간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들의 도움을 받아) 우리에게 달려 있다. ‘진실’과 ‘기록된 문서’는 점차 동의어가 되고 검열이 정당화되면서 오늘날의 승자는 천연자원, 무기, 화폐 같은 전통적인 전리품뿐만 아니라 지적 전리품까지 점유한다.

맥머트리는 그리스 철학자들의 대화를 소개하면서 신중한 파라오 타무스를 교사들에게 빗댄다. 현대의 교사들은 챗GPT 같은 초대형 언어 모델을 사용해 문서를 요약하고 에세이를 작성하는 학생들을 보며 환멸을 느끼는 것이다. 맥머트리는 “기술 혁명을 비롯한 어떤 거대한 혁명이 일어날 때마다 우리는 무엇을 상실하게 될지 한탄하곤 한다. 그리고 앞으로 어떤 일이 닥쳐올지는 여전히 모른다”고 지적했다. 우리는 신기술이 일상생활에 침투하면 그런 변화를 두려워하면서도 불가피하게 이를 받아들이고 옛 방식이 없어지는 것을 슬퍼한다. 맥머트리는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현대에 구술 전통의 상실을 안타까워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수십 년간 구전을 통해 가야금을 배워 온 나는 대부분의 청취자와는 좀 다른 대답을 할 것 같다.

12세기 중국 남송의 서예가, 역사가, 사상가, 시인이자 관리였던 주희(朱熹)는 그의 저서 『대학장구』에서 격물치지(格物致知,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여 지식을 확장함)를 장려한다. 주희가 말한 ‘탐구’에는 고전 읽기도 포함되지만, 그는 자연과 사회에 대한 실천적 이해와 대응도 중요하게 여겼다. 이와 비슷하게, 1980년대 발표된 ‘구술과 서술: 문자의 기술화’(Orality and Literacy: The Technologizing of the Word) 논문으로 유명한 현대 철학자 월터 J 옹(Walter J. Ong)은 현대인들이 소셜미디어, 팟캐스트, 스트리밍 대담 및 포럼 등에서 어느 정도까지 정보를 습득하는지 관찰한 뒤 우리가 ‘제2차 구술 시대’에 도달했다고 결론 내렸다. 옹에 따르면 이 시대는 “집단적 신비 추구, 공동체 의식 조장, 지금 이 순간에의 집중, 심지어 의식용 문구 사용(진실 또는 거짓을 형식적으로 반복)에 있어서도 옛 시대와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

음악가로 살면서 나에게 구술은 언제나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교편을 잡게 된 지금 나는 구술의 재출현을 목격하고 있다. 학생이 인공지능으로 얻은 지식과 실제 이해 수준을 구별하기 위한 노력으로, 강의실에 구술시험이 복귀하고 있다. 구술시험에서는 종이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 한편 학생의 진정한 실력이 여지없이 드러난다. 오로지 학생 홀로 존재한다. 교수는 도와줄 수 없다. 인터넷도 없다. 수년 전 내가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 치렀던 구술시험이 그런 시간이었다. 국악 연구가인 내게 가장 어려운 시험이며 곧 치르게 될 국악 이수자 시험도 그렇게 치러질 것이다. 최근 큰 인기를 누렸던 웹툰 원작 드라마 ‘정년이’에서 꽤 정확하게 설명한 바와 같이, 이와 같은 순간에는 당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위태로움 때문에 연주자는 무대를 두려워하고, 관객은 무대에 매혹된다.

최근 미국 대선에서 미국인들이 목격했듯이, 무대에서 이루어지는 실시간 대담이 온라인에 게시된 정책문보다 훨씬 깊은 인상을 남긴다. 현대와 같은 첨단 세계에서도 구술 담화가 군림한다.

조세린 클라크 배재대 동양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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