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식량자급률 목표치는 숫자 놀음이 아니다

2025-01-12

농림축산식품부가 식량자급률 55.5% 달성 시기를 2027년에서 2029년으로 슬그머니 늦췄다고 한다. 지난해말 국회에 제출한 ‘제1차 공익직불제 기본계획’에 이같은 내용이 담겨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식량자급률 목표치와 달성 시기를 법으로 정한 것이 아닌 만큼 추진 여건과 상황을 고려해 조정이 불가피했다고 농정당국은 해명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행태가 정부의 식량안보 의지를 의심케 하고 더 나아가 불신을 자초하고 있다는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농식품부는 2022년 12월 제13차 국정현안 관계장관회의에서 ‘중장기 식량안보 강화방안’을 발표했다. 기초 식량작물 자급률을 높여 외부 충격에도 굳건한 식량안보 체계를 구축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알렸다. 2021년 44.4%인 식량자급률을 2027년까지 55.5%로 높이고 밀은 1.1%에서 8%로, 콩은 23.7%에서 43.5%까지 상향시키겠다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2년 만에 계획을 스스로 변경한 것인데 이런 일이 반복적으로 발생한다는 사실이 문제다. 돌이켜보면 2011년 식량자급률을 2015년까지 57%, 2020년까지 60%로 높이겠다고 했다가 2013년 이를 각각 2년 뒤로 미룬 전례가 있다. 2018년엔 2022년까지 55.4%를 달성하겠다고 목표치를 낮췄다. 하지만 2007년 이후 수차례에 걸쳐 정부가 내놓은 식량자급률 목표는 한번도 지켜지지 않았다. 오히려 ‘2024년 농식품부 통계연보’에 따르면 2023년 식량자급률은 49.0%, 곡물자급률은 22.2%에 그쳤다. 2022년보다 각각 0.4%포인트, 0.1%포인트 후퇴한 성적표다.

국민의 생존과 직결된 안정적 식량 공급은 국가의 책무다. 식량자급률 목표치는 정부의 의지를 읽을 수 있는 중요 지표이기도 하다. 목표치를 들쭉날쭉 바꾸고, 시기를 제멋대로 변경하는 식의 숫자 놀음 대상이 아니다. 식량자급률 목표치 설정 등 식량안보를 강화하고 강제성을 부여하도록 법제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왜 나오겠는가. 미·중·일을 포함한 세계 각국이 최근 들어 자국의 식량안보를 강화하고 있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참에 실현 가능한 식량자급률 목표치와 농지 확보 등 이를 달성하기 위한 연도별 이행계획에 대한 공론 과정과 법제화를 검토해볼 만하다. 그것이 국민의 신뢰를 얻으며 책임농정을 실천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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