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지역구 챙기기’… 예산안 13조 늘었다

2024-11-21

국회, 2025년 677조원 규모 심사

통큰 심사로 SOC만 1조 넘게↑

지역민 반대 기피시설은 삭감

“검토사항 늘어 정부 부담 늘 것”

중진의원이 지역구 주민 민원 이유로

정부 폐기물처리시설 확충사업 찬물

운영위는 대통령실 특활비 전액 삭감

국토위, 새만금 등 공항건설에 퍼주기

농해수위·산자위 특정지역 증액 눈길

정부가 677조원 규모로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국회 각 상임위원회 예비심사가 마무리돼가는 가운데 국회의원들의 ‘지역구 챙기기’에 ‘누더기 예산’이 되는 모양새가 재연되고 있다. 당장 여야 할 것 없는 ‘통 큰 심사’로 철도, 공항 등 사회간접자본(SOC) 예산만 1조원 넘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증액만 예산안을 누더기로 만드는 건 아니다. 한 야당 다선 의원의 자기 지역구 내 기피시설 예산 삭감 ‘민원’에 상임위 예비심사가 이틀째 진통을 겪는 경우도 확인됐다.

21일 국회에 따르면 환경노동위원회는 애초 전날 예산결산기금심사소위원회(예산소위) 회의를 거쳐 전체회의에서 예비심사보고서를 의결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이날까지 재차 소위 회의가 이어졌다.

쟁점이 된 건 ‘폐기물처리시설 확충’ 사업 예산이다. 이는 매립·소각·음식물처리시설 등 생활폐기물을 위생적, 안정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지방자치단체 폐기물처리시설 설치에 정부가 지원하는 예산이다. 야당 의원들이 2351억9000만원(정부안 기준) 규모인 이 사업 중 서울 마포구 소각시설에 대한 국고 지원분(96억9100만원) 삭감을 주장하자 환경부와 여당이 반대 의견을 내며 맞섰다.

야당 의원들이 마포구 소각시설 예산 삭감을 주장하고 나선 건 마포을을 지역구로 둔 민주당 정청래 의원의 ‘민원’ 때문이라고 한다. 국회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정 의원이 민주당 소속 환노위원 한 명 한 명에게 연락해 마포구 소각시설 국고 지원 예산 전액 삭감을 강하게 요청한 걸로 안다”고 전했다. 실제 정 의원은 13일 페이스북에서 환노위원장인 민주당 안호영 의원 등과 함께 면담하는 사진을 올리고 “안 위원장과 환노위 예산소위 위원들을 만나 오세훈 서울시에서 주민 동의 없이 추진하는 마포 쓰레기 소각장 추가 건설 국비 지원 예산 208억 전액 삭감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이재명 1기 지도부에서 ‘수석최고위원’을 역임한 데다 사실상 법안 심사에서 상원 노릇을 하는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인 정 의원의 민원이었던 터라 야당 환노위원들이 가볍게 넘길 수 없었을 것이란 목소리도 나온다.

◆정청래 민원받은 환노위, 마포 소각시설 국비 전액 삭감

당장 정부가 제출한 폐기물처리시설 확충 사업 예산 지원대상이 90곳을 넘는데 사업을 일부러 지연시키기 위해 국회에서 특정 지자체 지원분만 삭감하는 건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국회 관계자는 “이런 식으로 예산을 임의로 삭감하면 앞으로 폐기물 처리시설 등 기피시설 확보가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소위 ‘알짜 예산’을 다루는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국토교통위원회·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등에선 지역구와 밀접한 사업 예산의 증액이 속속 진행됐다. 이날만 해도 국회운영위원회가 대통령실 특수활동비 82억원을 전액 삭감한 내년도 예산안을 야당 단독으로 처리하는 등 ‘예산전쟁’이 격화하는 와중에도 여야 할 것 없는 지역구 챙기기가 계속된 것이다. 이날 오후까지 국회 17개 상임위 중 소관 예산안을 의결한 12곳 예비심사 결과 기준으로 순증액 규모는 약 13조2000억원 수준이다.

농해수위에선 예비심사 결과 2조4987만8200만원이 순증했다. 증액분 중 상당 부분은 농가 경영비 안정 예산을 포함한 농림축산식품부 소관 예산이다. 심사보고서를 보면 특정 지역을 위한 예산 증액도 적잖았다. 전북 정읍시의 경우 우리밀 저온저장고 건설을 위한 4억8000만원이 증액됐다. 또 펫푸드 소재 산업화 플랫폼 구축 사업비로 10억원이 증액됐다. 정읍·고창을 지역구로 둔 농해수위 소속 민주당 윤준병 의원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경남 하동군에는 국립양식사료연구소 건립을 위한 공사비 33억1400만원이 증액됐다. 국민의힘 사천·남해·하동 국회의원인 서천호 의원이 힘을 쓴 것으로 관측된다.

전남 고흥에는 블루푸드 수산 종합단지 조성을 위한 타당성조사 용역비 명목으로 15억원, 고흥만 간척지를 첨단수산양식 배후단지로 개발하기 위한 기본 실시 설계비로 15억원이 늘었다. 또 전남 수산식품 수출단지 사업의 적시 준공을 위한 공사비 및 관급자재 발주 등을 위한 예산으로 총 101억6100만원이 증액됐다.

산자위에서는 신재생에너지 금융지원 사업(2000억원), 소상공인성장지원 예산(3450억원), 중소기업 모태조합출자 예산(1천600억원) 등이 주요 증액 항목이었다. 지역별 증액도 상당했다. 충북 청주에는 ‘친환경 모빌리티용 배터리팩 제품화 지원센터’ 예산 39억원이, 울산에는 ‘이차전지 특화단지 혁신 생태계 조성’ 등을 명목으로 32억원이 증액됐다. 부산의 경우 영세 신발기업의 디지털 혁신을 위한 사업 예산으로 11억원과 ‘바이오매스 기반 비건레더’ 클러스터 구축을 명분으로 19억원이 각각 증액됐다. 이밖에 인천·경북 구미·경북 포항·충북 청주·충남 천안·경남 창원에 스마트그린산단 촉진사업 명목으로 20억원에서 37억원가량이 증액 편성됐다.

국토위에선 노골적인 ‘지역구 챙기기’가 벌어졌다. 국토위는 예비심사 보고서에 부대의견을 66건을 기재했는데, “국토교통부는 제6차 국도·국지도 건설계획에 국도 ○○호선 도로시설 개량사업이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는 민원성 내용도 상당수였다. 특히 부대의견 2번째로 기재된 ‘계양테크노밸리 조성사업의 신속한 사업집행’은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총선 공약이다.

국토위 예산 증액분 중에서는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인 교통시설특별회계 항목 증가분이 1조343억원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호남고속철도건설 예산을 277억원 증액해 1666억여원으로 편성했고, 인천 및 수원발 KTX 운행을 위한 예산을 각각 70억원, 53억원 증액했다. 대구산업선, 경북 김천과 경남 거제를 잇는 남부내륙철도에 각각 242억여원이 증액됐다. 광주도시철도 2호선 건설 예산은 당초 1398억원에서 500억원 증액된 1898억원으로, 신안산선 복선전철 예산안은 529억원이 증액됐다.

지역 공항 예산도 상당액이 증액됐다. 새만금 신공항 적기 건설을 위한 관련 공사 예산은 100억원, 가덕도신공항 건설공단 설립 운영을 위한 사업추진 예산은 5억5000만원 늘었다. 무안국제공항 활주로 연장을 위한 예산은 31억4400만원이 증액됐다. 흑산도 소형공항 건설 예산은 정부안 29억5500만원에서 40억원이 증액된 69억5500만원으로 예비심사가 의결됐다.

의원들의 지역구 챙기기 예산이 늘어남에 따라 정부 부담도 커질 전망이다. 기재부의 한 관계자는 “지역구 챙기기 사업은 매년 있어왔는데, 심사 소위 과정에서 사업 타당성 등을 포함한 검토할 사항이 늘어나게 돼 정부 입장에선 부담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승환·김현우 기자, 세종=이희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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