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를 찾아서] 진공청소기

2024-09-30

한때는 내 눈빛 흡입하던 넌

탐스러운 꽃잎이었는데

이제 내가 너를 청소한다

온갖 먼지 속에서도

너는 다시 꽃으로 피려 하겠지만

살 비벼대는 날벌레들은

슬슬 배가 고파서

꽃인 너를 뜯어먹고 말거야

가득 차면 비워야 할 속

아직 다 채우지 못한 나는

이 구석, 저 구석 머릴 들이민다

죽은 날벌레와 함께

둥근 통로를 지나 네가 안착한 곳은

블랙홀 너머의 낯선 우주

난, 아직은 사는 이유가

조금은 불분명한 것 같아서

지구에 좀 더 머물러야 할 듯

은하 너머, 먼저 가 있으라고

엷은 미소에 손까지

너를 향해 흔들어 준다

◇박윤배=1989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시 ‘겨울판화’ 당선되어 등단. 시집 『쑥의 비밀』(도서출판 전망),『얼룩』(문학과 경계사),『붉은도마』(북랜드), 『연애』(책나무),『알약』(시와표현),『오목눈이 집증후군 』(북랜드, 2018) 이 있음. 『시와시학』 신인상. 대구시인협회상. 금복문화상 수상. 현재; 대구경북예술가곡회 사무국장, 경주문예대출강. 대구디카시인협회대표. 시창작원 <형상시학>대표.

<해설> :“아직은 사는 이유가/조금은 불분명한 것 같아서/지구에 좀 더 머물러야 할 듯”은 역설일 수도 있다. 가끔 왜 살고 있는지? 잘살고 있는지? 자문자답할 때가 많다. 왜 사는지 몰라서 그냥 살고 있다고 답하면 안 될 것 같아서, 누가 묻는 안부에는 늘 그럭저럭 잘 지낸다는 답을 하면서도, 점점 왜 사는지에 대한 의문은 말끔하게 지워지지 않는다. 한때 아침에 일어나 눈을 뜨면 카페 바닥을 먼저 청소하던 때가 있었다. 밤새 죽어있는 곤충들과 연인들이 바라보던 탁자 위의 꽃잎들이, 말라 떨어져 나뒹구는 바닥 그리고 출처를 알 수 없는 먼지들을 흡입하는 진공청소기가 내 운명과 닳았다고, 잠시 한 엉뚱한 생각을 시로 옮겨 적었다. 죽는다는 것도, 하나의 순간에서 다른 순간으로 빨려드는 것이라고 -박윤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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