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렵고 유혹적인 다윈의 '자연선택'....양극단 비판하는 데닛의 시각[BOOK]

2025-04-11

다윈의 위험한 생각

대니얼 데닛 지음

신광복 옮김

바다출판사

지난해 4월 82세로 작고한 미국 철학자 대니얼 데닛의 『다윈의 위험한 생각』이 원서 출판 30년 만에 우리말로 번역돼 나왔다.

학계에서 데닛의 명성-혹은 악명-은 1980년대부터 자자했고, 그는 이번 세기 중요한 현존 철학자 목록을 만들 때마다 빠짐없이 거론됐다. 챗GPT류의 거대언어모델 쇼크가 세계를 강타한 이후에는 가장 중요한 철학자로 널리 여겨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랫동안 인공지능(AI)에 대한 갖가지 철학적 비판과 공격을 꾸준히 철학적으로 반박해왔기 때문이다. 덕분에 인공지능 엔지니어들이 반감을 품지 않는 유일한 철학자라는 말도 나돈다.

데닛이 국내 독서계에 소개된 지 한 세대 이상 지났고, 말년에 생각을 집약한 『박테리아에서 바흐까지, 그리고 다시 박테리아로』도 2022년 번역 출간됐다. 그런데도 30년 전 나온 이번 책을 다시 읽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일단 데닛이 품은 생각의 큰 틀을 가장 잘 살펴볼 수 있다. 그 틀을 요약하자면, 다윈이 "자연선택”이라고 적확하지 않은 어구로 표현한 원리는 생물의 진화만 아니라 심리학·문화·윤리·정치·종교 등 인류가 쌓아 올린 거의 모든 세계관에 적용되는 것이고, 자연선택 원리에 의거해 기존 세계관들을 뒤엎으면 더 적실하고 내부 모순이 덜한 새로운 세계관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기존 통념들을 뒤엎어 버리기 때문에 위협을 느낄 사람들이 많을 것이고, 그런 사람들이 위험한 행동들을 저지를 개연성이 높다. 이런 점에서 다윈의 생각은 이중적으로 ‘위험’하다. 하지만 '양의 탈을 덮어쓴 늑대' 같은 기존 통념들과 달리 다윈의 아이디어는 '미녀와 야수'의 야수처럼 언뜻 보기에 무서울지라도 실은 미녀의 친구였고, 그 자체로도 아름답다고 데닛은 주장한다.

그렇다면 모든 것이 자연선택으로 환원되는 것에 불과한 것인가? 글쎄. 데닛은 동의할 수 없을 것 같다. 자연선택 원리에 기초한 설명을 찾아내는 일을 쉽게 완료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환원된다고 해서 '불과한 것'이라고 폄훼할 것도 아니다. 데닛은 성급한 환원주의자들도 초월주의자 못지않게 잘못을 범한다고 본다.

그에 따르면 좋은 환원주의자는 초월적 원리를 가정하지 않아도 설명을 찾아낼 수 있다고 믿지만, “탐욕스런 환원주의자”들은 중간 단계에 대한 적절한 해명 없이도 설명된다고 믿는다. 데닛의 눈에는 불변의 최고원리에 의지하는 초월주의자나 “탐욕스런 환원주의자” 둘 다 다윈주의적 태도를 따르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래서 일부 진화주의자들에 대한 그의 비판은 매우 거세다. 데닛이 보기에 다윈의 위험한 아이디어에서 가장 위험한 측면은 그 유혹이 매우 강력하다는 점. 심오한 아이디어의 이류 버전들이 우리를 계속 괴롭힌다. 데닛은 사회생물학자들의 “탐욕”스런 일부 행태도 꾸짖지만 자연선택을 넘어서는 진화 메커니즘을 발견했다는 스티븐 제이 굴드에 대한 비판도 신랄하다. 그 비판을 거칠게 요약하면 굴드의 단속평형설은 초월적인 무엇에 대한 욕구를 감싸는, 학문적으로도 불성실한 포장지다. 데닛은 자신의 단짝으로 여겨지는 리처드 도킨스에 대해서조차 생각을 충분히 밀고 나가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자연선택은 이미 저지른 실수를 확대재생산 하지 않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실수를 피하는 유일한 방법은 이미 저지른 실수로부터 배우는 것뿐이라고 믿는 사람답게, 데닛은 양극단에서 범한 생각의 실수를 꼼꼼하게 짚어낸다. 데닛 주장의 궁극적 옳고 그름보다는 그런 과정을 따라 해보는 일이 더 가치 있고, 데닛식으로 말하자면 다윈주의적이다.

참고로 생전에 데닛은 인공지능이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주장은 틀렸지만, AGI(인공일반지능)가 곧 가능하다는 주장도 성급하다고 말했다. 데닛의 생각은 실수였을까?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