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초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 ‘풀’

2025-04-11

“대마초는 흑인놈들이(darkies) 백인처럼 잘났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대마초를 불법화해야 하는 주요 원인은 퇴화한(degenerate) 인종들에게 있다” (해리 앤슬링어 Harry Anslinger, 초대 미국 연방마약국 국장)

일년생 풀 ‘대마초’가 마약으로 취급되며 금기시되고 있는 한국에서 이 ‘풀’과 접속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용기 있는 디큐멘터리영화로 만들어졌다.

영화는 ‘풀’에 대해 의문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이 풀은 그토록 위험한 것일까? 여러 해악에도 불구하고 단지 합법이라서 유통되는 술, 담배 그리고 오피오이드 약물들은 통용이 된다. 그에 비해 대마초의 중독성은 매우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합법과 불법을 자의적으로 결정하는 권력에 대해 의문과 궁금증을 가지게 된다.

권용현은 전직 의사다. 대마초를 통한 치유와 에너지 치료를 한다. 한국카나비노이드협회를 만들어 대마초 사용의 저변 확대를 위해 노력해왔다. 그러나 그는 암환자에게 대마초를 교부한 혐의로 감옥에 갔다온 후, 집도 재산도 없이 유기견 태양이와 함께 노마드 생활중이다.

아픈 사람에게 대마초를 준 죄로 감옥에 갔다온 그는 여전히 대안적 치유에 관심이 많다. 번아웃과 공황장애로 쓰러졌을 때 CBD 사용으로 효과를 보았던 그는 대마초의 약리적 성분에 대해 연구하고 실험한다.

남북 접경지역 파주에서 대마 농사를 시작하는 천호균에게 삼농사는 평화를 짓는 일이며, 기후위기 시대 비상 행동이다. 그는 파주 민통선 안에서 평화를 심는다는 의미로 대마 농사를 시작했다. 인사동 쌈지길을 만들어 예술가들과 함께 해왔던 그는 ‘땅을 소유하지 않는 농부’로서 생태적 삶을 살고 있다.

탄소를 흡수하고 인간의 의식주에 함께 해왔던 대마는 어떤 이유로 금지된 것일까? 70년대 대마초 파동과 박정희 시대는 오늘날 젊은 세대의 우울하고 무기력한 삶에까지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 건 아닐까? 천씨는 생명을 살리고 지구를 살리고자 씨앗을 심는 사람들은 때로 감옥에 갇히기도 하면서 풀을 통해 만난 평화롭고 기뻤던 순간들을 전해준다.

그는 “대마라는 풀이 워낙 강하니까 다른 풀이 이겨내지 못해요. 풀을 굳이 뽑지 않아도 되요. 거름도 안 해요. 흙을 건강하게 하는 역할을 대마 자체가 합니다. 쑥쑥 크면서 이산화탄소를 흡수해서 땅에 비료가 되는 거죠”라고 말한다.

모르면 잡초고 알면 약초라고 하는데. 허준 선생의 동의보감에 대마의 부위별 효능이 자세히 나와 있다. 그걸 복원해야한다. 모든 부위가 다 좋다. 근데 그동안 마치 마녀사냥처럼 되어서 대마의 가치들이 없어졌는데 이제 서서히 복원시키는 역할을 이 세계가 다 같이 하고 있다.

천문학자 이명현은 70년대 대마초 파동 당시 국민학생이었지만 박정희 대통령을 공공의 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던 일부터 80년대 네팔에서의 대마초 문화 경험, 이후 네덜란드에서 박사과정을 거치며 경험했던 일들까지 대마초에 관한 정치, 문화적 견해를 들려준다. 또 ‘코스모스’의 저자 칼 세이건이 과학자로서 몸소 대마초를 경험하고 많은 저작들을 내놓게 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이야기를 전해준다.

래퍼 빌스택스는 미국유학 시절 힙합 뮤지션들의 노래를 들으며 대마초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또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자신이 대마초로 인해 순화될 수 있었음을 고백한다. 한국에서 대마초 합법화를 위한 노래들을 만들어 부르고 있다. 대표적으로 ‘풀’에 뮤직비디오가 삽입된 ‘420flow’가 있다.

김도는 우울증을 앓으며 대마초로 정신과 약을 끊을 수 있었다. 대마초합법화시민연대 활동을 하기도 했다.

이찬식은 삼베 장인으로 전남보성에서 전통적 방식으로 대마 줄기를 가공해 섬유와 종이를 만들고 있다. 천호균 농부가 첫 수확한 대마 줄기를 가지고 가서 이 과정을 실습한다.

1993년생 보리는 생태적으로 살기 위해 시골살이를 선택한 청년. 농사에도 관심이 많아 대마 씨앗을 앞마당에 심어 잘 키워서 사용도 해보았다. 그리고 감옥에 가게 됐다. 음대에서 트럼펫을 전공했으며 영화의 엔딩크레딧 음악으로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을 연주했다.

영화 속에서 강병석(전직 교수), 정재진(배우), 유민수(의료인류학 연구자), 원브로(아티스트) 등도 풀에 대해 말한다.

‘풀’은 연출한 이수정 감독은 “50년 넘게 살도록 대마를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대마초, 양귀비, 아편, 히로뽕을 종종 헷갈렸다. 알 기회도 없었고, 그런 걸 접할 기회도 딱히 없었는데 6-70년대 히피를 그린 미국영화를 볼 때는 자유와 평화를 구가하는 그들이 멋져 보여서 대마초를 피우면 정말 저렇게 행복한 표정이 되는 걸까, 막연하게 궁금하긴 했다”고 이 영화의 출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는 대학에서 영문학 전공한 후,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영화연출을 공부했다. 80년대말 영화운동에 참여하였으며, 90년대 이후엔 방송다큐 연출과 극영화 프로듀서로 활동했다. 2011년부터 본격적으로 독립다큐멘터리를 연출, 제작하였으며 장편 데뷔작 ‘깔깔깔 희망버스’(2012), 공동연출작 ‘나쁜 나라’(2015)에 이어 ‘시 읽는 시간’(2016)은 부산국제영화제 장편경쟁 및 DOK Leipzig에서 초청되었고, 유럽·중동·남미의 여러 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 10년간 제작한 네번째 장편다큐 ‘재춘언니’(2020)로 부산국제영화제 비프메세나상 및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회 특별상을 수상했다. 신작 ‘풀’은 2024년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한국경쟁에 초청됐다.

미국에서 마약을 규정하고 금지하던 20세기 초에 연방정부는 30명의 저명한 과학자들에게 대마초의 위험성과 금지 조치가 필요한지에 대해 묻는 편지를 보낸다. 30명 중 29명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답장을 보냈고, 그 중 1명만이 대마초는 위험하며 금지 조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인종차별주의자로 탁월한 자기합리화 능력을 가진 초대 미국 연방마약국 국장 해리 앤슬링어는 29명의 의견은 묵살하고 1명의 답장을 앞세워 대마초를 ‘지옥의 물건’으로 만들었다.

이수정 감독과 스텝들은 영화 ‘풀’에 대해 “‘너의 해방은 나의 해방’이라는 말이 있다. 바꾸어 말하면 ‘너의 억압과 차별은 나의 억압과 차별’이 되지 않을까?”라고 스크린을 통해 묻고 있다.

-영화 개요

제목: 풀 (영문제목: Pull)

감독: 이수정

러닝타임: 89분

제작: 생의 한가운데

배급: 미디어나무(주), 생의 한가운데

등급: 청소년관람불가

출연: 권용현, 천호균, 이명현, 강병석, 빌스택스, 보리, 김도, 제이제이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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