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영어 뗀다고요? 영어 울렁증만 키울수도”···‘대치맘’ 그려낸 조지은 옥스퍼드대 교수

2025-04-19

조지은 옥스퍼드대 아시아·중동학부 교수가 지난달 출간한 소설 <서울 엄마들>에는 대한민국 최고의 학군지로 ‘금묘(gold cat)아파트’가 등장한다. 금묘조리원에선 영어 태교를 하고, 금묘 영어유치원에선 한국어 이름 대신 영어 이름을 쓴다. 자녀를 의대에 보내려 고군분투하는 세 쌍의 부부가 금묘아파트에서 살아가는 모습이 그려진다. ‘4세·7세 고시’나 대학 등록금보다 비싼 영유아 영어학원이 현존하기에 소설보다 대치동 르포처럼 읽히기도 한다.

지난달 28일 만난 조 교수는 소설을 쓴 이유에 대해 “엄마들도, 아이들도 지금 교육으로 인해 얼마나 힘든가. 교육에 희생이 수반된다고 여기는 사회 분위기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금묘아파트의 모습이 대치동 교육열과 꼭 닮아있다. 올해 초 화제가 된 ‘도치맘’ 캐릭터나 ‘7세 고시’ 등도 떠올랐다.

“책 원고를 넘긴 날이 지난해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발표날이었다. 올해 드라마나 유튜브에서 대치동이 다시 화제가 되는 걸 보면서 책 내용과 똑같아 놀랐다. 유튜브에서 대치맘을 패러디한 도치맘이 영어를 섞어서 말하는 어투를 보면서 웃기도 했지만 분명 생각해볼 지점들이 있다. 우리는 ‘웃프다’고 하지만 동시에 아이들만 행복할 수 있다면 대치동 엄마들처럼 되고 싶어 하는 마음도 있지 않나. 그렇게 과열된 길을 가는 게 맞는지 생각해봐야 할 때다.

-책을 쓰게 된 이유가 있나?

“한국을 떠난 24년 전에는 한국이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금은 한국을 뜻하는 K가 가장 핫한 브랜드가 됐다. 그런데 교육만은 과거 변별력을 위해 지식을 주입하던 수준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아이들이 행복하기 위해서 교육을 해야 하는데 그사이 사교육 광풍이 더욱 심해졌을 뿐이다. 책에는 극성 학부모들이 등장하는데 ‘이분들이 원래 이런 삶을 살고 싶었을까’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결코 행복한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동시에 엄마들과 아이들에게 위로를 보내고 싶었다. 한발 떨어져서 보면 보이는 것들이 있다. 나도 한국에 살았으면 아이를 1등 영어학원에 보낼지 2등 학원에 보낼지 고민하고 있었을 테다. 한국 밖에서 살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영국은 자녀 교육열이 크지 않은 편인가?

“자식한테 다 주고 싶은 부모 마음은 똑같다. 다만 영국의 경우 엄마의 미래를 위한 것인지, 아이의 미래를 위한 것인지 고민하는 모습이 보인다. 한국은 효를 중요하게 생각해서 그런지 부모의 노후를 위해 성공하고자 하는 건지 각자의 삶을 위해 하는 건지 잘 보이지 않는다. 반대로 부모 입장에서도 아이에게 과잉으로 쏟아부으면 기대가 커질 뿐이다. 아이와 부모가 서로 건강하기 위해선 각자의 삶을 살 필요가 있다는 점을 많이 배우고 있다.”

-과거에 비해 대치동 학원가를 비롯한 사교육 트렌드가 어떤 식으로 변했다고 보나?

“대치동 학부모들을 조사하면서 상상만 하던 것들이 현실에선 훨씬 치열하게 일어나는 걸 목격했다. 공부하는지 보려고 아이 방 문까지 뗄까 했는데 정말 실존하는 일이었다. 10여년 전 외신이 한국의 ‘돼지엄마’를 조명했을 때보다도 요즘 엄마들에게 더 많은 정보력이 요구된다. (돼지엄마는 다수의 엄마를 몰고 다니며 과외를 모으거나 학원 정보를 수집하는 학부모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과거보다 정보가 넘치니 엄마에게 요구되는 정보력과 변별 능력, 자녀 관리 능력까지도 훨씬 더 높은 수준이다. 부모가 스스로 컨설턴트를 자처해야 하는 상황으로 보인다.”

-책에선 영유아 때부터 영어 학원을 보내거나 영어 태교를 하는 모습이 묘사됐다. 영어 공부를 일찍 시작하면 효과가 있을까?

“한국에선 이른바 ‘영어 유치원’인 영유아 영어학원을 보내면서도 ‘너무 늦게 시작한다’고 조급해한다. 학원들은 불안을 자극하고, 학부모들은 불안해 한다. 3살 때부터 영어 교육을 시키는 게 효과가 있다는 이론적 근거가 없다. 모국어를 배우는 시기가 늦으면 인지발달이 늦어져 문제가 생길 수 있지만 모국어만 집을 잘 짓고 있으면 외국어는 언제 시작해도 상관이 없다. 영어 문제를 일찍 풀기 시작하면 시험이야 볼 수 있겠지만 그게 아이들의 영어 능력과 연결되진 않는다. 시기보다 중요한 건 영어를 만나는 방법이다. 즐겁게 만나는 게 중요하다. 지금은 한국 아이들의 영어 울렁증이 세상에서 제일 높은 수준이다.”

-영어 울렁증이 어릴 때부터 생길 수도 있을까?

“4년 전 영어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의 언어 심리를 연구했다. 아이들 인터뷰를 보면 영어를 공부해야 한다는 것 자체로 스트레스를 받는 학부모와 아이들이 많았다. 영어 노출 시기를 늦춘다고 해서 영어 능력이 전혀 낮아지지 않는다. 학부모들은 아이에게 영어 울렁증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싫어하기도 한다. 조금만 기다리면 잘 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런데 어릴 때부터 영어를 잘 해야 한다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분명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개인적으로도 12살 때인가 학교에서 영어 수업 중 선생님한테 ‘발음이 이상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게 오랜 상처로 남아있다. 아이들도 그런 트라우마가 남으면 미래에도 영어를 더욱 기피하게 된다.”

교육부가 지난달 공개한 ‘2024 유아 사교육비 시험조사’를 보면 만 6세 미만 취학 전 영유아를 둔 가구가 지난해 7~9월 사이 지출한 사교육비는 8154억원이었다. 연간 3조3000억원에 달하는 규모다. 사교육을 하는 유아가 월평균 쓰는 사교육비는 41만원으로 고등학생(32만원)보다 지출이 큰 상태다. 특히 영어학원 유치부에는 월평균 154만원이 들어가는 것으로 조사됐다.

육아정책연구소도 영유아기 사교육 경험이 아이의 언어·문제해결 능력이나 학업 수행에 상관성이 없다는 실증연구를 발표한 바 있다. 오히려 학습 사교육을 많이 할 때 자존감에 부정적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영어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나?

“가장 이해할 수 없는 말이 ‘영어를 빨리 선행시켜야 나중에 수학을 선행할 수 있다’는 말이다. 나도 지금까지도 한국어를 공부하고 영어도 계속해서 업데이트한다. 언어학을 공부한 연구자 입장에서, 그리고 이중언어사용자인 아이들을 키워본 사람으로서 분명히 느낀다. 언어는 진도 나가듯이 뗄 수 있는 게 아니다. 이젠 문제풀이와 영어를 디커플링(분리)하는 게 필요하다. 시험을 보기 위한 영어가 아니라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영어, 글을 읽고 생각할 수 있는 영어를 해야 한다. 작년 수능 영어 시험을 풀어보니 제가 70점대, 옥스퍼드 대학 학생들은 80점이 나왔다. 그 친구들이 영어를 못 하는 걸까? 이제는 표현하기 위한 언어로서의 영어를 할 때가 됐다. 기술도 있고 아이들의 마음가짐도 돼있다고 생각한다.”

-책 제목인 ‘서울 엄마들’이 보여주듯 자녀 교육과 돌봄의 역할은 여성에게 쏠려있다.

“옥스퍼드 영어 사전은 슈퍼맘을 ‘모범적이거나 이상적인 어머니, 가정을 성공적으로 관리하고 자녀를 양육하며 풀타임으로 경력을 쌓은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전세계적인 현상이지만 한국은 더욱 비현실적인 상황이다. 영국에선 가사도, 자녀 교육도 부모가 반씩 나눠서 해야 한다는 일종의 사회적 합의가 있다. 학부모 모임도 번갈아 간다. 반면 한국은 엄마들에게 부담이 훨신 크고, 아빠는 자녀 교육 문제에 있어 겉돌면서 또다른 부담을 느낀다.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 할아버지의 경제력이 아이의 성공을 가져온다’는 말까지 있다. 영국에서 이 말을 농담삼아 했더니 다들 ‘어떻게 아빠의 무관심이 자녀의 행복으로 이어질 수 있냐’며 정색을 하더라. 주변의 모든 가족이 비슷하면 지금의 모습이 당연하다고 여겨질 수 있지만 엄마에게 쏠리는 부담이 전혀 당연하지 않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학원을 아예 안 보내긴 어렵다는 이야기들을 한다.

“학생들이 원하는 배움의 기회를 줄 수 있는 학원이라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문제는 모두가 오로지 대학 입시라는 한 가지 목표를 위해 학원을 보낸다는 것이다. 어릴 때 학원에서 수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게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선 다들 많이 고려하지 않는다. 한국의 대학생들은 진이 빠져있는 모습이 옥스퍼드 학생들과 많이 다르다. 성인이 되고 대학에 가선 도전의식이 급등할 때인데 청소년기에 너무 학습에만 몰두한 탓이다. 어릴 때 충분히 경험하고 관찰할 수 있는 시간을 보내지 못 했기 때문에 대학에서 도전보단 안주하게 되는 모습이다.”

-올해부터 AI디지털교과서(AIDT)가 초등학교 3·4학년 영어 수업에 도입된다.

“한국은 ‘세계최초’ 타이틀을 참 좋아한다. 물론 AIDT가 개별적 교육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점도 많겠지만 기본적으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지난해 영국 교육부도 선도학교를 방문해 AIDT를 봤지만 바로 도입하겠다는 이야기를 하진 않는다. 특히 영어 교육의 핵심은 새로운 기술을 익히는 데 있지 않고 사람간 대화와 사고의 형성에 있다. 아직 검증되지 않는 매체를 아이들에게 먼저 줄 때 교육 효과뿐 아니라 정서적 측면에서도 부작용이 있을지 우려된다.”

-어떤 부작용이 예상되나?

“문해력의 핵심은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다. 아이들이 AI와 공부해서 사람과의 대화가 줄어들면 공감 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 독서가 좋은 교육법인 이유도 아이들이 타인의 입장, 상황에 대한 공감 능력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AIDT가 어떤 교육 효과를 갖는지를 떠나서 어린 아이들의 주요 교육 매체가 될 때 공감 능력을 어디서 배우게 할 것인지에는 물음표가 붙는다. AIDT라는 툴 개발에만 멈출 것이 아니라 인지적, 사회적, 정서적 영향이 무엇일지 연구가 필요하다. 아이들의 문제기 때문에 속도전으로만 봐선 안 된다”

-영어 교육에서 인공지능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AI는 영어 학습에서 좋은 연습 파트너가 될 수 있다. 고등학생 정도부터는 연습할 때 활용하면 오히려 외국어 울렁증을 겪지 않고 연습할 수도 있다. 지금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AI를 활용한 ‘AI 네이티브’이기 때문에 AI툴과 그 외 필요한 경험을 어떻게 균형적으로 맞출지 고민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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