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는 18세기 영국과 프랑스가 치열한 세력 다툼을 벌인 곳이다. 7년에 걸친 전쟁 끝에 영국이 프랑스를 이기고 1763년 캐나다를 독차지했다. 그때부터 프랑스어를 쓰는 주민들은 영국인들의 지배 아래 이른바 ‘2등 국민’의 지위로 내려앉았다. 다만 프랑스계 주민이 특히 많은 퀘벡주(州)는 캐나다가 영국 문화와 영어 중심으로 돌아가는 현실에 불만을 표시했다. 이에 캐나다 정부는 1969년 프랑스계 주민을 위해 이중언어와 이중문화를 인정하는 조치를 취했다. 그로써 프랑스어가 영어와 더불어 캐나다의 공용어로 채택됐다. 1982년에는 인종적·언어적·종교적 문제를 포함해 모든 종류의 차별을 거부하는 정책을 시행함으로써 영국계 주민과 프랑스계 주민, 또 영어와 프랑스어의 차별을 법적으로 금지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현직 시절 캐나다 출신 기자로부터 프랑스어로 질문을 받는 일이 종종 있었다. 반 총장은 나름 프랑스어에 일가견이 있었으나 그래도 영어로 대화를 나누던 도중 갑자기 프랑스어가 치고 들어오면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마다 반 총장은 “주로 영어권 국가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해 프랑스어를 많이 접하지 못했다”며 “프랑스어를 더 자주 사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곤 했다. 2021년 아메리카 원주민 출신으로는 처음 캐나다 국가원수에 해당하는 총독에 취임한 매리 사이먼의 경우 자신의 프랑스어 실력이 부족함을 인정하며 “학교 다닐 때 프랑스어를 배울 기회가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계속 프랑스어 공부를 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약속하기도 했다.
문제는 영어를 구사할 줄 아는 캐나다 국민들 사이에 ‘굳이 프랑스어를 써야 할 필요가 있나’ 하는 정서가 강하다는 점이다. 캐나다 국적 항공사 에어캐나다 마이클 루소 최고경영자(CEO)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는 2021년 퀘벡주 몬트리올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기자가 프랑스어로 질문을 던지자 “영어로 다시 해달라”고 요구했다. 자신이 프랑스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나는 프랑스어를 말하지 않고서도 몬트리올에서 살 수 있었다”며 “그게 몬트리올의 엄연한 현실”이라고 해명했다. 당장 프랑스계 주민들 사이에 분노가 일었다. 루소의 사임을 요구하는 목소리까지 터져 나왔다. 다급해진 그는 “제 발언에 불쾌했을 분들께 사과드린다”며 “앞으로 프랑스어 실력을 향상할 것”이라고 다짐해야 했다.

요즘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와 다투는 캐나다의 총리가 바뀐다. 프랑스어와 영어를 둘 다 유창하게 구사하는 쥐스탱 트뤼도 현 총리가 조만간 물러날 예정인 가운데 9일(현지시간) 캐나다 중앙은행 총재 출신의 마크 카니(59)가 차기 총리로 선출된 것이다. 앞서 총리직에 도전장을 내민 지도자 4명이 지난달 24일 프랑스어 토론회에 참여했는데 카니는 “후보자들 중에서 프랑스어를 가장 못한다”는 혹평을 들었다. 프랑스계 주민들 사이에서 ‘총리 자격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왔으나, 일각에서는 ‘미국이 캐나다를 집어 삼키겠다고 떠드는 판국에 총리의 프랑스어 구사 능력이 뭐 그리 중요한가’라는 반론도 제기한다. 프랑스어가 서툰 캐나다 총리의 정치적 앞날이 어떨지 지켜볼 일이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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