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 시대의 사회통합

2025-03-09

2025년. 21세기가 4분의 1이 지나가고 있다. 우리 인류는 어떤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걸까.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는 미국 현대사를 ‘진보 시대’(1930~1960년대)와 ‘보수 시대’(1980~2008년 금융위기)로 구분한 바 있다. 이 역사 인식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 사회 전체에 적용할 수 있다. 진보 시대가 ‘복지국가 시대’였다면, 보수 시대는 ‘신자유주의 시대’였다.

금융위기 이후 새롭게 열린 것은 ‘포퓰리즘 시대’다. 미국 ‘트럼프주의’에서 프랑스 ‘국민전선’, 독일 ‘독일을 위한 대안’, 이탈리아 ‘이탈리아의 형제들’, 스페인 ‘포데모스’, 그리스 ‘급진좌파연합’까지 포퓰리즘이 서구 정치를 뒤흔들어 왔다. 정치학자 야스차 뭉크는 현대 민주주의가 파시즘, 공산주의에 이어 포퓰리즘과 대결하는 ‘제3의 모멘트’에 도달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금융위기 이후의 ‘포퓰리즘 시대’

보수·진보 망라하는 지구적 현상

‘두 국민 국가’ 놓아둘 수는 없어

다원적 사회통합 추구로 나아가야

포퓰리즘의 등장이 서구적 현상만은 아니다. 동유럽 헝가리의 오르반 총리, 아시아 필리핀의 두테르테 전 대통령, 라틴아메리카 브라질의 보우소나르 전 대통령은 서구 밖에서 관찰할 수 있는 포퓰리스트들이다. 오르반 빅토르, 로드리고 두테르테, 자이르 보우소나르는 ‘리틀 도널드 트럼프’였고, 이런 ‘작은 트럼프들’은 앞으로 계속 나타날 것이다.

세 가지 질문을 던지고 답변을 구할 수 있다. 첫째, 포퓰리즘은 보편적 현상인가. 맞다. 트럼트주의와 포데모스가 보여주듯 포퓰리즘은 보수와 진보를 망라한다. 정치학자 무데와 칼트바서는 포퓰리즘을 파시즘·자유주의·사회주의와 결합할 수 있는 ‘중심이 얕은 이데올로기’로 파악한다. 포퓰리즘은 엘리트주의와 다원주의를 거부하며, 국가의 주인이 국민이라는 국민주권주의로 무장하고, 논리보다 감성에 의존하는 정치적 ‘심상 지도’라 할 수 있다.

둘째, ‘지금, 여기서’ 포퓰리즘이 왜 번성하는가. 사회 불평등 때문이다. 1980년대 신자유주의 시대가 열린 이후 불평등은 점차 강화됐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브라만 좌파(교육 엘리트)’와 ‘상인 우파(자산 엘리트)’의 담합이 정치를 독점했고, 그 결과가 구조화된 불평등을 낳았다고 비판했다. 기성 정치는 우파든 좌파든 이 불평등 완화에 대체로 무능했다.

셋째, 21세기 정보사회는 포퓰리즘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정보사회의 진전에서 인터넷·스마트폰 등 정보 기술은 대중 동원에서 접착제의 기능을 맡았고, 페이스북·유튜브 등 소셜 미디어는 정치사회와 국민 간 직거래의 길을 열었다. 정념이 이성을 대체하는 ‘디지털 부족주의’ 시대는 이렇게 열렸다. 사실과 주장, 진실과 허위, 정보와 오락이 혼란스럽게 결합한 공론장의 풍경은 포퓰리즘의 문화적 현주소라 할 만하다.

최근 한국 민주주의가 직면한 문제는 세 가지다. 포퓰리즘, 반다원주의, 정치 양극화가 그것이다. 이 세 현상은 긴밀히 연관돼 있다. 포퓰리즘의 부상과 다원주의의 빈곤이 동전의 양면을 이루고, 이러한 현실은 극단주의가 힘을 얻는 정치 양극화를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정치 질서는 변화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그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 않는다.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우리 사회에서 보수와 진보는 이념은 물론 세계관의 차이를 내포한다. 둘째, ‘87년 헌법’의 승자독식 대통령제는 정치 양극화의 제도적 원인을 이룬다. 셋째, 사회통합보다는 ‘갈라치기’가 미치는 정치적 효과가 커져 왔다.

6일 한국행정연구원이 발표한 ‘2024년 사회통합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회갈등 유형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은 이념 갈등(4점 만점에 3.1점)이었다. 사회갈등의 주요 요인으로는 ‘이해 당사자들의 각자 이익 추구’(25.9%), ‘상호이해 부족’(24.6%), ‘개인·집단 간 가치관 차이’(17.9%) 등이 꼽혔다. 이 조사가 지난해 8~9월에 이뤄졌으니, 12월 3일 비상계엄 이후 이념 갈등은 더욱 강화됐을 것이다.

사회통합이 중요한 까닭은 분명하다. 사회통합이 약화하면 공동체에 대한 구성원들의 소속감과 연대의식이 고갈됨으로써 시민사회는 ‘정서적 내전’을 거쳐 ‘심리적 내파’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다. 더해, 저성장과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성장과 복지는 다원민주주의의 기반 위에서, 즉 거버넌스와 합의를 추구하는 포용적 정치사회의 기반 위에서 가능하다.

오늘날 국민은 단수가 아니라 복수로 존재한다. 21세기에 걸맞은 통합은 익명의 국민을 동원하는 권위주의적 국민통합이 아니라 이념·세대·젠더·생활양식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다원주의적 사회통합이다. 다원주의와 사회통합을 ‘포지티브섬 관계’로 만들어가는 것이 질 높은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길이다.

‘두 국민’으로 분단된 대한민국을 이대로 놓아둘 순 없다. 갈등을 성숙하게 대표하는 것도, 그 갈등을 넘어 통합을 추구해야 하는 것도 정치에 부여된 과제다. 정치가 본연의 역할을 다해주길 바라는 사회학자의 간절한 소망을 적어둔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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