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아파트 짓는데 3년"…건설업 비극 부르는 '죽음의 관행'

2025-09-15

산업현장에서 사망 사고 발생 시 과징금과 영업정지·등록말소 등 제재 수위를 대폭 강화한 이번 대책에 건설업계는 비상이 걸렸다. 제조업 등에 비해 건설업에서 사망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기 때문이다.

한 대형 건설사 임원은 15일 “건설업 등록말소 규정 신설은 사실상 문을 닫으라는 소리”라며 “제재 수위가 예상보다 세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또 다른 건설사 임원은 “건설경기 침체로 최근 몇 년 간 영업이익률이 2~3%밖에 안 되는데, 과징금 규모 역시 만만찮다”며 “지금도 안전 관리 비용으로 수백 억씩 지출하고 있는데 경영 부담이 더 커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지난해 주요 건설사 영업이익은 삼성물산(건설부문)이 1조원대를 벌어 들인 걸 제외하고 대우건설 4000억원대, GS건설 2800억원대, DL이앤씨도 2700억원대에 그쳤다. 현대건설은 연결 종속법인인 현대엔지니어링의 해외 플랜트 사업 손실로 1조2000억원대 영업손실을 냈다. 대부분 건설사들이 2021년 이후 건설경기 악화로 영업이익이 하락세다.

특히 새 정부 출범 후 이재명 대통령이 산업현장 사망 사고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보이면서 모든 건설사는 안전사고 예방에 비상이 걸린 상황이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 7~8월 잇따른 인명 사고로 정희민 대표이사가 자리에서 물러났고, DL건설도 지난달 사망 사고로 대표이사와 임원진 전원이 사표를 제출했다.

요즘 주요 건설사는 전 임원이 전국 공사 현장을 다니며 안전 점검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만전을 기하는데도 이달 들어서만 건설현장 사망 사고가 4건이나 발생했다. GS건설(3일), 대우건설(4·9일), 롯데건설(6일) 공사 현장에서다.

건설업계와 전문가들은 “처벌만 능사가 아니다”며 근본적인 제도 개선이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2022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모든 회사가 안전 관리 수준을 강화했지만 사망 사고가 줄지 않고 있다”며 “여기엔 관행처럼 굳어진 구조적인 문제점이 있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그간 구조적 관행인 ‘공사기간 단축’ 압박이 해소되지 않는 한 비극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속도보다 생명을 우선하고, 이 기준을 지키기 위해 비용·시간을 더 들여도 괜찮다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박철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1000세대 이상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짓는데 ‘3년 공사’가 일상이 돼 있다”며 “해외 어디에서도 이렇게 공사기간이 짧은 경우는 없다”고 지적했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준공기간 내 공사를 완성하지 못하면 지연일당 지체상금도 매일 부과된다”며 “상황이 이러다 보니 공기에 쫓겨 일어나는 사고가 상당수”라고 전했다. 특히 폭염·폭우 등이 잦아지면서 공기에 쫓기는 일이 더 늘었다는 설명이다. 다만 적정한 공기 연장은 분양가 등 공사비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건설현장 특성상 각 공정마다 협력업체에 일감을 넘기는데(하청) 여기에 불법 재하청이 끼면서 사고가 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헐값에 하청을 주다가 사고가 나는 식이다.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협력업체가 재하청을 주는 것까지 관여하기 힘든데 사고가 나면 책임은 대형사에 묻는 경우가 많다”며 “처벌을 하더라도 책임 소재가 명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은형 연구위원은 “제재만 강화해선 건설업 경기가 더욱 살아나기 어렵다”며 “현장 의견을 수렴해 근본적인 문제도 개선돼야 대책이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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