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국제보건규칙 어긴 북한의 ‘오물 풍선’

2024-07-02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북한은 대한민국을 표적 삼아 지난 5월 28일부터 최근까지 모두 일곱 차례에 걸쳐 누적 2400여 개의 오물 풍선을 날려 보냈다.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저급한 도발이어서 국제사회에서 북한은 ‘오물 정권’이란 비판을 받고 있다.

미국 국무부는 북한의 오물 풍선 도발에 대해 “역겹고 무책임하며 유치한 행위”라고 비판했다. 북한이 보낸 오물 풍선에는 인분으로 추정되는 물질은 물론이고 담배꽁초, 폐종이, 천 조각, 비닐 등 다양한 생활 폐기물이 들어있다.

북한의 오물 풍선에 대응해 정부는 9·19 군사 합의 전체의 효력 정지와 대북 확성기 재개 등으로 반응했다. 북한의 오물 풍선 살포로 남북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오물 풍선 문제는 정치·군사적 문제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는 중대한 도발이다. 필자는 코로나19 사태로 지구촌이 홍역을 치른 상황에서 북한이 인류의 감염병 확산 방지 노력을 저해하는 행태에 특히 주목한다.

북한의 오물 풍선은 감염병 전파와 환경 오염 등 다양한 건강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은 건강 관리 인프라 부족, 영양 부족, 깨끗한 물과 위생 시설 접근 어려움 등 취약한 공중보건 위생 상황에 놓여있다. 질병관리본부 발표에 따르면 북한 주민의 30% 이상이 감염병에 걸린 것으로 보고된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의도했든 아니든 오물 풍선은 공기·물·토양을 오염시키는 세균·바이러스·기생충을 운반해 퍼뜨릴 수 있다. 우리 국민이 감염원에 노출될 위험이 증가할 수 있다.

여기에는 감기와 독감 같은 일반적인 감염성 질병뿐 아니라 콜레라와 간염 같은 심각한 질병도 포함될 수 있다. 오물 풍선엔 알레르기 반응이나 호흡기 이상을 일으킬 수 있는 유해 물질이 들어 있을 수 있다. 이럴 경우 어린이와 노약자 등 건강 취약자들이 더 위험할 수 있다. 극단적으로 북한이 오물 풍선을 생화학 무기 살포 수단으로 이용할 가능성에 대한 불안과 공포는 국민의 정신 건강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오염 풍선 살포는 북한이 1973년 5월 회원국으로 가입한 세계보건기구(WHO) 규정 위반이라는 비판 여지도 보인다. WHO 헌장에는 ‘도달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건강을 향유한다는 것은 인종·종교, 정치적 신념과 경제적 또는 사회적 조건의 구별 없이 만인이 가지는 기본적 권리의 하나’라 명시하고 있다. WHO는 2005년 감염병 확산을 예방하고 통제하며 공중보건 문제에서 국가 간 협력을 촉진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국제 보건 규칙(IHR)’을 도입했다. 국경을 넘어 잠재적으로 감염 위험성이 있는 인체 유래물, 즉 인분이 들어있는 오물 풍선을 보내는 북한의 도발은 국제적 보건 약속을 심각하게 위반한 것이다. 인접국의 건강과 안전에 위협이 될 수 있어 국제사회가 예의주시해야 할 문제다.

정부는 국민 건강과 안전을 지키고 국제적으로도 책임 있는 행동을 보여주기 위해 북한의 오물 풍선 도발에 즉각적이고 적절한 조치를 해왔다. 이에 더해 정부는 WHO 등 국제사회와 협력할 필요가 있다. 상황을 긴밀히 감시하고 오물 풍선의 기원을 추적해 잠재적 공중보건 위협에 대비해야 한다.

공중보건 위협을 정치·군사적 도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용납될 수 없다. 북한은 오물 풍선 도발이 명백한 세계 공중보건 위협임을 깨닫고, 국제보건규칙을 준수하는 등 WHO 회원국으로서 책임 있는 행동을 해야 한다.

북한의 오물 풍선은 열악한 북한 당국의 보건 의식과 수준을 그대로 드러냈다. 북한이 오물 풍선 도발을 자행하는 동안 북한 주민은 여전히 결핵·간염·말라리아·만성호흡기질환·암 등 전염성 질병이나 비전염성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다.

생명권과 건강권 보장은 국제사회가 규정한 인권 보장을 위한 가장 기본 단계의 조치다. 북한 내부의 공중보건 개선은 취약한 주민의 인권 증진에도 기여할 수 있다. 한국과 국제사회는 언제든 북한의 공중보건 문제 해결을 도울 준비가 돼 있다. 북한은 반감만 일으키는 불필요한 도발을 중단하고, 주민의 생명권과 직결된 본질적 문제부터 챙기길 촉구한다.

이정재 홍콩대학 간호대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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