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에게 물어봤습니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이 국회에 스며들고 있습니다. 심심찮게 국회의원 입에서 “챗GPT에게 물어봤더니 이렇게 답하더라”는 질의가 나옵니다. 정부를 비판하며 “챗GPT가 정책 결정을 하고 법원에서도 챗GPT가 판결했으면 좋겠다”는 발언도 나왔습니다.
한동안 챗GPT는 우리말 학습(머신러닝)이 덜 돼 엉뚱한 답을 내놓곤 했습니다. 챗GPT 국내 도입 초기, 피식대학 등 코미디 유튜버들에게 웃음 소재로 활용될 정도였죠. 지금은 달라졌습니다. 기업에서는 해외 문서 통번역, 비즈니스 메일 최종 교열, 코딩 오류를 검사하는 디버깅 과정에서도 챗GPT를 활용하곤 합니다. 소재와 줄거리를 던져주면 그럴싸한 웹소설을 써주기도 한답니다. 국회의 챗GPT활용 수준은 어디까지 왔을까요.
◆챗GPT에 ‘02-800-7070’를 물었다
챗GPT가 22대 국회 회의록에 가장 먼저 등장한 것은 7월 1일 국회 운영위원회 대통령비서실 대상 현안질의였습니다. 채상병 사망 사건 수사 외압 의혹과 관련, 민주당은 대통령실이 외압의 주체라는 주장을 이어가며 대통령실을 추궁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02-800-7070’이라는 번호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에게 전화가 온 것을 문제 삼았습니다.
민주당 강유정 의원은 정진석 비서실장에게 “구글 검색 해봐라, 02-800으로 시작하는 대통령실 번호가 좌르르 뜬다”며 “챗GPT에 물어봤다. 국번이 800으로 시작하는 대통령실 각 부서 전화번호 알려줘라고 했더니 번호가 좌르르 나온다”라고 따져 물었습니다. 정 실장은 “원칙적인 입장을 설명드렸다”라며 답을 피했습니다. 반론도 챗GPT를 활용해 바로 나왔습니다. 국민의힘 권영진 의원은 매달 20달러가 드는 챗GPT 유료 결제를 했다며 “02-800-7070이 어떤 번호냐 물엇더니 대통령실 번호라면서 근거로 언론보도를 대더라”라고 반박했습니다. 챗GPT도 결국 뉴스 검색을 통해 알려진 정보를 사용자에게 출력한 것일뿐, 실제 대통령실 연락처인지 아닌지는 밝혀지지 않았다는 의미였습니다. 강 의원은 이에 해당 번호가 “구글에 검색하면 나온다”라고 재차 반박했습니다.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는 챗GPT를 활용, 정부 변화를 이끌어 낸 질의가 나왔습니다. 주인공은 민주당 소속 곽상언 의원입니다. 곽 의원은 7월 30일 특허청 업무보고에서 “특허 중 ‘인공지능을 이용한 로또복권 당첨번호 예측 방법 및 예측 시스템‘이 2018년 7월 출원된 뒤 2021년 9월 23일 등록됐다”며 “AI에 로또 당첨번호를 물어봤는데 챗GPT는 무작위 추첨이라 예측이 불가능하다고, 구글 제미나이도 여러 이유를 들며 예측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특허청에서 제대로 심사한 것이 맞는가”라고 따졌습니다. 김완기 특허청장은 “한 번 살펴보도록 하겠다”라고 답했습니다. 곽 의원실은 추후 특허를 취소시키겠다고 특허청에서 알려왔다고 합니다.
◆AI사과문, 유사도 검사에 계산까지
챗GPT가 가장 많이 활용된 22대 국회 상임위는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입니다. 단순 검색 수준에서 챗GPT를 활용한 ‘생산‘이 이뤄진 상임위기도 합니다.
조국혁신당 이해민 의원이 ‘생산’의 주인공입니다. 이해민 의원은 7월 24일 당시 후보자였던 이진숙 방통위원장 청문회에서 과거 이 위원장의 ‘막말 논란’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던 중 챗GPT가 작성한 사과문을 읽으라고 촉구했습니다. 해당 사과문은 “나 이진숙은 MBC 보도본부장 당시 전 국민에게 트라우마를 안긴 전원구조라는 세월호 참사 당시 오보와 2차 가해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며 그릇된 판단으로 유가족과 국민에게 큰 상처를 입힌 점을 진심으로 사과합니다. 죄송합니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의원은 “상식적 수준의 사과문이고 기계도 작성할 수 있는 사과문”이라고 읽을 것을 촉구했고, 이 위원장은 “제 언어로 진심으로 사과드렸다”라고 읽을 것을 거부했습니다.
민주당 황정아 의원은 가장 적극적으로 챗GPT를 활용하는 의원입니다. 8월 7일 과방위 ‘불법적 방문진 이사 선임 등 방송장악 관련 2차 청문회’에서 신임 이사들의 불출석 사유서 유사도를 측정했습니다. 그는 김태규, 김동률, 윤길용, 이우용 증인이 모두 소환 절차를 문제 삼으면서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는데 서로 간 유사도가 ‘20%가 넘는다’라며 집단적 불출석을 공모한 것이 아니냐고 주장했습니다. 같은 달 9일 3차 청문회에서는 챗GPT에 물어본 결과 31명의 방문진 이사 후보 중 6명 이사를 선임할 확률이 0.000136% 가량이라며, 졸속 심의로 후보자가 선출됐다고 강조했습니다.
챗GPT가 유사도를 측정하는 알고리즘은 TF-IDF(Term Frequency - Inverse Document Frequency)라고 합니다. 챗GPT에 물어보니 “파이썬 모듈을 활용해 각 텍스트를 벡터로 변환한 뒤, 벡터 간의 코사인 유사도를 측정하는 방식”이라고 합니다. 쉽게 말해 특정 단어가 얼마나 자주 쓰이는 지, 또 특정 단어가 얼마나 희귀하게 쓰이는 지를 교차 분석하는 방식입니다. 방문진 이사 후보 31명 중 6명 이사를 뽑는 방식은 학창 시절, 수학시간에 배운 ‘조합’을 활용하면 계산이 가능합니다. 31명 후보자 중 이사 6명을 고르는 경우의 수는 73만6281이고, 특정 6명의 후보자가 뽑힐 확률은 1/73만6281입니다. 이를 백분율로 환산하면 황 의원이 말한 값이 됩니다.
◆“입법부 대체 가능하냐” 물음에 챗GPT는
소속 상임위원들이 적극적으로 챗GPT를 활용하는데 고무된 걸까요. 민주당 소속 최민희 과방위원장도 나섰습니다. 최 위원장은 8월 14일 ‘불법적 방문진 이사 선임 등 방송장악 관련 2차 청문회’에서 “83명의 후보자를 기존 방통위 이사 선임 절차로 하면 최소 32일에서 44일이 소요된다고 챗GPT가 분석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방문진 불법적 이사 선임이 억울한 사람을 많이 양산했다”며 이러한 말을 남겼습니다.
“저는 그냥 챗GPT가 정책 결정 했으면 좋겠어요. 법원에서도 챗GPT가 판결했으면 좋겠습니다, 억울한 사람 없게. 너무 억울한 사람을 양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물어봤습니다. 챗GPT가 대한민국 국회에서 널리 사용되면 어떨까, 생성형 AI가 입법부를 대체할 수 있을까라고 말이죠. 챗GPT는 긍정적 변화와 한계가 있다면서도 입법부를 완전히 대체하는 것은 “매우 복잡하다“고 답했습니다.
챗GPT가 뽑은 긍정적 변화는 정보 분석 및 처리 과정의 효율화입니다. 방대한 데이터를 신속 분석·요약할 수 있어 입법안을 검토하거나 정책을 평가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고 합니다. 입법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사전에 분석한 ‘입법영향평가’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법안 초안을 빠르게 작성하거나 기존 법안을 분석, 문제점을 찾아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도 했습니다. 이는 기존 법 혹은 상위법과 충돌하진 않은 지, 문구는 적절한 지를 심의하는 체계·자구심사와도 연결되는 지점입니다. 어쩌면 매번 원구성 협상때마다 벌어지는 법제사법위원회 쟁탈전을 피할 수도 잇겠네요.
한계는 명확했습니다. 챗GPT는 책임의 주체가 아닙니다. 특정 사회 계층이나 소수자 보호를 위한 입법에 있어 챗GPT가 역할을 할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최적의 결정을 도출 할 수 있다지만 스스로 ‘데이터 편향’을 우려하기도 했습니다. 챗GPT는 “입법부의 역할은 단순한 데이터 처리나 문제 해결을 넘어, 국민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라며 “AI는 인간의 결정을 보조하는 중요한 도구로 자리 잡을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인간의 판단과 책임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국회에서 챗GPT는 아직까지는 관심 환기용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국회 근무 11년차인 한 보좌진은 챗GPT를 의정활동에 써봤냐는 질문에 단호히 “써보지 않았다”고 답했습니다. 생성형 AI를 통해 법안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고 합니다. 다만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은 챗GPT를 통해 연설문을 작성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 의원은 7월 8일 MBC 라디오 인터뷰에서 채상병 특검법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와 관련, “챗 GPT를 이용해 윤석열 대통령을 비판하려고 했다”며 삼강오륜·군신유의·부자유친·이슬람 율법 관점에서 윤 대통령을 비판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정치에서 ‘말’은 군인의 무기와 다름없습니다. 앞으로 의원 발언 말미에 “이 연설문은 챗GPT가 작성했습니다” 혹은 “이 연설문은 제가 작성했습니다”와 같은 안내 문구를 넣어야 하는 건 아닐지.
김현우 기자 wit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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