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물가를 잡는다며 정부가 할당관세로 수입 농축수산식품에 깎아준 관세가 지난 3년간 2조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됐다. 하지만 농축수산식품 수입가격이 낮아져도 소비자가격은 그만큼 낮아지지 않거나 오히려 오르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처럼 할당관세 중심의 물가대책이 ‘맹탕’이라는 지적이 계속되지만 정부는 연초부터 설 물가를 잡는다면서 또 한번 할당관세 확대 카드를 꺼내 농업계의 빈축을 사고 있다.
정부는 최근 ‘설 성수품 수급안정대책’을 통해 4월까지 배추와 무에 할당관세를 적용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배추와 무에 붙는 각각 27·30%의 관세가 이 기간 사라진다.
앞서 ‘2025년 경제정책방향’에선 과일류 10종에 추가 할당관세를 적용하겠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상반기에 바나나 20만t, 파인애플 4만6000t, 망고 2만5000t 등에 대해 관세 30%가 없어진다. 같은 기간 만다린과 오렌지는 50%에서 20%로, 두리안과 으깬 감귤류는 45%에서 15%로 관세가 낮아진다.
정부는 2022년부터 밥상물가 안정을 명목으로 국세 수입 감소를 무릅쓰면서까지 할당관세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본지가 송옥주 더불어민주당 의원(경기 화성갑)실을 통해 확보한 관세청 자료에 따르면 정부가 지난해 1∼8월 102개(HS10단위 기준) 농축수산식품 품목에 할당관세를 적용하면서 발생한 관세 지원액(관세 인하액)이 5022억원에 달했다. 송 의원은 이를 1년치로 환산할 경우 보수적으로 추정해도 7000억원 수준의 관세 지원이 발생했을 것으로 봤다. 2022년 8774억원(67개 품목), 2023년 6250억원(83개 품목)을 포함하면 이번 정부 들어 3년간 2조원이 넘는 국세 수입이 할당관세로 줄어든 셈이다.
하지만 할당관세가 밥상물가 안정에 기여한 정도는 낮았다. 송 의원이 2022∼2024년 중 1년 이상 할당관세를 적용한 주요 17개 품목을 대상으로 소비자가격 변동률을 분석한 결과, 할당관세에 따른 수입가격 하락이 실제 소비자가격에 미친 영향은 미미했다.
미국산 냉장 소갈비의 경우 2022년 할당관세가 적용되면서 23%의 수입가격 하락 유인이 발생했지만 소비자가격은 오히려 2021년보다 45% 상승했다. 2022∼2023년 할당관세가 적용된 삼겹살은 18∼20%의 수입가격 하락 유인에도 2022년 소비자가격은 전년 대비 12%, 2023년은 2% 상승했다. 오렌지는 할당관세로 지난해 27%의 가격 하락 유인이 발생했지만 소비자가격은 반대로 4.6% 올랐다. 지난해 배추·무는 21%의 가격 하락 유인에도 소비자가격은 각각 17·24% 상승했다.
이 간극을 두고 할당관세 과실을 중간 유통업자만 누리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송 의원은 “지난 3년간 할당관세 적용으로 장바구니 물가 억제에는 실패한 반면 같은 기간 수입업체와 도매시장법인·식품기업의 경영 실적은 나아졌다”면서 “바나나 등을 수입하는 돌코리아는 2023년 영업이익이 전년보다 10배나 증가했고, 최근 2년간 서울 가락시장 6개 도매법인의 영업이익률도 국내 도매 및 상품중개업 평균이익률(4%)보다 훨씬 높은 22∼24%를 기록했다”고 꼬집었다.
이어 “쇠고기·닭고기 등에 무관세를 적용해 농업 생산기반을 무너뜨리는 정책은 그나마 민감품목에 관세를 부과하는 자유무역협정(FTA)보다 농민에게 더 나쁘다”면서 “당국은 할당관세의 실효성을 면밀하게 검증하는 동시에 담합이나 사재기 등 부정 유통행위에 대한 감시·단속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양석훈 기자 shakun@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