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고한 사람 3402명이 1분 만에 죽었다. 사이버 테러로 인해 발생한 파괴적인 공격이다. 설상가상으로 전 국민의 셀폰에 “이 일은 다시 일어날 것이다”라는 메시지가 전송되고 극도의 공포가 국가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간다. 이 사건 이후 미국 정부는 ‘제로 데이 위원회’를 조직하고 전직 대통령 조지 멀렌에게 수장을 맡긴다. 영국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이 남긴 “좋은 위기를 낭비하지 말라”는 말을 되새긴 조지 멀렌은 사이버 테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전면에 나선다.
넷플릭스 6부작 ‘제로 데이’(Zero Day)는 할리우드의 전설적인 배우 로버트 드니로가 처음으로 시리즈물의 주연과 제작을 맡은 작품이다. 드니로가 연기한 ‘조지 멀렌’ 캐릭터는 회고록을 집필 중인 존경받는 전직 미 대통령이다. 80대에 접어든 노장 로버트 드니로는 “노아 오펜하임에게 들었는데, 대통령이 더 이상 대통령이 아니게 되면 일종의 공백이 생긴다고 한다. 여러 면에서 할 일이 없어진다는 것. 그래서 흥미로웠다”며 이 역할을 준비하며 특별한 연구가 필요하지 않았다고 언급했다. 그는 “이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고 느꼈다. 내 자신 그 자체였다”고 밝혔다. 이어 멀렌을 두고 “솔직하고 교활하지 않은 인물”로 묘사하며 “진실을 말하는 것”이 캐릭터의 핵심이라고 덧붙였다.
‘제로 데이’는 절대 권력의 위험성, 헌법의 중요성, 정치적 진실성 등 현대 사회의 핵심 쟁점들을 날카롭게 다룬다. 드니로는 “이 작품은 단순한 픽션이 아닌, 우리가 실제로 목격하고 있는 정치적 현실에 대한 심도 있는 성찰”이라고 강조했다. ‘제로 데이’에 등장하는 인지 장애를 겪는 대통령은 최근 몇 년간 미국 정치에서 논란이 된 실제 이슈를 반영한다. 흑인 여성 대통령 캐릭터는 미국 사회의 다양성과 변화하는 정치 지형을 상징하며,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소시오패스 억만장자는 현대 자본주의에서 거대 기업과 초부유층의 정치적 영향력에 대한 우려를 대변한다.

‘제로 데이’는 글로벌 안보 위협, 사이버 테러, 기후 위기 등 현대 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위기 상황을 배경으로 한다. 드니로는 “미디어의 역할과 가짜 뉴스, 음모론의 확산이 작품에서 중요하게 다뤄진다”며 “우리는 진실과 허구 사이의 경계가 무너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제로 데이’는 이런 복잡한 정보 생태계 속에서 민주주의가 어떻게 위협받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이 작품의 주제가 무엇인지, 우여곡절이 어디에 있는지 등을 아는 사람들이 쓴 실제적인 대본이어서 좋았다. 이미 많은 부분이 완성돼 있어 대본에 의해 보호받고 있었다”고 밝혔다. 실제로 ‘제로 데이’의 제작진은 노아 오펜하임(전 NBC뉴스 사장), 마이크 슈미트(퓰리처상 수상 저널리스트), 레슬리 링카 글래터 등 정치와 미디어에 정통한 인물들이 참여했다. 드니로는 이런 정치 베테랑들의 참여가 작품의 진정성에 크게 기여했다며 “어디에서든 궤도를 벗어날 경우 다시 궤도에 오를 수 있도록 도와줄 팀이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우리는 항상 질문을 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확인했다”고 밝혔다.
‘제로 데이’란 소프트웨어가 패치나 수정 없이 출시되어 공격에 취약해지는 날을 말한다. 악성 소프트웨어(맬웨어)가 공격에 무방비 상태일 때 소프트웨어에 주입되거나 침입하는 것으로 패치를 발표한 시간이 없기 때문에 ‘제로 데이’ 공격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렇다면 넷플릭스 시리즈 ‘제로 데이’와 같은 사이버 테러가 현실에도 가능할까. 6화에서 제로 데이 위원회 직원인 페닝턴(제이 클레이츠)은 맬웨어가 어떻게 그렇게 널리 퍼졌는지 밝힌다. “테크 억만장자 키더가 자신의 앱에 자동 업데이트를 통해 맬웨어를 밀어넣었고, 이 앱은 미국의 휴대전화 80%에 다운로드되었다. 그 후 블루투스, USB 등을 통해 접촉한 모든 셀폰으로 이동하여 광범위하게 배포되었다”는 석연치 않은 설명이다. 이에 대해 전직FBI 특수요원이자 사이버 보안 전문가 클린트 와츠는 “넷플릭스 시리즈 ‘제로 데이’에 등장한 사이버 공격은 인간적 차원에서 이뤄졌음이 핵심이다. 단순히 누군가 0 대신 1을 입력한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조직적으로 이 공격을 실행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움직였다는 것. 따라서 이러한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결국 나쁜 기계는 없다. 나쁜 인간들이 존재할 뿐이다.
/하은선 골든글로브 재단(GGF)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