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생 '메기 리더'의 탄생…AI 시대, 판 뒤흔든다

2025-12-08

정기선(43) HD현대 회장은 재계 10대 그룹 중 유일한 1980년대생 총수다. 그는 경기도 판교 사옥 20층 집무실까지 직원들과 함께 공용 엘리베이터로 출퇴근한다. 집무실은 43㎡(약 13평) 규모다. 구내식당에서 직원들과 함께 식사하고, 의미 있는 행사에 ‘커피차’를 쏘기도 한다. 회사 유튜브에도 단골로 출연하는데, 지난 10월 회장 취임 직후 임직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한 약속(“언제 어디서든 여러분과 만나 경청하고 소통하겠다”)을 지키는 행보다.

연말 재계 임원 인사에서 총수 3~4세 최고경영자(CEO)부터 신임 상무까지 80년대생이 주목받고 있다. 과거에는 최신 유행에 민감한 유통업계에서 주로 젊은 인재를 발탁하곤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제조업까지 업종을 불문하는 추세다. 한국마이크로소프트 최고인사책임자(CHRO)를 지낸 한준기 동명대 부산국제대 교수는 “연말 인사에서 기업마다 ‘비상경영’을 강조하며 전체 임원 자리를 줄이는 ‘칼바람’이 불었다”면서 “여전히 70년대생 임원이 주류지만 80년대생 젊은 임원의 발탁이 두드러졌다”고 평가했다.

특히 재계에선 80년대생 총수 일가가 전진 배치됐다. SK그룹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장녀 최윤정(36) SK바이오팜 사업개발본부장을 전략본부장으로 선임했다. 전략본부가 회사의 핵심 의사결정 기능을 맡는 만큼 그룹 경영에 한발 다가갔다는 평가다. 롯데그룹은 신동빈 회장의 장남 신유열(39)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부사장)을 롯데바이오로직스 대표로 발령했다.

이 밖에도 구자열 LS 이사회 의장의 장남 구동휘(43) LS MnM 부사장이 사장에 올랐다. 허진홍(40) GS건설 상무는 부사장, 허태홍(40) GS퓨처스 상무는 (주)GS 전무로 각각 승진했다. 신상열(32) 농심 부사장, 전병우(31) 삼양식품 전무 등 90년대생도 눈에 띈다.

일반 임원 인사에도 80년대생 바람이 불었다. 삼성은 최근 임원 인사에서 1985년 이후 출생한 임원 비중이 15%로 나타났다. SK는 80년대생이 20%였다. 한화는 최근 4개 계열사 임원 승진자 14명 중 5명, CJ는 신규 임원 45%가 각각 80년대생으로 집계됐다. 회사마다 “젊은 인재를 전진 배치했다”고 설명했다. 4대 그룹의 한 부사장은 “젊은 총수는 과거와 달리 실시간 메신저로 보고받고 바로 결론을 내리는 업무 처리 방식을 선호한다”며 “80년대생 임원의 기동력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승진자 면면을 보면 과거 고속 승진의 보증수표였던 재무나 기획, 전략 부서 대신 인공지능(AI), 로봇, 차세대 통신 등 첨단기술 분야 연구개발(R&D) 인력이 많았다. 한 10대 그룹 인사담당 임원은 “80년대생 임원은 ‘디지털 네이티브’인 데다 글로벌 경험과 기술·서비스 전문성을 갖춘 인재가 많다”며 “기업마다 화두인 AI 전환을 가속하고 MZ(1980~2000년대생) 세대 직원과 소통, 미래 먹거리 중심 신규 사업 추진을 위한 포석”이라고 설명했다.

80년대생 임원 선임 자체가 ‘쇄신’의 신호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삼성전자 인사팀장(전무)을 지낸 이근면 전 인사혁신처장은 “연공서열이 강한 문화에서 80년대생 임원을 앞세워 세대교체를 위한 ‘메기’ 역할을 기대할 뿐 아니라 자연스레 윗 세대 임원들을 용퇴(勇退)로 이끄는 신호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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