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 시절 피부색이 다른 나를 받아주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한인이 아닌 흑인 사회에서 성장했는데 제 아이들은 학교에서 한인학생회를 조직할 정도로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요.”
제11차 세계한인정치인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퍼트리샤 리(50) 미국 네바다주 대법관은 5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진행된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말을 한마디도 못 하는데 반갑게 맞아주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한국 사회의 일원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자부심도 느낀다”며 모국 방문 소감을 밝혔다. 세계한인정치인포럼은 현직 한국계 정치인들과 글로벌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정책 교류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다. 올해는 리 대법관을 포함해 10개국 51명의 한국계 정·관계 인사들이 참석했다.
네바다주 대법관은 총 7명으로 선출직 공무원이다. 라스베이거스로 잘 알려진 네바다주의 아시아계 인구는 7%에 불과하다. 리 대법관은 2022년 임기 2년을 남겨두고 퇴임한 전임자에 이어 아시아계 여성으로는 처음 대법관에 올랐고 지난해 압도적인 지지율로 재선임됐다. 그는 “정치적 기반이 약한 한국계 및 아시아계 이민자들이 미국 내 주류 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하고 있다”며 “백인 주류 사회에서 소수 인종으로서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서는 누구보다 모범을 보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리 대법관의 모국 방문은 지난해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한국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다는 그는 우연한 기회에 만난 로스앤젤레스 한국 영사관 직원을 통해 세계한인정치인포럼 초청을 받아 지난해 46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았다. 그는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이 없었기에 나를 한국인으로 인정해줄까 하는 걱정이 있었다”면서 “자라면서 어머니도 한국에 대해 거의 말씀하시지 않았기 때문에 비빔밥과 김치찌개 같은 음식을 통해 한국을 접한 게 전부였고 심지어 한국 이름조차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 ‘리’라는 이름도 결혼하면서 독일계 미국인인 남편의 성을 딴 것이지 한국과는 상관이 없다”며 “어찌 됐건 결국은 ‘이’ 씨가 됐다”고 미소를 지어 보였다.

1975년 주한미군 출신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리 대법관은 세 살 때 미국으로 이주했다. 아버지의 근무지인 캘리포니아주 샌타바버라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그는 일곱 살 때 부모의 이혼으로 졸지에 영어를 못하는 어머니와 어린 두 동생을 책임져야 하는 소녀 가장이 됐다. 리 대법관은 “집세를 내지 못해 거리로 쫓겨나서 차에서 자거나 임시로 지인들의 집에 얹혀살기도 했고 노숙 생활을 하기도 했다”며 “쉽지 않은 삶을 살았다”고 회고했다.
절망에 빠져 있던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건 주변에서 내민 도움의 손길이었다. 미 연방 정부가 저소득층 학생을 지원하는 ‘업워드 바운드 프로그램’을 통해 뒤늦게 공부를 시작한 리 대법관은 명문 서던캘리포니아대(USC)에 입학해 전액 성적 우수 장학금을 받고 졸업했다. 리 대법관은 “가족을 돌봐야 했기 때문에 캘리포니아주에 위치한 5개 대학에 입학원서를 냈는데 모두 합격했고, 집에서 가장 가까운 USC에 진학했다”며 “워싱턴DC에 있는 조지워싱턴대 로스쿨에 진학하면서 처음으로 캘리포니아를 벗어났다”고 전했다.
졸업 이후 로펌 소속 변호사로 활동해온 리 대법관은 가정 폭력 피해 아동·청소년이나 여성 등 사회적 약자 문제에 주목했다. 이러한 공로로 미국변호사협회가 수여하는 ‘프로 보노 공로상’과 ‘공익 분야 올해의 변호사상’을 수상하며 지역사회에서 ‘약자를 위해 싸우는 변호사’라는 평가를 받았다. 리 대법관은 “어렸을 때 주변으로부터 받은 도움을 사회에 돌려주고 싶었다”며 “많은 아이들이 어려운 가정환경을 이겨내고 성공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아시아태평양변호사협회(LAWASIA) 활동과 대학 특강 등을 통해 청소년과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멘토링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 청소년들에게도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싶다는 리 대법관의 마지막 공식 일정 역시 9일 서울 대일외고에서 진행되는 특강이다. 그는 “한국 학생들에게 미국 법에 대해서 알려주고, 어떻게 대법관에 올랐는지도 자세히 들려줄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국 방문 직전 두 자녀와 함께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재미있게 봤다는 그는 K팝뿐 아니라 음식·문화·역사 등 한국의 모든 것에 관심이 생겼다고 했다.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되찾는 데 아이들이 큰 도움이 됐다고도 했다. 한국을 떠난 후 처음으로 모친과 함께 고향인 전주도 방문할 계획이다. 리 대법관은 “제 고향이 전주라는 것만 알고 있다”면서 “제가 살던 집도 가보고 어릴 적 먹었던 비빔밥도 먹고 한 살 때 마지막으로 입은 한복도 입어볼 생각”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