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성칠조(鐘聲七條) 5

2025-07-24

낮은자의 목소리

보신, 화신 참이 아니고 망연으로 인함이니

법신은 청정하여 가이 없구나!

천 강에 물 맑으니 천개의 달 비치고

만 리에 구름 없으니 만리에 푸른 하늘이네.

이 시간에 탁마할 공안은 격외도리형 공안인 무문관 제16칙 종성칠조(鐘聲七條)5.입니다.

아무리 높은 정상을 간다고 해도 결국 중요한 것은 바로 이 한걸음인데요. 지금 이 한걸음을 내딛지 않고서는 아무리 논의되는 2보나 3보라 해도 단지 백일몽에 지나지 않으며, 그저 관념에 불과하다는 말이지요.

사실 우리가 두려운 것은 1보 내딛는다는 것이 무섭거나 1보 내딛는 것을 회피하려는 무의식 때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드디어 운문선사(雲門, 864~949)가 우리에게 던진 화두를 음미할 준비를 어느 정도 갖춘 것 같습니다. 세계는 이처럼 넓은데, 무엇 때문에 종이 울리면 칠조(七條)의 가사를 입는 것일까요?

운문 선사는 세상 일체의 것에 집착하지 않는 대 자유인이 되겠다는 투철한 소망을 품고 있는 수행납자들이 종이 울리니 자동적으로 가사를 걸치고 공식행사에 참여하고 있는 장면을 무척 아이러니하게 여겼던 모양입니다.

운문 선사의 사자후는 선방(禪房)에서 수행하는 납자들의 매너리즘을 질타하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세계는 이렇게 넓고 그만큼 가야 할 곳도 많고 해야 할 것도 많은데, 너희들은 어떻게 선방에 틀어박혀 이다지도 매너리즘에 빠져 마치 파블로프의 개처럼 조건반사적으로 살아가고 있냐는 말이지요. 그러면서도 과연 그대들이 주인공의 삶을 살고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라고 말입니다.

예를 들어 설악산에 오른다고 해보겠습니다. 1708m인 대청봉을 정상으로 하는 이 설악산에 오르는 등산로는 많습니다. 오색약수계곡으로 올라도 되고, 천불동 계곡으로 오르거나 가야동 계곡으로 가거나 아직 개척되지 않은 수많은 등산로도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등산로 중에 어느 길이 좋을까에 대해 자유롭게 생각하는 그 순간에 사실은 대청봉에 이르는 단 한 걸음도 내딛지 않고 있었다는 말이지요.

어느 한 길을 선택하여 지금 이 순간에 바로 1보를 내딛는 순간, 우리의 뇌리에는 수많은 다른 등산로가 봄눈 녹듯이 사라져 버릴 겁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몸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오색약수계곡에서 정상을 향해 한 걸음을 내딛었더라도 가지 않는 다른 방향을 떠올리며 번뇌하고 있다면, 우리는 제대로 당당하게 한 걸음 한 걸음 정상으로 걸어가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오색약수계곡으로 출발했는데, 마음은 다른 등산로에 사로잡혀 있다는 말이지요.

이것이 집착이라는 건데요. 이 집착 때문에 실은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지 못하는 것 아닐까요? 어느 길이든 상관이 없습니다. 칠조의 가사를 입은 스님이어도 되고, 아니면 직장에 다니는 회사원이어도 되고, 집안일 돌보는 전업주부여도 좋습니다.

당당하게 자신이 한걸음 내딛은 길을 한걸음 한 걸음 제대로 이어간다면, 우리는 정상에 혹은 주인의 삶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지금 여기 함께하시는 모든 분들이 주저함 없이 한 걸음씩 실천하는 대 자유인의 삶으로 여여하시길 기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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