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9일 미국 워싱턴으로 출국했다. 재계에 따르면 이 회장은 이날 오후 4시쯤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미국과의 상호관세 발효를 3일 앞둔 시점의 워싱턴 행(行)이라, 대미 무역 협상을 측면에서 지원할 것이라는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 회장의 출국은 23조원 규모의 테슬라 첨단 반도체 생산을 수주한 사실이 공개된 지 하루 만이자, 지난 17일 대법원 무죄 판결 이후 첫 외부 일정이다. 전날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삼성 텍사스 신규 공장이 테슬라의 차세대 AI6 칩 생산에 전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번 출장 목적은 글로벌 사업 협력·구상으로 알려졌다. 다만 삼성과 테슬라가 인공지능(AI) 첨단 반도체 계약한 직후라, 정부의 대미 무역 협상 카드로 미국과의 반도체 기술 협력이 오를 거라는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 정부가 지난 27일 유럽연합(EU) 관세를 15%로 결정하면서도 반도체 장비에는 ‘상호 무관세’ 합의하는 등, 첨단 기술 분야 전략적 품목은 따로 챙기고 있어서다.
테슬라 자율주행용 인공지능(AI) 칩 AI6 전용 공장이 된 삼성 텍사스 테일러 팹이 주목받는 건 그래서다.

지난 23일 테슬라 실적발표 후 컨퍼런스콜에서 일론 머스크 CEO는 AI6 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AI4는 현재 테슬라 모델3 차량 등의 자율주행용 칩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차세대 AI6의 쓰임새는 단순한 차량용에 그치지 않는다는 얘기다. 테슬라가 개발하고 있는 인간형 로봇 옵티머스에 사용됨은 물론, 여러 개의 칩을 서버 보드에 장착해 강력한 AI 슈퍼컴퓨터(도조)를 만든다는 거다.
이러한 머스크 CEO의 구상은 AI 인프라 시장을 장악한 엔비디아에 낸 도전장이다. 엔비디아는 그래픽처리장치(GPU) 8개를 통합한 AI 서버(DGX B200)와 GPU 72개를 연결한 AI 슈퍼컴퓨터(NVL72)를 시장에 내놓고 있다. 각각 가격은 수억~수십억 원에 달한다.
테슬라가 지금은 자사 AI 구동을 위해 엔비디아 GPU를 대량 구매하고 있지만, 장차 삼성 파운드리에서 생산할 AI6 칩을 기반으로 자율주행·로봇 등 AI 추론을 위한 자체 슈퍼컴퓨터를 구축하겠다는 계획을 숨김 없이 드러낸 것이다.
머스크 CEO가 전날 자신의 X에 “165억 달러라는 숫자는 최소 금액에 불과하며, 실제 생산량은 그보다 몇 배 더 많을 것”이라고 말한 배경이다. 그는 “이 소식의 중요성을 이해하는 이는 극소수다. 2~3년 이내에 (중요성이) 명확해질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인텔은 지난 25일 “더 이상 백지 수표는 없다”라며 고객 수주 없이는 첨단 파운드리 투자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제 미국 영토에서 첨단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회사는 TSMC 외에 삼성 뿐이다.
앞서 지난 27일 아카자와 료세이 경제재생상은 무역 협상을 통해 미국에 약속한 5500억 달러(약 760조원)의 투자 패키지에 대해, 일본 장비·부품을 사용하는 TSMC 미국 공장 지원을 포함할 수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한국 정부와 미국의 관세 협상 가운데, 삼성 테일러 공장과 이에 연계한 한국 소재·부품·장비 기업의 투자 및 진출이 주목받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