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기후 리더십 공백, 한국이 채울 기회

2025-06-0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월 취임 직후 파리기후변화협정 탈퇴 선언은 국제사회에 작지 않은 충격을 안겼다. 세계 최대 경제 대국이자 온실가스 배출 2위 국가인 미국이 기후변화 대응에서 한발 물러섰기 때문이다. 많은 전문가가 미국의 이런 행동을 ‘세계질서 흔들기’의 일환으로 해석했고, 글로벌 협력체제에 심각한 균열이 생길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그러나 이 같은 리더십 공백은 단순한 후퇴로만 보기 어렵다. 오히려 국제사회 재편의 동인으로 작용하며 새로운 기회의 문을 열어주고 있다. 특히 대한민국 입장에서 이런 틈을 전략적으로 활용해 국제적 위상을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살려야 한다.

트럼프 2기 정부, 파리협정 탈퇴

기후동맹 활용, 중동·개도국 협력

국제적 위상 높일 기회로 살려야

기후변화는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다. 이는 국가 경제, 산업 구조, 외교 전략 전반에 걸친 핵심 의제로 부상하고 있다. 재생에너지 전환, 원자력, 탄소 포집·활용·저장(CCUS), 기후금융 등은 21세기 신산업이자 국가 성장동력의 핵심축이다. 그러나 트럼프 2기 정부는 이런 흐름을 거부하고,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 정책으로 회귀했다. 그 결과 미국의 기후 투자 규모는 축소됐고, 시장 선점의 기회는 중국 등 경쟁국으로 넘어갔다.

중국은 파리협정을 존중하면서 자국 기술을 앞세워 미래의 신시장 개척을 위해서 개도국과의 기후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일대일로(一帶一路) 구상과 연계된 기후외교를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과의 연대를 다지는 수단으로 활용한다. 중국 전기차는 선진국의 자동차 산업에 큰 위협으로 다가왔다. 반면 미국은 국제무대에서 그동안 키워온 신뢰를 크게 잃었고, 호주·캐나다 등 일부 선진국에서는 반(反) 트럼프 기치를 내건 정당이 총선에서 대승했다. 이들은 미국의 기후 리더십 공백 메우기에 적극적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한국의 선택이다. 이 기회를 단순히 관망하거나 소극적으로 대응할 것이 아니라 기회의 공간으로 인식하고 선제적으로 잘 채워나가야 한다. 한국은 기후 이슈에서 ‘추격자’가 아닌 ‘선도자’로 도약할 충분한 여건을 갖추고 있다.

먼저 유럽연합(EU)·영국·호주·캐나다·일본·싱가포르 등 기후변화 대응에 적극적인 국가들과의 기후동맹으로 탄소 감축 기술, 탄소 시장 메커니즘, 정책 일관성을 확보해야 한다. 기후 정책의 국제적 정합성을 높이고, 공동 프로젝트를 통해 기술 교류와 시장 확대를 이끌 수 있다.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 달성에도 기여하고 산업계에도 투자와 일자리 창출 기회가 될 수 있다.

둘째, 중동 국가들과의 기후 협력은 새로운 전략적 지평을 열어 줄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는 석유 이후 시대를 대비해 수소·태양광·CCUS 분야에 대규모 투자를 추진 중이다. 한국의 에너지 기술과 프로젝트 관리 역량은 이들 국가와의 파트너십 구축 과정에서 충분히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다.

셋째, 개도국들과의 협력이다. 공적개발원조(ODA)와 국제기구 협력을 연계해 기후 위기 대응에 취약한 개도국들의 역량 강화를 돕고, 이를 통해 한국의 외교적 입지를 확대할 수 있다. 특히 한국에 본부를 둔 녹색기후기금(GCF) 등 국제 메커니즘과의 연계는 글로벌 파트너십 이미지를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기후 취약국 지원을 위해 곧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갈 ‘손실과 피해 기금’을 활용해 선진 기후 동맹국들과 함께 새로운 개도국 기후협력의 장을 열 수 있다.

기후문제는 이제 선택이 아닌 생존 전략이다. 트럼프 2기 정부의 기후 정책 후퇴는 국제사회에 충격을 줬지만, 동시에 누군가가 빈자리를 메워야 한다는 요청이기도 했다. 미국의 리더십 공백, 유럽의 재정 압박, 중국의 전략 확장 사이에서 한국은 새로운 기후 리더십을 구축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기후는 더 이상 선택적 의제가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결정 짓는 전략적 영역이다. 트럼프 정부가 비워둔 기후 리더십의 곳간을 이제 한국이 앞장서 채워야 한다. 이는 국제사회에 대한 책임이자 산업 경쟁력 확보와 미래세대를 위한 전략적 투자다. 이 기회를 살리지 못한다면 미래 성장 동력은 타국 손으로 넘어갈 수 있다. 지금이 행동에 나설 때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서용 서울국제법연구원 원장·고려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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