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3일(현지시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이라고 불렸던 우루과이의 호세 무히카 전 대통령이 89세로 서거했다는 뉴스가 떴다. 재산이라고는 낡은 폭스바겐 하나밖에 없었고 대통령 재임 기간(2010~2015)에 자신의 월급 1만2500달러의 90%를 비정부조직과 빈민 사업을 위해 희사했다. 상원의원과 부통령을 역임했던 그의 부인 루시아 토폴란스키도 마찬가지였다. 1960년대와 1970년대 우루과이의 도시게릴라 조직이었던 ‘민족해방운동-투파마로스’의 성원으로서 후에 부부가 된 그들은 1973년 군부 쿠데타 전후로 체포돼 각각 14년과 13년 동안의 감옥 생활 끝에 1985년 석방됐다.
그의 삶에 관한 많은 기록 영상물 가운데 2년 전 제작된 <삶의 철학>은 깊은 감명을 주었다. 그의 인간, 사회와 자연에 대한 생각을 집중 조명한 다큐멘터리다. 자신의 오랜 감옥 생활이 자신의 사고와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 큰 힘이 됐다고 술회하는 그는 소유가 결코 존재를 대신할 수 없다고 확신한다. 자신을 가난한 대통령이라고 부르지만 자신은 절대 가난하지 않다고 부언하면서, 경제 성장이 안 되면 비극이라고 모두 떠들면서도 정작 부의 공정한 분배에는 관심을 돌리지 않는 현실 정치를 강하게 비판한다. 우루과이 수도 몬테비데오의 교외에 있는 허름한 농가에서 살면서 트랙터를 손수 몰고 농사짓는 그의 모습과 은퇴 후 자택 구매나 신축 문제로 종종 문제를 일으키는 한국 전직 대통령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특히 2013년 9월23일 유엔총회에서 행한 그의 연설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연설에서 그는 자원을 낭비하는 소비사회와 빈부 격차의 심각성을 지적하면서 지속 가능한 삶의 방식을 강조했다. 정치는 시장에게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인간에게 봉사하여야 하고 연대, 검소, 인간성이 핵심을 이루는 지구적 윤리를 확립하는 것이 절박하다는 점을 힘주어 말했다.
이제 대선의 날이 2주 뒤로 다가왔다. 주요 후보자들이 내놓은 공약이 무엇인지, 서로 간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해서 몇몇 자료를 들추어 보았다. 역시나 어려운 경제 사정 때문인지 각각 발표한 ‘10대 공약’의 첫머리에 더불어민주당은 미래의 먹거리라는 인공지능에 대한 집중투자와 육성, 국민의힘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 개혁신당은 작은 정부를 내세웠다.
‘관습’으로 본 대선 후보 면면
지난해 12월3일 윤석열의 불법계엄으로 말미암아 발생한 내란 사태를 종국적으로 극복하는 정치적 과제 해결은 오히려 뒷순위로 밀리는 것 같다. 경제 문제가 해결되면 정치나 사회적 갈등도 저절로 해결된다고 보는 것인지, 아니면 ‘적폐 청산’이라는 구호를 내세웠으나 어이없이 윤석열에게 정권을 넘겨준 문재인 정부가 남긴 교훈 때문에 더 신중해졌는지 분명치 않다.
현재 한국의 인구 대비 정당 가입 비율이 약 2%로, 지속적이고 조직적인 정치 참여도의 낮은 수준도 문제지만, 강한 지역주의나 연고주의가 정당 민주주의의 발목을 잡고 있어 정강이나 정책보다는 후보자의 인물론이 선거를 좌우하는 정치문화는 쉽게 바뀌지 않고 있다.
일반적인 인물론이나 인물평에 근거한 투표 행태의 참혹한 결과를 지난 대선에서 모두 보지 않았는가. “나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 한마디로 불의와 타협할 줄 모르는 강직함의 화신처럼 등장했던 전직 검찰총장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뽑았다. 이런 인물평 속에는 사주팔자나 관상풀이, 주술적인 확신도 들어 있었다.
여기서 나는 정치인을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이론 틀로서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1930~2002)가 주장한 정치인의 ‘아비투스’(Habitus)를 생각하게 된다. 이는 사람들의 일상적 경험 안에 축적돼 있으나 자각하지 못한,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 지각과 사고와 행위를 의미한다. 한국과 일본에서는 그냥 아비투스로 쓰는 반면 중국에서는 ‘관습(慣習)’이라고 번역하는데, 비교적 본래의 뜻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정치인이라는 말을 들으면 으레 그들의 교육과 성장 배경이나 직업과 관련된 특유한 수사력과 언어 행위, 몸짓과 행동 양식을 연상하게 된다. 그들만이 움직이는, 닫힌, 어떤 정치적인 장(場)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 가운데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그들이 몸담은 사회의 전통적인 정치문화를 벗어나는 사례도 있는데 위에서 언급한 무히카 대통령이 그러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부르디외는 단순한 경제적인 의미의 자본 외에도 사회적인 불평등과 권력 관계를 재생산하는 문화적, 사회적, 상징적인 자본을 추가했다. 교육은 문화적 자본의 핵심적인 내용이고, 인맥은 사회적 자본의 대표적인 예다. 상징적 자본은 명예나 사회적인 인정처럼 정당성을 부여받는 특징을 지녔다. 또 이들 네 가지 자본은 서로 연동돼 작용한다고 보았다. 정치인이 그의 문화적 자본인 좋은 언변 능력을 살리고, 동창회나 정당의 인맥을 통해 사회적 자본을 확충하고, 자타가 공인하는 상징적 자본을 취득해 이를 바탕으로 고소득을 보장받는 이른바 ‘낙하산 인사’ 혜택을 받는 것을 우리 주위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이런 문제와 관련, 이번에 등장한 유력한 대선 후보의 면면을 간단히 훑어보면서 몇가지 생각을 떠올리게 된다. 현재 당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이재명은 그의 성장 배경이 보여주듯이 그가 가진 문화적 자본과 사회적 자본은 별로 없었지만, 각고의 노력으로 사법시험 통과가 주는 ‘제도화된’ 문화적 자본을 축적할 수 있었다. 또 지방자치단체의 장으로 쌓은 정치적 경험을 바탕으로 중앙 정치무대 진입에도 성공했다. 중앙 정치무대에 진출하기 전에 먼저 지방자치단체에서 얻은 경험이 아주 중요한 유럽과 달리 중앙정치를 주름잡는 계파의 수장들에 의해 직접 발탁되는 충원 방식이 흔한 한국 정치문화에서는 상당히 예외적이다.
대선, 비정상의 정상화 기폭제
내가 김문수에 관한 이야기를 처음 들은 때는 1980년대 중반이었다. 당시 ‘한국기독교협의회’의 간사로서 서독에 체류하면서 국제 아동지원단체인 ‘인간의 대지’를 통해 한국의 노동운동 지원 사업을 벌였던 최혁배를 통해서였다. 김문수와 고등학교와 대학 동기였던 그는 노동운동계에서 김문수의 위치와 역량에 대해 가끔 이야기했다. 그는 귀국 후 공안사건으로 엮으려는 안기부에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당하고 구속됐으나 집행유예로 풀려난 후 미국으로 건너가 변호사 생활을 했다. 하지만 고문 후유증으로 1990년대 말 귀국했고 2023년 초 불행하게도 코로나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가 살아 있다면 변신에 변신을 거듭해서 이른바 ‘아스팔트 우파’들의 지지까지도 받아 보수세력의 대통령 후보가 된 오늘의 김문수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하다. 정치에서 변절은 단순히 의견 변화에 지나지 않는다는 변명의 소리가 너무나 자주 들리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에 속하는 이준석은 낡은 보수와 낡은 진보의 대결을 넘어서는, 새로운 정치를 표방하면서 전통적인 인물 중심의 정치가 아니라 시스템 정치를 주장하고 있는 점에서 새롭다. 하지만 단순히 젊다거나 이공계와 하버드대학 출신이라는 문화적 자본이 시스템 정치의 성공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시스템 정치가 남녀나 세대를 갈라치는 방식의 정치공학이라면, 이는 젊음이 약속하는 미래 정치의 건강한 모습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5·18민주화운동 45주년을 맞는 날, 유력한 대선 후보자들의 첫 번째 토론회가 있었다. 비록 주제가 경제 문제에 제한돼 있었지만 진지한 정책 경쟁을 벌이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토론에 임하는 태도, 전문적인 지식체계의 정도, 이의 전달과 소통능력, 경험과 경륜은 이미 알려진 후보자들의 아비투스 차이를 재확인하게 해주었다.
토론을 지켜보면서 ‘권력은 사람을 바꾸지 못한다. 단지 정말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줄 뿐이다’라는 무히카가 남긴 말과 함께 ‘인사가 만사’라는 우리 속담이 생각났다. 이번 조기 대선이 비정상화의 정상화를 만드는 아주 중요한 계기이기 때문에 지난 대선에서 있었던 정말로 황당한 선택을 다시는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당부와 바람을 멀리서 보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