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연극’이라는 용어가 있다. ‘국민 가수’, ‘국민 배우’라는 말이 있으니 ‘국민 연극’도 국민이 사랑하는 대표 연극이라고 짐작할 것이다. 그러나 실은 일제 식민지 말기의 전시 체제에서 황국신민화에 봉사하도록 강요받았던 연극들을 지칭한다.
총독부 어용단체였던 조선연극문화협회가 1940년대에 주관했던 연극 경연대회 참가작들이 대표적이다. 부끄러운 시대의 산물이라 대부분 출판하지 않았고, 몇 편을 제외하곤 어두운 베일 속에 숨어 있었다.
20여 년 전 나는 이 희곡들을 연구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했었다. 해방 이후 미군정에 의해 이 경연작 대본들이 하버드의 옌칭 도서관으로 넘겨진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국내의 몇 학자들이 미국을 드나들면서 원본을 복사했고, 그것을 책으로 엮고 연구하는 작업이었다.
한두 작가가 아니었다. 이후의 역사에서 남과 북의 예술계를 대표했던 유치진과 송영을 비롯하여 대중극 작가로 명성이 자자했던 임선규까지 포함되었으니, 진영을 막론하고 당대에 활동했던 대부분의 극작가가 이 경연대회에 참여했다. ‘아비는 종이었다’는 서정주의 ‘자화상’을 ‘아비는 변절자였다’라고, 우리들의 자화상으로 고쳐 표현해도 무방할 정도다.
그럼에도 개별 텍스트를 읽어나가면 마음의 진폭이 달라진다. 누군가는 노골적인 선전관 역할을 하고 있어 헛웃음이 나오고, 또 누군가는 체제 선전을 하는 표면 아래 뜨거운 민족혼이 넘실거려 목에 칼이 들어온 시대를 살았을 선배들의 고단한 생이 떠올라 마음이 무지근해진다.
해방 80주년이다. 갈등에 여념 없는 정치판을 보자니 ‘해방은 도둑처럼 찾아왔다’는 함석헌 선생의 회고가 떠오른다. 우리가 좀 더 의젓하게 주인 노릇을 하고 진짜 ‘국민’의 역할을 했더라면, 지금의 이런 파국은 오지 않았을까.
김명화 극작가·연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