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회까지는 0-0이었다. 양팀 모두 공격에서 실마리를 풀지 못했지만 이를테면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경기가 진행됐다. 주고받는 공방전이 없어 보는 재미가 덜 할 수 있었지만, 야구의 깊은 맛을 느끼는 팬들이라면 시선을 떼지 못할 만한 이른바 ‘고급 야구’였다.
지난 25일 잠실 한화-LG전, 한화 선발 류현진이 불펜의 박상원에게 바통을 넘긴 7회말이었다. 박상원은 이닝의 첫 타자 오스틴을 만나 스트라이크를 먼저 가져간 뒤 볼 4개를 연달아 던졌다. 문보경에게도 볼 3개를 연이어 던진 끝에 풀카운트까지 이르렀지만 또 볼넷을 허용해 타자주자를 편하게 보냈다.
속도감 있게 전개되던 경기 리듬이 바뀌었다. 박상원은 오지환의 희생번트로 만들어진 1사 2·3루에서 내야땅볼로 경기 첫 점수를 내줬다. 이어 김현수를 몸에 맞는 볼로 내보낸 뒤 투수교체를 고민하는 모습을 보인 벤치의 강행 끝에 박해민을 삼진으로 잡으며 가까스로 추가 실점을 억제했다.
한화는 이날 LG전에서 경기 후반 무너지며 0-5로 졌다. 0-1이던 8회에도 3번째 투수 정우주가 선두타자 구본혁을 볼넷으로 내보낸 것을 시작으로 타자마다 승부가 길어지더니 4점을 내줬다. 한화는 7회 이후로 수비 시간이 길어졌다. 야수 집중력에 영향을 줬을 여지가 생긴 가운데 실점으로 연결되는 내야수의 뜬공 포구 실책까지 나왔다.


한화는 6안타만 허용하고도 5점이나 내줬다. 경기 후반 집중적으로 나온 4사구 5개가 아팠다.
한화 야구의 오랜 숙제는 ‘디테일’이다. 그중에서도 수비가 매번 부각되는데 수비력의 근간이 야수 개개인 기량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야수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투수가 공 하나하나를 던질 때마다 나름의 리듬을 갖고 타구를 받아낼 준비를 한다. 언제 어떤 궤적의 타구 본인 영역으로 날아올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비 시간이 길어지면 집중력 온전히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최상의 리듬을 갖고 가는 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실책 유발 가능성은 올라간다.
한화는 지난 22일 수원에서 KT를 만나 멋있는 개막전을 치렀다. 4-3으로 역전승을 한 결과 이상으로 내용이 좋았다. 한화는 선발 코디 폰세를 시작으로 투수 5명을 마운드에 올리면서도 9이닝 동안 볼넷을 2개만 내줬다. 실책도 없었다.
6안타(1홈런)로 4득점을 했다. 반대로 12안타(1홈런)를 허용하고도 3점만을 내줬다. 그저 ‘운 좋은 경기’가 아니었다. 경제적인, 효율적인 야구를 할 가능성 굉장히 높은 배경을 스스로 만든 것이었다.
한화에게는 22일 KT전과 25일 LG전을 상반된 자리에 놓고 교본으로 삼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한화 주력 불펜투수 대부분은 구위를 앞세운 정통파 유형이다. 투수 본인의 리듬을 위해서라도 볼넷을 연발하기보다는 차라리 안타를 맞는 게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