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마음들

2025-04-23

KBS가 지난 2월부터 ‘그날 그곳에 있었습니다’라는 영상물을 공개하고 있다. 비상계엄이 내려진 지난해 12월3일 국회로 달려간 시민들의 증언을 담은 영상물로, 그날의 마음들이 드러난다. 이재승 건국대 로스쿨 교수는 국회 출입구에 잠시 틈이 열려 현장에 함께 있던 낯모르는 7~8명과 국회 안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국회 본청까지 걸어가는 도중에 인생 전체가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딸들에게 잘못한 일도 떠오르고, 대학 다닐 때 비겁했던 일도 떠올랐다고 한다. ‘주마등’은 주로 죽음의 위기를 자각한 뇌의 작용에 의해 과거의 일들이 순식간에 재생되는 현상을 형용할 때 쓰인다. 그 심야에 군인들과의 충돌이 뻔히 예상되던 국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죽음을 각오한 행위였다.

블록체인 전문가 오현옥 한양대 교수는 함께 가자는 배우자를 만류하고 혼자 지하철을 타고 국회로 향했다. 영화 <서울의 봄>을 보면서 ‘12·12쿠데타 당일 시민들이 달려나와 막았더라면…’ 하고 느꼈던 안타까움이 행동을 재촉했다. 1991년 구소련 군부의 실패한 쿠데타처럼 ‘소수의 희생자만 낸 채 시민들이 쿠데타를 좌절시키는 시나리오’가 최선이고, “누구든 희생해야 한다면 나라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 교수여서 사회적으로 주목받을 수 있는 자신이 희생되는 편이 “사회로부터 받은 혜택에 대한 보답”이라고 여겼다.

정구승 변호사는 광주항쟁 희생자의 유해를 찾지 못한 유족들이 떠올라 ‘내가 나쁜 일을 당하면 (마지막 장소가) 국회 본관 앞이었다고 알고 있으라’고 배우자에게 일러뒀다. 방송·공연 연출자 오일남씨는 “기록도 없이 떠나게 될지 몰라” 국회로 출발하기 전 찍은 셀카 동영상을 SNS에 남겼다. 군 장갑차를 몸으로 막았던 민달팽이유니온 활동가 김동현씨는 집을 나서면서 1주일치 고양이 밥을 준 뒤 친구들에게 집 주소와 비밀번호를 보냈다. 최화식 육군 예비역 준장은 3~4일치 행장을 꾸렸다. 군인들이 국회 본청을 장악하더라도 시민들이 국회 울타리를 둘러싸고, 그 시민들을 다시 군경이 에워싸는 동심원 구조의 대치가 며칠 지속될 가능성에 대비했다. 윤석열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계몽령’, 홍준표는 ‘2시간의 해프닝’이라고 하지만 그날 사람들은 ‘최후’를 염두에 뒀다. 대학생 송영경씨는 “신나는 노래를 불렀지만 밝아지지도, 신나지도 않았다”고 했다.

그렇게 모인 이들은 서로에 감동하며 용기를 나눠 가졌다. 음식점주 오종길씨는 용감하게 기동대와 대치하던 어떤 이 때문에 힘을 낼 수 있었다며 “따뜻한 한끼를 대접하고 싶다”고 했다. 회사원 최진영씨는 남편, 시어머니와 함께 새벽까지 국회를 지킨 임신부, 국회 담벼락과 문마다 앉아 밤을 새운 20대 여성들을 비롯해 “아름다운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대학생 박선우씨는 누군가가 들고나온 대형 태극기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시민들은 군·경찰이 선을 넘지 않도록 했고, 그들 내면에 있던 ‘시민 됨’을 불러냈다. 국회의원 과반이 봉쇄를 뚫고 국회 본청에 모일 수 있었던 것도 그들의 힘이다. 대학원생 이재정씨는 시민들이 만들어낸 그 공간의 열기와 에너지가 “의원들이 담을 넘는 용기를 내게 했을 것”이라고 했다. 헌법재판소는 윤석열 파면 결정문에서 ‘시민들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인 임무수행’ 덕에 국회가 신속하게 비상계엄 해제 요구를 결의할 수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군의 ‘소극적 임무수행’도 시민 저항이 바탕이 되지 않았다면 만사휴의(萬事休矣)였을 것이다. 5·18의 광주가 그랬듯, 그날 밤 민주주의는 몸을 필요로 했다. 김동현씨는 “상식과 민주주의가 있다는 걸 보여줄 몸들이 없다면 누구도 알아서 대신 민주주의를 지켜주지 않는다”고 했다.

작가 한강이 <소년이 온다>를 쓰기 위해 읽은 <광주오월민중항쟁사료전집>엔 5·18에 참가한 광주시민 500명의 체험담과 목격담이 채록돼 있다. 한강은 그 행간에서 읽어낸 사람들의 마음에 자기 마음을 보태 작품을 완성했다. 44년 전의 마음이 2024년 12월3일로 연결돼 사람들을 국회로 달음질하게 했다. 그날의 마음들이 널리 기록되고 공유되면 한국의 민주주의가 더 튼튼해질 것이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내란의 잔불이 완전히 꺼지진 않았지만, 이제 우리는 한강이 던진 질문에 답할 수 있게 됐다. 과거가 현재를 돕고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해 계엄에 굴하지 않을 수 있었다고. 시민에 총부리를 겨눈 권력자를 응징함으로써 44년 전 못다 한 애도를 완성할 수 있게 됐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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