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백지신탁하라니 사퇴한 구로구청장의 후안무치

2024-10-16

문헌일 서울 구로구청장이 보유 주식을 백지신탁하라는 인사혁신처와 법원의 결정을 거부하고 지난 15일 사퇴했다. 2022년 지방선거에서 당선돼 취임한 지 2년3개월 만이다. 재산을 지키는 일이 공직보다 중요했다면 애초에 공직에 왜 나섰는지 묻게 된다.

문 전 구청장은 1990년 자신이 설립한 엔지니어링 업체 주식 4만8000주(평가액 170억원)를 갖고 있다. 인사혁신처 주식백지신탁심사위원회는 지난해 3월 이 주식이 구청장 직무와 관련성이 있다며 매각하거나 백지신탁하라고 요구했다. 문 전 구청장은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13일 2심에서도 패소했다. 문 전 구청장은 “회사가 관내 사업자가 발주하는 사업 수주를 금지토록 정관을 변경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직무 관련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국민 눈높이에 부합하는 상식적인 판결이다. 그 후 문 전 구청장이 주식 매각이나 백지신탁이 아니라 구청장직을 그만둔 것이다.

공직자윤리법상 주식 백지신탁 제도는 공직자와 그 직계 존비속의 3000만원 초과 보유 주식을 임명일로부터 2개월 안에 팔거나 금융기관에 백지신탁해 처분토록 하고 있다. 공적 직무와 사적 이익의 충돌을 방지하려는 취지로, 2005년 도입됐다. 문 전 구청장은 주식을 포기할 수 없으면 공직을 맡아선 안 됐다. 새 구청장을 뽑는 보궐선거에 수십억원이 든다. 자기 돈은 중요하고 혈세는 마구 써도 된다는 건가. 이런 후안무치가 없다. 문 전 구청장을 공천한 국민의힘도 구로구민과 국민들에게 사과해야 한다.

주식 백지신탁 제도도 더 손봐야 한다. 2022년 6월 임명된 박성근 전 국무총리 비서실장은 배우자 소유 주식을 백지신탁하라는 백지신탁심사위·중앙행정심판위 결정에 불복해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냈지만, 법원 판단이 나오기 전인 지난해 12월 총선 출마를 위해 사퇴했다. 행정심판·행정소송을 백지신탁 의무 회피 수단으로 악용한 것이다. 행정심판·소송 기간 해당 공직자가 이해충돌 가능성이 있는 직무에서 배제하도록 명문화할 필요도 있다. 지난해 김행 전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공직을 맡은 뒤 시누이에게 주식을 임시로 맡겼다가 되샀던 것처럼, 매매를 가장해 백지신탁 의무를 무력화하는 것도 못하도록 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백지신탁 제도가 인재의 공직 진입을 막고 재산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하지만 공직자의 청렴과 이해충돌 방지보다 중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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