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 개념을 원용한 깊이 있는 논의 주목 끌어
푼크툼으로서의 시는 세상에 Puncture를 내는 시
[대구=뉴스핌] 김용락 기자=현직 의사로 시와 비평활동을 왕성히 하고있는 노태맹 시인(성주 효원장)이 문학평론집 '푼크툼PUNCTUM의 순간들'(시와반시)을 펴냈다. 부제로 '보여지는, 그러나 보이지 않는 것에 관한 시론(詩論)'이라는 긴 제목을 달고 있는 것에서 보듯 이번 평론집에는 시적 대상으로서 존재와 무, 시 쓰기 행위의 본질적 의미 등을 탐색하려는 듯보이는 낯선 철학적 개념이 많이 동원됐다.
저자가 의과대학 재학 중 학생운동으로 제적됐다가 이후 복학하였고, 대학 제적 기간 중 타대학 철학과의 학부, 석·박사과정 마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 답게 이번 평론집에는 철학적 개념을 원용한 깊이 있는 논의가 독자들의 주목을 끈다.
우선 책 제목에서 쓰인 '푼크툼'이라는 용어는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라틴어로 "사전적 의미상 뾰족한 끝이고, 그 뾰족한 끝이 무언가를 찌르고, 그리하여 그로 인해 생겨난 작은 구멍이다"는 것인데 이 용어가 이번 평론집의 핵심 키워드인 것 처럼 보인다.
저자에 의하면 "푼크툼이 없는 시는 내 마음에 들거나 들지 않지만 나를 찌르지는 못한다"면서 그런 시는 우리 일상에 도움을 줄 수는 있는 정도에만 그친다는 것이다. 푼크툼의 대타 개념으로 스투디움(studium)이라는 개념이 등장하는 데 훌륭한 시는 스투디움이 아니라 푼크툼이고, 푼크툼으로서의 시는 세상에 빵꾸(Puncture)를 내는 시이다.

'세상에 빵꾸'를 내는 시라는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롤랑 바르트, 알랭 바디우, 불교 '조론(肇論)' 퀑탱 메이야수, 쥘 들뢰즈, 미셀 세르 같은 철학자를 동원하고 뒤이어 하이데거, 아리스토텔레스, 피에르 마슈레, 스티븐 샤비로, 메를로 퐁티, 발터 벤야민, 한나 아렌트, 비트겐슈타인 등의 서구의 현대 지성과 이념을 등장 시킨다.
자칫 난해하고 난삽할 것 같지만 논의를 꼼꼼히 읽어보면 문학하는 행위나 본질, 언어, 역사적 의미에 대해 깊이 있는 논의를 펼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변형 국판 형태에 총 199쪽에 불과한 부피는 가벼운 책이지만 단단하고 지성적인 저자의 문학적, 철학적 사유를 접할 수 있다.
전체 2부로 구성돼 있는데 제1부에는 '푼크툼 혹은 움푹 파인 것으로서의 시' ''김남주'라는 아포리아aporia-위반과 죽음으로서의 시, '하이데거라는 사다리 걷어차기' 등과 제2부 '시의 존재양식-김동원 시인의 시론에 대한 생각', '주체 없는, 생성으로서의 시학-정화진의 시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문인수, 詩 아니고는 아무 것도 아닌' 등 모두 17편의 평론과 저자의 머리말이 실려 있다.

노태맹 시인은 "이것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작은 흔적일 뿐이지만 이(그) 흔적이 언젠가 우연히 지나가는 누군가의 사유나 사건에 (의미나 영향은 아니겠지만) '효과' 정도는낼 수 있지 않을까?"생각하면서 "여러 모순과 혼란이 착종된 글들이지만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출간했다"고 밝혔다.
한편 저자 노태맹 시인은 1962년 경남 창녕에서 출생하여 영남대 의대, 계명대 철학과 및 경북대 철학과 석·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90년 '문예중앙'으로 등단해 시집 '유리에 가서 불탄다' 벽암록을 불태우다' 등과 산문집 '굿바이 마치 오늘이 마지막인 것 처럼' 등 여러 권이 있다. 대구시인협회상, 사이펀문학상을 수상했다.
yrk525@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