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한 잔] Evolution

2025-10-10

마치 X-레이 필름을 들여다보는 듯하다. 빛에 드러난 말의 골격이 어둠을 가르며 질주하고, 그 위에 올라탄 인간의 골격이 같은 리듬으로 몸을 낮춘다. 정지된 이미지지만 그 속에는 속도와 생명, 그리고 에너지가 흐른다. 검은 배경 앞에서 말과 사람의 뼈대를 조각처럼 신비롭게 드러낸 이는 벨기에 출신의 사진가 패트릭 그리에스다. 그의 사진집 ‘Evolution’에는 수십억 년의 진화를 품은 척추동물의 골격 250여 점이 담겨 있다. 책에 담긴 그의 예술적 오브제들은 예술과 과학의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든다.

이 프로젝트는 우연한 만남에서 시작됐다. 2000년대 중반, 대규모 사진 프로젝트를 마친 직후 새로운 주제를 찾고 있던 그리에스에게 흥미로운 제안이 들어왔다. ‘박물관의 골격을 촬영해 진화를 시각화하자’. 그리에스는 “박물관에 가면 수천 개의 골격을 볼 수 있는데, 내 임무는 한 개체를 고립시켜 조형물처럼 조명하고 찍는 일이었다”고 회상한다. 예술과 과학의 경계가 만나는 지점에 관심이 있었던 그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두 영역을 동시에 탐구하길 원했다. 그는 파리 자연사박물관을 비롯한 프랑스 전역의 박물관을 돌며 6개월간 하루도 쉬지 않고 250여 점의 골격을 촬영했고, 2년의 시간 끝에 사진집이 탄생했다.

과학적 존재를 예술적 시선으로 포착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19세기 건축양식을 그대로 간직한 박물관은 자연 채광을 막을 수 없었고, 쏟아지는 자연광은 조명 연출을 방해했다. 게다가 대부분의 골격은 철사와 못으로 단단히 고정돼 있어 자세를 바꾸거나 움직임을 주는 일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그는 기술과 상상력으로 그 한계를 돌파했다. 조명으로 형태를 새롭게 조각하고, 못과 지지대는 디지털로 지우는 지난한 과정을 감내했다. 그렇게 그의 렌즈는 단순히 골격을 촬영하는 것을 넘어 생명과 시간의 구조를 다시 정의했다. 인류가 어떻게 지금의 존재가 되었는지를 깊이 있게 보여주는 강렬한 시각적 기록으로 말이다.

석재현 사진기획자·아트스페이스 루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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