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IP 격노설’이라는 표현을 처음 봤을 때 좀 놀랐다. 누군가 화를 냈는지 여부가 뉴스가 된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했다. 나는 거의 매일 격노하지만 아무도 내게 신경 쓰지 않는다.
한 사람의 격노 여부가 이슈가 되는 이유는 그 격노의 영향력 때문일 것이다. VIP 격노설도 그렇다. 윤 전 대통령은 2023년 7월 31일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크게 화를 냈다고 의심받는다. 이날은 해병대 수사단이 경북 예천 폭우 사태 때 실종자를 수색하다 채수근 일병(이후 상병으로 추서)이 숨진 사건과 관련해 초동조사 결과를 보고한 날이다. 수사단은 고 채 상병의 부대장이었던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등에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했는데, 윤 전 대통령의 격노 후 혐의를 받던 몇몇 사람이 수사에서 제외됐다는 의혹이 있다.
이 의혹을 두고 수많은 질문이 떠오르는데, 지금까지 내게 유효한 질문은 무엇보다 윤 전 대통령은 왜 화를 냈을까, 하는 것이다. 이유가 아니라 그럴 수 있는 배경과 사고회로가 궁금하다. 대통령실은 그의 직장인데, 어떻게 직장 사람들 앞에서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격하게 화를 낼 수가 있을까? 단순히 기분이 상했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화를 내는 건 몰상식한 행동 아닌가.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니 격노란 ‘몹시 분하고 노여운 감정이 북받쳐 오름’이라는 뜻이다.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 실린 이 단어의 예문은 이렇다. “아버지는 격노와 울분을 참으며 말없이 돌아서셨다.” 격노든 울분이든, 다른 이들 앞에서는 참을 수 있다는 맥락이 담긴 문장이다. 그런데 누군가는 그걸 표현한다. 참지 못하는 게 아니라 참지 않는다. 왜 그러는가. 십중팔구 그래도 되기 때문이다. 왜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는가. 위계가 그것을 가능하게, 자연스럽게 만들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만난 이들에게 격노를 표현하는 이의 의사소통 능력에 관해 대체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가 격노하지 않아도 이미 주변 사람들은 그의 ‘심기’를 살피고 있기 때문이다. 기분 나쁜 티만 나도 많은 사람이 움츠러들고 ‘결재는 내일 받아야겠다’고 생각한다. 그 와중에 화를 내기를 택하는 사람은 대체로 무감각하고 배려가 없는 사람인 경우가 많았다. 많은 사람이 ‘사회생활’을 하면 ‘배려’가 생기는 것처럼 말하는데, 이 영역은 이상하게 사회생활을 오래 한 사람일수록 부족하기 쉬운 것 같다.
얼마 전 한 공무원이 내게 밤늦게 전화를 해 소리를 질렀다. 용건은 없었고 단순히 내가 그날 쓴 기사에 대해 화를 내기 위한 전화였다(고 자기 입으로 말했다). 팩트체크는 하고 쓴 거냐, 기사가 객관적이라고 생각하냐, 기자가 그러면 되냐는 말을 들으면서 나는 물음에 대한 답을 떠올리기보다 모멸감을 느꼈다. 내가 그에게 ‘이렇게 화를 내도 되는 대상’으로 보였다는 사실이 황당했다. 그는 오랫동안 공무원 사회에서 위계와 서열을 경험했을 거라 추측됐다. 그런 사람에게 내가 ‘첫 통화에 윽박질러도 되는 사람’으로 여겨졌다는 게 여러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내가 ‘어린 여자’라서 그런가? 너무 작게 말했나?
나 또한 그에게 격노했지만, 격노를 표현하지는 않았다. 다만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회사 선배들, 동기들, 후배들에게 다 일렀다. 집에 와서 빨간펜으로 이름도 썼고, 챗GPT에 통화 요지를 설명하며 누가 말싸움에서 이긴 것 같냐고 물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에 대해 글도 쓴다. 품격을 지키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쿨하지 않은 건 안다. 어쨌든 화가 난다고 다른 사람에게 다짜고짜 윽박지르거나 화를 내는 사람들보다는 내가 성숙하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