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안양체육관에서 만난 문정현(24·수원 KT)과 문유현(21·안양 정관장) 형제는 “가문의 영광”이라는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동생 문유현은 지난 14일 프로농구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정관장 유니폼을 입었다. 2023년 1순위로 KT에 지명된 형 문정현에 이어 사상 최초의 ‘신인 1순위 형제’다.
문유현은 “2년 전 신인 1순위로 프로 무대에 진출하는 형을 보며 ‘부끄럽지 않은 동생이 되겠다’고 다짐했는데, 꿈이 현실이 됐다”면서 “(1순위로 발탁한 정관장이) 후회 없는 선택을 했다는 걸 결과로 증명하겠다”고 다짐했다. 문정현은 “난 신인 때 지나치게 긴장했다. 동생은 관심을 마음껏 즐겼으면 한다”고 했다.
최근 고려대의 U-리그 2연패와 함께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된 문유현은 성인 농구대표팀에도 두 차례 뽑혔다. 문정현도 고려대 시절이던 2022년 U-리그 MVP를 받았고 현재 대표팀 일원이다.

도드라진 콧대 등 꼭 닮은 외모는 누가 봐도 붕어빵 형제지만, 문정현(1m94㎝)과 문유현(1m80㎝)의 키는 14㎝나 차이가 난다. 문유현은 “어릴적 형이 고기를 씹지도 않고 삼켜서 난 몇 점 못 먹었다. 난 밥 밑에 고기를 숨겼고, 키 크는 영양제도 먹었다”면서 “가끔씩 딱 5㎝만 더 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털어놓았다. 문정현은 “키가 덜 큰 대신 가드로 대성했으니 내 덕분이라 생각하라”며 웃었다.
체격 만큼이나 플레이 스타일도 딴판이다. 고려대 스승 주희정 감독은 “정현이는 포워드 뿐만 아니라 모든 포지션에서 뛸 수 있다. 씨름선수 출신 아버지의 피를 물려 받아 힘도 좋다”면서 “유현이는 양동근(현대모비스 감독)처럼 파이터 기질이 다분한 포인트 가드다. 압박 수비도 수준급”이라고 했다. 이어 “둘 다 근성이 있다. 리바운드할 때 정현이는 점프력과 힘을 앞세우고 유현이는 지능적으로 낙하 지점을 포착한다”고 했다.

울산 송정초 3학년 때 문유현은 형을 따라다니며 공을 줍다가 농구선수가 됐다. 문정현이 침대에서 프로레슬링 WWE 기술 ‘RKO’를 걸었다가 문유현의 발가락이 부러진 적도 있다. 형제는 초·중·고는 물론 대학까지도 같은 학교에 진학했지만 3살 터울이라 함께 뛴 건 고려대 시절이던 2023년 한 해가 전부다.
문유현에겐 늘 ‘문정현 동생’이란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비교 대상 또한 언제나 형이다. 18세 이하 농구대표팀 시절 벤치 멤버로 밀린 뒤 “형은 잘 하는데 동생은 별로네”라는 소리를 듣고 독기를 품고 평가를 뒤집었다.
지난 19일 문유현은 소속팀 정관장과 형이 몸담은 KT의 맞대결을 벤치에서 지켜봤다. 신인 선수는 소속팀의 시즌 17번째 경기부터 출전 가능해 현재는 뛰고 싶어도 기회가 없다. 문정현은 “득점 후 유현이에게 윙크를 날렸다”면서 “형제 간 맞대결이 가능한 다음달 4일 경기에서 프로 무대가 총만 안든 전쟁터라는 걸 보여주겠다. 유현이의 슛을 블록한 뒤 넌 너무 작다는 의미의 ‘투 스몰 세리머니’를 선보이겠다”고 예고했다. 문유현은 “‘형은 배가 너무 나왔다’는 의미로 배를 만지겠다”고 받아쳤다. 문유현은 정관장의 쟁쟁한 선배 변준형, 박지훈과 투가드 내지 스리가드로 나설 수 있다.

형제가 함께 신인 드래프트 1순위로 선발된 건 나란히 프로농구 최고 스타로 자리매김한 부산 KCC의 허웅-허훈 형제도 이루지 못한 이색 기록이다. 문정현은 “(허)웅이 형이나 (허)훈이 형에 비해 외모와 실력 모두 부족하지만 노력 만큼은 더 하겠다”고 다짐했다. 문유현은 “2년 안에 올스타전에 나서는 걸 목표로 도전하겠다”고 다짐했다. 문씨 형제는 “신인 1순위 타이틀에 안주하지 않고, 끝까지 1순위로 살아남겠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인터뷰 내내 티격태격했지만 사진 촬영 때 형은 동생의 유니폼 상의를 바지를 넣는 게 낫다며 챙겼다. 인터뷰를 마친 직후 즉석에서 형제의 일대일 대결이 이뤄졌다. 문유현의 현란한 드리블에 잇달아 돌파를 허용한 문정현은 “못 막겠다. 신장은 작지만 심장이 크다”며 프로 데뷔를 앞둔 동생의 기를 살려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