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180일간의 수사를 마무리한 내란 특검팀(특별검사 조은석)이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을 추가로 기소하면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더해 12·3 비상계엄 관련 내란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된 국무위원은 총 4명이 됐다. 45년 전 전두환·노태우 신군부가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한, 이른바 ‘5·17 쿠데타’로 기소된 국무위원은 주영복 전 국방부 장관 한명이었던 것과 비교된다. 역사학계, 법조계에선 두 계엄에서 국무위원의 발언권, 관여 정도가 현저히 달라 처벌 범위도 차이를 보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1980년 국무회의장엔 탱크, 군인 도열

중앙일보는 최근 전남대 5·18 연구소를 통해 신군부 계엄 확대 당시 경제부총리였던 이한빈 경제기획원(현 기획재정부) 장관의 1995년 12월 23일 검찰 조서를 확보했다.
조서에 따르면 1980년 5월 17일 오전 이 부총리는 총무처로부터 “저녁에 국무회의가 있으니 참석하라”고 통보받았다. 이어 같은 날 자신의 소재를 파악하는 연락을 3~4회 받곤 “전에 없는 일이라 이상했다”고 진술했다.
저녁에 중앙청(구 조선총독부 청사)에 도착한 이 부총리는 평소와 같은 현관이 아닌 서편 측문으로 안내받았다. 이 부총리는 “전에 없던 탱크가 두 대 배치돼 있고, 병사들이 저를 보고는 현관으로 못 가게 하고 중앙청 서쪽 옆에 내리게 했다”며 “지하도를 통해 1층, 2층을 거쳐 3층 회의실로 갔다”고 회상했다. 회의실 향하는 경로에도 착검한 총을 든 군인들이 배치돼 있었다. 이 부총리는 “복도에 약 1m 간격으로, 계단엔 층계마다 군인들이 총에 착검하고 부동자세로 서 있었다”고 진술했다.

회의장에 도착한 이 부총리는 분위기가 “전례 없는 가시적인 위압을 당하고 왔기 때문에 그야말로 침통하게 서로 말도 없이 앉아 있었다”고 기억했다. 참석자들이 모이자 주영복 장관은 “학원 사태 등을 수습하려면 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는 게 불가피하다”며 “오늘 아침 전군주요지휘관회의가 열렸는데 거기에서 이미 결정된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국무위원 중 발언한 유일한 사람은 김옥길 문교부(현 교육부) 장관이었다고 한다. 김 장관이 “계엄을 확대한다는 게 무슨 뜻이냐”고 묻자 주 장관은 “제주도를 포함해 전국으로 계엄을 확대한다”고만 설명했다. 잠시 뒤 신현확 국무총리는 “다른 이의가 없으면 통과하겠습니다”라 한 뒤 안건을 통과시켰다. 회의엔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당시 중앙청에 근무하던 직원들은 강제로 퇴거했고, 국무회의장에 설치된 전화선은 끊겨 외부와 연락이 차단된 상태였다. 이 부총리는 조사 도중 검사가 “계엄 확대가 군의 정치 개입을 반대하던 신 총리를 정책결정 계통에서 제거하려는 목적이 아니었냐”고 질문하자 “신 총리 평소 인품을 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답했다. 이어 “회의장 주변엔 병사들이 배치돼 겁을 주고, 주 장관은 ‘이미 결의했으니 그대로 통과시켜라’ 는 취지로 말하는 등 안팎에서 겁을 주니 영문도 모르는 채 요식행위에 불과한 것을 알면서 통과시키고 만 것”이라고 회상했다.
12·3 계엄 후 “선택의 여지 없었다”…판사 “할 말인가”
전남대 5·18 연구소 김희송 교수는 “당시 상황과 비교하면 12·3 계엄 당시 국무위원들은 영혼 없는 기회주의 공무원들”이라고 평가했다. 윤 전 대통령을 더 적극적으로 말릴 여건이 허락됐다는 것이다. 앞서 한덕수 전 국무총리 등은 줄곧 “계엄에 반대했다”고 주장해왔으나 대통령실 폐쇄회로(CC)TV엔 한 전 총리가 계엄 선포를 위해 일어선 윤 전 대통령에게 고개를 끄덕여 동조하는 의사를 표시하거나 이상민 전 행안부 장관이 계엄 문건을 검토하는 장면이 찍혔다. 이 전 장관은 웃는 모습도 포착됐다.
박상우 전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달 6일 한 전 총리의 내란 우두머리 방조 사건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계엄을) 할까, 말까 하는 토론이나 저희들의 선택의 여지가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증언했다. 윤 전 대통령이 계엄 선포를 일방 통보한 뒤 회의장을 나갔다는 것이었다. 이에 재판장은 “법적 책임을 떠나 그렇게 말씀하시는 게 적절한가”라 따져 물었다.

주영복 전 국방부 장관은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 전국 확대를 주도하고 5월 18일 광주 파견 계엄군의 자위권 발동에 관여한 것 관련 내란 혐의로 1996년 서울고법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특검은 이 사례를 감안해 지난달 26일 한 전 총리에게 징역 15년형을 구형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