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스톡커] 트럼프 '불법 관세', 한국이 돈 안 퍼줘도 되나

2025-09-01

미국 법원이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국가별 상호관세에 대해 대통령 권한을 넘어선 불법이라는 판단을 내리자 무역전쟁으로 몸살을 앓는 전 세계가 술렁이고 있다. 특히 한국처럼 천문학적인 대미 투자를 약속한 국가는 앞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할 지 벌써부터 머리를 싸매는 분위기다. 금융투자 업계에서도 해당 소송 결과가 한미 무역 합의에 영향을 줘 이미 주가가 요동을 친 조선주 등 주식시장을 뒤흔들지 주시하고 있다. 월가와 주요 외신은 대법원으로 넘어간 상호관세 소송이 장기전이 될 수도 있다고 보면서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패소하더라도 품목 관세 등 다른 수단을 이용해 무역 압박을 멈추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워낙 외교적으로 파급력이 큰 사안인 만큼 상호관세 효과가 일단락되거나, 세계 무역 질서로 완전히 자리잡거나, 선거와 의회 활동 등으로 문제가 정치적으로 해소될 때까지 미국 대법원이 판결을 질질 끌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국을 비롯한 각국의 입장에서는 어떤 시나리오를 따르더라도 확정 판결 전까지 대미 투자를 서둘러 단행하기도 힘든, 무역 불확실성을 떠안게 될 수밖에 없게 된 셈이다.

미국 항소심 “상호관세는 대통령 권한 밖”…트럼프 “없으면 재앙”

미국 워싱턴 DC 연방순회항소법원은 지난달 29일(현지 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관세 부과 행정명령의 근거로 삼은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대해 “대통령에게 수입을 규제할 권한만 부여할 뿐 행정명령으로 관세를 부과할 권한까지 주지는 않는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IEEPA가 국가 비상사태에 대응해 여러 조치를 취할 중대한 권한을 대통령에게 부여하지만 이들 가운데 어떤 조치도 관세나 그와 유사한 것을 부과·과세할 권한을 명시하지는 않는다”며 “의회가 IEEPA를 제정하면서 대통령에게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무제한적 권한을 주려고 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또 “이 법은 관세를 언급하지 않았을 뿐더러 대통령의 권한에 명확한 한계를 담는 절차적 안전장치도 갖고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즉각 대법원에 상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같은 날 트루스소셜에 “정치 편향적”이라며 “모든 관세는 여전히 유효하고 이들이 사라지면 국가에 총체적 재앙이 될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미국은 더 이상 거대한 무역적자나 다른 나라들이 부과한 불공정한 관세, 비관세장벽을 감내하지 않을 것”이라며 “대법원의 도움 아래 우리는 관세가 미국에 이익이 되도록 사용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팸 본디 법무부 장관도 같은 날 X(옛 트위터)를 통해 항소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번 소송은 트럼프 대통령이 4월 2일 만성적인 대규모 무역적자가 국가 안보와 경제에 큰 위협이라며 IEEPA에 근거해 국가별 상호관세를 매기면서 시작됐다. 와인 수입업체 등 관세로 피해를 본 중소기업 5곳이 트럼프 행정부를 상대로 4월 14일 국제무역법원(USCIT)에 소송을 제기했고 같은 달 23일에는 오리건주를 비롯한 12개주까지 법적 분쟁에 가세했다. IEEPA는 1977년 제정된 후 주로 적성국에 대한 제재나 자산 동결에 이용됐다. IEEPA에 무역수지나 제조업 경쟁력, 마약 밀반입 등을 이유로 붙여 관세를 부과한 대통령은 트럼프가 처음이다. 국제무역법원은 이후 5월 28일 “관세를 부과할 배타적 권한은 의회에 있다”며 상호관세를 철회하라고 명령했고 트럼프 행정부는 이에 즉각 항소했다.

대법원은 6대3 보수 우위…최종 판결 전까지는 상호관세 유지 가능성

2심 재판부는 트럼프 행정부의 패소를 결정하면서도 항소 기회를 주기 위해 10월 14일까지 이번 판결의 효력을 유예하기로 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때까지 2심의 결정에 대한 집행정지 요청을 하고 대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면 상호관세를 확정판결 전까지 유지할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1심 패소 후 항소심에서도 같은 절차를 거쳤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법원에 상고하면서 2심 판결의 집행정지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란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대법원 역시 최종 판결 전 2심 결정을 그대로 적용할 경우 세계적인 혼란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상호관세를 일단은 유지할 수 있도록 행정부의 요청을 수용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현재 총 9명의 대법관으로 구성된 미국 연방대법원은 현재 6대3으로 보수 우위 구도로 평가받고고 있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을 비롯해 클래런스 토머스, 새뮤얼 얼리토, 닐 고서치, 브렛 캐버노,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 등 6명이 조지 HW 부시 전 행정부나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임명된 보수파로 분류된다. 민주당 정권에서 임명된 인사는 커탄지 브라운 잭슨, 엘리나 케이건,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 등 3명뿐이다. 다만 이미 1·2심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명확한 사유로 패소한 데다 애초부터 IEEPA에 근거한 상호관세 부과는 무리수라는 해석이 많았던 만큼 최종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는 전망도 만만찮게 나온다.

미국 대법원이 정치·외교적 부담이 큰 사안인 만큼 상호관세의 경제적 여파를 더 지켜보거나, 내년 11월 중간선거 결과를 고려하거나, 양당의 반응을 살피면서 판결을 미룰 가능성도 다분하다. 일반적으로 상호관세와 같이 큰 사건에 대해서는 미국 대법원의 최종 결정이 나오기까지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1년 이상 걸리는 편이다.

무역 불확실성 계속…정부 핵심인사들 “관세 압박 없이 협상 불가능”

외교가에서는 상호관세의 법적 실효성이 불투명해지자 불안정한 글로벌 무역 관계가 상당 기간 이어질 수 밖에 없게 됐다고 우려했다. 아직 무역 합의를 마무리하지 못한 나라들은 법원의 최종 판단이 나올 때까지 협상을 미룰 수 있고, 이미 관세율을 조정한 나라들은 투자 이행을 늦출 수 있어서다.

실제 트럼프 행정부 주요 인사들은 2심 패소에 앞서 한국 등이 약속한 대미 투자 합의를 지키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를 앞다퉈 드러냈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은 29일 워싱턴DC 연방순회항소법원에 제출한 진술서에서 “법원이 IEEPA에 근거한 관세를 중단하면 교역 상대국들의 보복과 무역 합의 철회가 이어질 것이고 진행 중인 주요 협상도 탈선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러트닉 장관은 “그런 판결은 미국의 광범위한 전략적 이해관계를 위협하고 현재와 미래의 외교 정책과 국가 안보에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USTR)도 같은 날 해당 법원에 진술서를 내고 “수입 규제, 관세 부과 없이는 다른 나라를 협상 테이블로 데려올 만한 어떤 합의도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며 “협상의 성공은 관세를 즉각 시행하겠다는 믿을 만한 위협에 의존한다”고 강조했다. 스콧 베선트 재무부 장관 역시 “관세 압박은 협상을 질질 끌거나 보복 관세 등으로 미국 수출업자들의 경쟁 여건을 왜곡해 자기들의 협상 입지를 바꾸고자 하는 나라들에 대응하는 데 대단히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마코 루비오 국무부 장관은 “IEEPA에 근거한 관세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한 행동과 관련한 국가 비상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대통령의 협상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 투자 서둘 필요 없어져…트럼프, 패소해도 다른 수단 휘두를 듯

외교가에서는 미국 사법부가 상호관세의 칼자루를 쥐게 되면서 한국의 무역 전략도 상당 부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됐다고 보고 있다. 무역 합의의 핵심 조건인 상호관세 자체가 무효가 될 가능성이 생겼기에 이를 전제로 한 대규모 투자를 서둘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앞서 한국은 7월 30일 3500억 달러의 대미 투자와 1500억 달러의 직접투자, 미국 에너지 제품 1000억 달러어치 구매 등을 조건으로 대미 수출품의 상호관세율을 기존 25%에서 15%로 내리기로 미국과 합의했다. 이 합의의 큰 틀은 이달 25일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간 한미정상회담에서 사실상 확정됐다. 이 대통령은 26일 필라델피아의 한화 필리조선소까지 찾아“‘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로 한국과 미국의 조선업이 더불어 도약하는 ‘윈윈’ 성과를 만들어낼 것”이라며 한미 경제 협력에 대한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상호관세와 관련해서는 일본과 유럽연합(EU)도 각각 5500억 달러(약 760조 원), 6000억 달러(약 831조 원)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한 뒤 한국과 비슷한 조건의 무역 합의를 맺었다.

미국 고위 관료들도 소송 과정에서 이 같은 상황에 대한 우려를 법원에 명확하게 전달했다. 그리어 대표는 진술서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유럽연합(EU),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 일본, 한국, 영국 등과 무역 합의를 발표했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미국과 이들 교역 상대국은 무역 합의를 법적 구속력이 있는 문서로 만들기 위해 신속하고 부지런히 작업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들 합의를 앞으로 수개월 동안 계속해서 마무리해 나갈 것”이라고 부연했다.

월가에서는 다만 미국 대법원이 IEEPA를 근거로 한 상호관세를 불법행위로 최종 판단하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확장법 301조와 122조, 관세법 338조 등 다른 수단을 사용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들 조항은 국가 안보 위협, 불공정무역 관행에 대한 보복 조치 등이 문제가 될 경우 대통령에게 독자적인 관세 부과 권한을 부여한다. 더욱이 자동차와 철강·반도체·의약품 등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부과한 품목별 관세는 이번 소송의 영향권 바깥에 있다. 철강 관세의 경우는 트럼프 1기 때 소송에 휘말렸다가 이미 행정부가 승소했던 전례도 있다.

※‘트럼프 스톡커(Stocker)’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대에 투자에 도움이 될 만한 미국의 증시·기업·경제·행정·외교·정치 관련 현장 이야기와 현안 분석을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구독하시면 유익한 미국 소식을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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