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가 촉촉이 내립니다. 무성하던 나뭇잎들이 고운 단풍으로 물들고, 농촌에는 가을걷이가 한창입니다.
윤대통령님! 취임식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임기 반환점을 도는 지점에 와 있습니다. 그동안 굵직한 일들을 많이 해오셨습니다. 특히 세일즈대통령을 자처하며 열심히 동분서주했습니다. 북한의 핵위협으로부터 국가를 보위하기 위해 한·미·일 안보동맹을 공고히 한 것은 큰 외교 성과였습니다. 경제분야의 업적도 컸습니다. 그 중에서 2조4천억 원의 체코 원전 수주는 국민들의 마음을 뜨겁게 했습니다. 전 정부가 망가뜨려 놓은 원전생태계 복원의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큽니다.
윤대통령님! 정치부문에서만큼은 평균점 이하라는 세평이 있습니다. 출발선에서부터 무거운 짐을 진 채 서야만 했던 사정을 어찌 모르겠습니까? 월드컵 경기를 보면 톱스타에게 예사로 발을 걸고 태클을 합니다. 넘어지지 않고 뛰어넘어 골인을 시킬 수 있어야 세계적인 선수로 각광을 받습니다. 국민의 요구도 같습니다. 물론 의회민주주의에서 심각한 여소야대(與小野大)형국은 거야에 발목이 잡혀 꼼짝달싹 못할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거대야당 이재명대표의 사법리스크가 불거진 상태여서 소위 ‘방탄국회’, ‘방탄정치’가 횡행하고 있는 것 역시 현실입니다. 오죽하면 더불어민주당의 입법독주는 가히 ‘의회독재’라는 탄성이 흘러나올 정도로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겠습니까? 정부정책은 입법이 뒷받침 되어야 하는데 무엇 하나 실행에 옮기기 어려운 실정에 놓여 있습니다. 처음부터 국정운영에 빨간 불이 켜진 채 2년 반을 달려 온 셈입니다.
그렇다고 소통을 외면하시면 안 됩니다. 야당 대표와도 문을 열고, 학계에는 대문을 활짝 열어야 합니다. 특히 중소기업이나 농민들에게는 옛날 어머니가 버선발로 사립짝문을 열고 뛰쳐나가 자식을 얼싸안듯 몸을 던져야 합니다. 그런데 이건 너무 심합니다. 집권여당의 한동훈대표조차 이 격식 저 격식 따지면서 소통을 하지 않을 정도라면 세간의 비난이 결코 과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한 나라의 대통령이 돌팔매를 왜 맞습니까? 박수를 받아야지요. 정치는 동화(同和)입니다. 국민이 ‘아니’라면 설득을 하든지 내가 따라가든지 선택해야 합니다. 잘못이 발견되면 과감히 고쳐야 합니다. 진정한 용기는 반성과 실천입니다. 차제에 대통령의 리더십은 배수진이 아니고, 벽을 넘는 용기와 통 큰 포용력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윤대통령님! 과가 있으면 실도 있는 법입니다. 그렇다고 여기서 멈칫하시겠습니까? 이제 반환점입니다. 앞으로 ‘2년 반’ 910일이 넘는 긴 시간이 있습니다. 육상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마라톤에서 반환점은 승리를 결정짓는 중요한 지점입니다. 전략적 승부수를 던져야 하는 터닝포인트이기도 하고, 쌓아온 저력이 분출되는 시작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반환점에서 방향을 잘못 잡거나 머뭇대면 목표 도달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제32회 베네치아마라톤대회에서 선두권 선수들이 반환점을 잘못 돌아 탈락했던 이변이 이를 반증합니다. 일이 복잡하게 얽혀 있을 때는 쾌도난마(快刀亂麻)가 답입니다. 연후에 민생카드를 내놓아야 합니다. 탄핵과 정쟁에 넌더리를 치는 국민에게 물가와 일자리에 내각이 뛰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제1전략입니다.
민주당의 이재명 대표도 어렵기는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선거법위반 1심 선고가 코앞에 다가왔고, 연달아 위증교사 선고가 있습니다. 속내는 3심전에 대통령선거를 치렀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같을지 모릅니다. 대선의 꿈이 좌절될까봐 모든 당력을 집중하는 모습이 역력합니다. 그래서 탄핵, 탄핵을 외쳐대고, 약한 고리로 드러난 영부인에 대한 공격이 사바나에서 벌어지는 약육강식을 방불케 합니다. 영부인의 ‘디올백’ 사건은 억울하다는 데 동감합니다. 계획적으로 함정을 파놓고 옭아매는 수법에 당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국민의힘 당대표 선출시 영부인의 휴대폰 문자공개, 김대남 전 행정관의 서울의 소리 기자와의 통화녹음, 명태균씨의 휴대폰 문자, 통화녹음 공개 등은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필자는 조그만 채전을 일구면서 자연의 소중한 교훈을 얻었습니다. 식물의 ‘사름’이 그렇습니다. 봄에 모내기를 하면 한동안 모가 누렇게 죽어가는 것 같아 걱정을 하곤 했는데 대엿새쯤이면 새파란 빛을 띠며 줄기가 꼿꼿해집니다. ‘사름’이 된 것입니다. 한 해는 들깨씨를 뿌려 놓고 그대로 키웠더니 얼마간 자라다가 성장이 멈추고 말았습니다. 다음해에 주위의 말씀을 듣고, 들깨모종을 옮겨 심었더니 처음에는 비실비실하다가 ‘사름’을 한 후 씩씩하게 자랐습니다. 이렇듯 한번쯤 죽을 고비를 넘기는 ‘사름’의 과정 없이 식물이 제대로 자라지 않는다는 자연의 섭리 앞에 새삼 옷깃을 여미곤 합니다.
윤대통령님! 필자는 반환점에서 정치적 ‘사름’을 기대합니다. 여기에는 과거의 잘못에 대한 과감한 반성과 이를 고쳐나가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합니다. 새로운 동력의 근원은 성찰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종교인들의 애절한 기도의 근저에도 언제나 자기반성이 깊이 깔려있습니다. 대통령이 되실 때 그 풋풋한 냄새가 다시 국민의 가슴에 느껴지기를 소망합니다. 내 가까운 것을 도려내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대통령실의 인적쇄신이 급선무입니다. 먼저 한동훈대표부터 끌어안고 국정을 숙의하십시오. 문을 열면 바람이 채워집니다.
우리가 뽑은 대통령, 윤석열정부의 성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