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마음
‘한국과로사·과로자살유가족모임’(이하 ‘과로사유가족모임’)이 직접 쓴 『그리고 우리가 남았다』(나름북스)에는 과로사 유가족의 여러 경험이 담겼습니다. 장시간 근로로 숨진 택시기사, 희망퇴직 압박과 직장 내 괴롭힘으로 자살한 대기업 연구원, 과로로 사망한 게임회사 팀장. 사연은 각기 달랐지만 모두 같은 후회를 했습니다. “그때 그만두라고 말했어야 했는데….”
과로사유가족모임의 운영자인 강민정(36)씨는 “다른 죽음에 비해 과로사 유가족들은 더 자책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합니다. 생계 때문에 가족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처럼 느끼기 때문이죠. 그래서 강씨는 모임에 나온 가족들에게 꼭 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 죽음은 당신의 탓이 아니에요.”

너무 많이 일하는 사회.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외치지만 여전히 곳곳에는 과로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떠난 자리엔 가족들이 남아 그 황망함을 견디고 있죠. 사랑하는 부모, 배우자, 자녀가 죽은 것도 억울한데 “얼마나 관심이 없으면 그것도 몰랐냐”며 사회로부터 손가락질을 받기도 합니다. 게다가 고인의 과로사를 입증하기 위해 직접 뛰어다니며 증거를 찾아야 하죠.
이런 유가족을 위해 강씨는 2017년 과로사유가족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슬픔과 울분을 나누고, 산업재해 신청이 서툰 분을 위해 함께 산업재해법을 공부하기도 합니다. 강씨는 “남겨진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싶다”고 하는데요. 과로사는 우리 사회에 어떤 아픔을 남길까요. 내 가족이 장시간 노동으로 죽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근본적으로 과로사를 막을 방법은 무엇일까요.과로사유가족모임의 강민정 운영자, 손승주(43) 전담 변호사, 이 모임의 첫 번째 회원인 배고은(38)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 형부가 과로로 죽던, 그날의 기억
‘과로사유가족모임’은 어떤 곳인가요?
강민정(운영자) : 과로사 혹은 과로 자살 유가족이 함께 교류하는 자조 모임이에요. 2017년 7월 처음 만들었는데, 지금은 멤버가 30여 명 정도 됩니다. 유가족들이 주기적으로 모여 산업재해법을 공부하고, 심리 치료도 받고 있어요. 산업재해 신청을 어려워하는 분을 돕기도 하고요.
배고은(유가족) : 저는 2017년 형부가 돌아가셨는데, 형부의 죽음이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다뤄졌거든요. 당시 전문가 인터뷰로 나온 사람이 강민정 운영자였어요. 그때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진 거죠.
손승주(변호사) : 전 그래서 강민정 운영자를 두목님이라고 불러요(웃음). 실행력이 엄청나거든요. 산업재해 신청을 받기 위해선 노무사도 필요하고, 변호사도 필요해요. 제가 노무사 출신 변호사라 저에게 연락을 주셨고, 참여하게 됐습니다.

형부가 돌아가셨다고 했는데, 과로사였던 건가요?
배고은 : 정확히는 과로로 인한 자살이에요. 저희 형부는 대기업 연구원으로 거제도에서 일했는데, 업무 스트레스로 매우 힘들어 했어요. 과도하게 업무를 지시하거나, 전혀 상관없는 부서로 발령내면서 희망퇴직 압박을 계속했거든요. 결국 아파트에서 투신했죠. 당시 100일도 안 된 딸이 있었어요. 그 작은 아이를 두고 떠날 정도로, 많이 힘들었던 거예요.
강민정 : 형부 일임에도 언니 대신 고은씨가 일을 다 처리했어요. 당시 옆에서 지켜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몸을 혹사했거든요. 가족들 챙기랴, 일하랴, 본인도 정말 힘들었을 거예요.
배고은 : 형부 돌아가시고, 언니가 완전히 넋이 나갔어요. 저라도 정신 똑바로 차려야 했죠. 사실 산업재해를 신청하면 금방 승인되는 줄 알았어요. 이렇게 힘든 줄 그땐 몰랐죠.
형부가 돌아가신 날, 혹시 기억나세요?
배고은 : 하나하나 또렷하게 기억해요. TV를 보다 잠이 들었는데, 새벽 3시쯤 전화가 왔어요. 형부가 돌아가셨대요. ‘이상한 꿈이네’ 하고 전화를 끊었어요. 정신차리고 다시 전화해 보니 현실이더라고요. 당시 제가 간호사여서 급하게 새벽 근무자에게 전화했어요. 횡설수설하며 “저희 형부가 죽어서 지금 거제도 가야 해요”라는 말만 했던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