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질의 일자리, 적당한 일자리

2024-10-03

지난달 27일 통계청이 내놓은 ‘2023년 전국 사업체 조사 결과’를 보면 고령화가 실감이 난다. 60대 이상이 대표인 사업체가 전년보다 6만3546곳(4.4%) 증가하며 전 연령대에서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반면 20대가 대표인 사업체는 70곳 느는 데 그쳤다.

연령대별 세부 통계는 이번에 공개되지 않았지만 통계청의 설명을 들어보면 옷 수선이나 미용업, 세탁업, 운수업 등에서 60대 이상이 대표인 사업체가 늘었다고 한다. 이를 보면 60대 이상의 생계형 창업이 적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8월 기준으로 전체 자영업자 중 60대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은 36.8%로 50대(27.4%)보다 높다.

지난해 60대 사업자 많이 늘어

자영업 대신 임금근로로 가야

노인 일자리 사업도 변화 필요

보수를 받고 일하는 고령자도 많다. 지난해 기준 65세 이상 고용률은 37.3%다. 노인 빈곤율과 함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상위권이다. 노후 대비가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 많다는 의미다. 이런 고용률은 정부가 주도하는 노인 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 사업이 떠받치고 있다. 올해 2조원의 예산이 배정됐고 규모만 100만 개가 넘었다. 내년에는 110만 개로 늘릴 계획이다.

60% 이상은 공공형(공익활동) 사업이다. 65세 이상 기초연금 수급자를 대상으로 한다. 하는 일은 스쿨존 횡단보도 안전관리 지도나 쓰레기 줍기 등이다. 월 30시간 일하고 29만원을 받는데 이것이 ‘일자리’냐는 논란도 있었다. 정부 사업에선 ‘사회활동’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보수를 위해 1주일에 1시간 이상 일하고 있으니 취업자 통계엔 잡힌다.

문재인 정부에서 이를 확대하자 당시 국민의힘은 ‘나쁜 일자리’라고 비판했고, 2022년 윤석열 정부 출범 초기엔 공공형 사업 삭감도 추진했다. 하지만 없던 일이 됐고 오히려 규모가 커졌다. 국민연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초고령층의 빈곤율이 높은 상태에서 당장 공공형을 줄이거나 없애는 것은 무리가 있다. 경제 형편이 어려운 노년층에 대한 소득 보전 효과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대신 사회서비스형 일자리나 시니어 인턴 같은 민간형 일자리를 확대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사회서비스형은 월 60시간 돌봄시설이나 행정업무, 소방시설 안전관리 업무를 지원하고 매달 76만1000원을 받는다. 시니어 인턴은 60세 이상 직원을 고용한 기업에 인건비 일부와 장기 고용에 따른 지원금을 주는 제도다.

지난달 24일 보건복지부와 한국노인인력개발원 주최로 열린 ‘노인 일자리 사업 20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선 단체급식업체인 CJ프레시웨이의 사례가 소개됐다. 이 회사 푸드서비스 부문 직원 6546명 중 24.9%인 1627명이 60세 이상 직원이다. 시니어 인턴 제도를 통해 지난해 회사가 채용해 계속 근무하고 있는 직원만 791명이다. 주 5일 40시간 근무가 원칙이나 탄력적으로 조정한다. 물론 주방 일을 해야 하니 쉬운 일은 아니다. 이 회사의 최상욱 부장은 “모든 어르신께 적합한 일은 아닐 수 있지만 고용 안정성이 있다는 점에서 대부분 만족하고 계시다. 다만 이런 일자리가 있다는 자체를 모르시는 분이 생각보다 많았다”고 말했다. 각 부처나 지방자치단체가 다양하게 진행하는 일자리 사업을 수요자 중심으로 잘 알릴 필요가 있겠다.

자영업자 문제나 노인 일자리 문제 역시 넓게 보면 다 연결돼 있다. 정부는 지난 7월 초 소상공인·자영업자 종합대책을 발표했는데 석 달만인 지난 2일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한 11조원 규모의 추가 지원책을 다시 내놨다. 자영업자의 어려운 상황을 고려하면 지원은 불가피하지만, 장기적으로 너무 많은 자영업자를 줄여야 하고 생계형 창업 대신 임금근로자가 되도록 유도해야 하는 게 핵심이 돼야 한다. 하지만 퇴직 후 자영업을 선택한 사람이나 고령층에 임금 근로를 하는 양질의 일자리를 공급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개인의 건강과 여건에 맞는 ‘적당한 일자리’가 현실적인 목표가 돼야 한다.

기존 노인 일자리의 복지 기능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변화는 필요하다. 무엇보다 정부 예산에 과도하게 의존하기보다 민간과 기업 중심으로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박경하 한국노인인력개발원 선임연구위원은 “공공과 민간의 융합 모델이나 베이비붐 세대와 같은 고학력 고령자의 경험과 기술을 적극 활용할 수 있는 일자리 모델을 확산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의 수요에 부응할 수 있어야만 용돈 수준의 노인 일자리에서 탈피할 수 있고, 정년과 관계없이 일하고 싶은 만큼 일할 수 있는 사회가 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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