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책] '아이가 있는 집의 질문들', 실천으로 답한 어른들

2025-11-07

[비즈한국] 요즘 한국 사회에서 ‘양육’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피로를 동반한다. 아이를 낳는 것, 키우는 것, 그리고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 모두 거대한 결심을 요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저출산 통계는 그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2025년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0.72명으로 OECD 국가 중 최저 수준이다. 아이를 키우기엔 너무 힘들어 보이는 사회, 아이를 가진다는 사실이 곧 ‘부담’이 되어버린 시대다.

'아이가 있는 집의 질문들'은 그 냉혹한 현실 위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저자들은 그 현실을 한탄하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묻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어른으로 아이 곁에 서야 할까?”

부너미는 2018년 ‘세상이 바뀌기만을 기다릴 수 없다’는 문제의식으로 모인 양육자들의 집단이다. 그들은 결혼, 가족, 성, 돌봄이라는 ‘개인적 영역’의 문제들을 사회의 언어로 끌어올리는 데 익숙하다. 2019년 ‘페미니스트도 결혼하나요?’​, 2020년 ‘​당신의 섹스는 평등한가요?’​, 2023년 ‘​우리 같이 볼래요?’​를 거쳐, 이번 네 번째 책 ‘​아이가 있는 집의 질문들’​에서는 ‘아이와 함께하는 삶’이라는 주제를 정면으로 마주한다.

책은 양육의 기술보다 태도에 관해 이야기한다. “아이와 살면 행복하냐”는 단순한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하기 위해 필요한 건 돈이나 사교육 계획이 아니라, 어른 스스로의 ‘삶의 질문’이라는 것이다. 아이의 질문은 끝이 없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어른이 세상을 대하는 태도다.

“왜 아빠 성을 따르는 게 당연하지?”, “가족이 서로의 가능성이 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힘으로 다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아들에게 어떻게 알려줄까?” 같은 질문들은 양육의 구체적인 순간에서 출발하지만, 그 너머에는 ‘우리의 삶은 어떤 가치 위에 서 있는가’라는 근본적 물음이 깔려 있다.

이 책이 흥미로운 이유는 ‘집’을 바라보는 방식에 있다. 부너미는 집을 단순한 보호의 공간으로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집은 사회의 구조가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장소라고 말한다. ‘가족이 서로의 가능성이 되기를’, ‘세상의 논리로부터 집을 지키는 법’, ‘가장 가까운 사람과의 가장 어려운 대화’ 등 각 장 제목들만 봐도 알 수 있다. 집은 사랑과 안정의 공간인 동시에, 성 역할과 경제력, 정치적 견해, 돌봄의 불평등이 고스란히 재현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예컨대 ‘왜 우리 집에서 밥하는 사람은 엄마일까’, ‘운전하는 사람은 왜 아빠일까’ 같은 질문은 오래된 습관처럼 지나칠 수 있지만, 책은 그것이 아이에게 어떤 세계관을 심어주는지를 묻는다. 집은 아이에게 세상을 미리 배우는 첫 번째 교실이다. 따라서 ‘세상의 논리로부터 집을 지킨다’는 것은 단순히 외부의 부정적 영향을 차단하는 일이 아니라, 집 안의 질서를 새로 세우는 일이다.

이 책이 단지 사유로 그치지 않는 이유는, 저자들이 실제로 곁을 바꾸는 ‘행동’을 했다는 점이다. ‘왜 아빠 성을 따르는 게 당연하지?’라는 물음 끝에 아이에게 자신의 성을 물려준 부모, 아이의 긴 머리를 두고 젠더 감수성 교육을 들은 어머니, 조부모의 돌봄노동에 정기 급여를 지급한 딸의 사례는 인상적이다.

이런 사례들은 거창한 혁명이 아니라, 일상의 결심이다. 그러나 바로 그런 결심이 세상을 바꾼다. 저자들이 강조하는 건 ‘완벽한 변화’가 아니라 ‘꾸준한 시도’다. 그 시도 속에서 아이는 ‘세상은 달라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운다.

‘아이가 있는 집의 질문들’은 표면적으로는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법’에 대한 책이지만, 더 깊이 들어가면 ‘인간이 타인과 관계 맺는 법’에 관한 책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책은 육아지침서가 아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건 양육의 노하우가 아니라 ‘함께 변화를 받아들이는 마음’이라서 그렇다.​

봉성창 기자

bo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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