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리포트] ⑤ 싱가포르 식탁에 스며든 한국 콩…두부 젤라또 '인기'(르포)

2025-12-18

콩 수급을 둘러싼 오해와 불신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정부는 생산 기반 확충과 안정적 공급 체계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산콩 재배 확대, 전략작물 지원, 수매·비축 강화, 기업 협력 모델 발굴까지 정책 효과가 현장에서 가시화되는 흐름도 뚜렷하다. <뉴스핌>은 콩 공급 논란의 사실관계를 바로잡고, 국내·외 사례를 통해 국산콩 산업이 지속 가능한 구조로 전환되는 과정을 짚어본다.

[글 싣는 순서] 콩리포트

① "콩 대란이라고?"…정부, 수입콩 안정 공급으로 혼선 차단

② 농식품부 정책 성과…전문가 "품질 강화·수요 확대 병행돼야"

③ 오사카 두부 명가에서 본 '국산콩의 힘'… 일본의 전략은(르포)

④ "프리미엄 시장 열린다"…정부·기업 손잡고 상생 모델 구축

⑤ 싱가포르 식탁에 스며든 한국 콩…두부 젤라또 '인기'(르포)

[싱가포르=뉴스핌] 이정아 기자 = 지난달 27일 찾은 싱가포르 서부 주롱 혁신지구. 현대자동차그룹 싱가포르 글로벌 혁신센터(HMGICS) 3층에 자리한 한식 레스토랑 '나오(Na Oh)'는 도심과는 떨어진 위치에도 불구하고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한지 조명이 은은하게 공간을 감싸고, 장독대와 도자기 식기가 차분히 시선을 끌었다. 화려한 장식 대신 여백이 살아 있는 공간이었다.

나오는 한국 전통 한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레스토랑이다. 김영훈 나오 셰프는 "나오는 '안에서 밖으로 나오다'라는 뜻의 순우리말"이라며 "한국 음식이 담고 있는 문화적 깊이, 고유의 맛, 장인정신을 싱가포르의 고객들에게 진정성 있게 전달하겠다는 철학을 담고 있다"고 소개했다.

나오는 한국인 최초로 미슐랭 별 세 개를 획득한 코리 리 셰프와 협업해, 한국 식재료와 전통 조리법을 현대적 미식 언어로 풀어냈다. 공간 구성 역시 한식의 철학을 반영했다. 다이닝 홀과 키친은 한옥의 안채와 사랑채에서 영감받아 배치했고, 로보틱스 스마트팜과 그 맞은편 장독대는 손님을 맞이하는 '마당'을 상징한다.

김 셰프는 "한국 건축의 중첩과 여백의 미를 현대적으로 해석해 공간 전체에 녹여냈다"며 "계절이 없는 싱가포르에 절기 별로 신메뉴를 도입해 3개월마다 변화하는, 정갈하고 건강한 제철 요리를 경험하실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최근 싱가포르에서는 한식을 '트렌디한 아시아 음식'이 아닌, 하나의 문화적 경험으로 받아들이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김 셰프는 "싱가포르 고객들은 다양한 문화에 개방적이고 미식에 대한 이해 수준이 높다"며 "단순히 매운맛이나 자극적인 요소보다, 음식에 담긴 배경과 철학까지 함께 경험하려는 수요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철학은 '장'에서 가장 또렷하게 드러난다. 나오에서는 전통 발효식품기업 죽장연의 된장·고추장·간장을 사용한다.

김 셰프는 "선조들이 오랜 시간 발효를 통해 쌓아온 지혜를 싱가포르 고객들에게 제대로 소개하고 싶었다"며 "국산 콩과 물, 소금만으로 첨가물 없이 전통 방식으로 만들고, 최소 3년 이상 숙성하는 죽장연의 장이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싱가포르 소비자의 반응은 뜨겁다. 장독대 앞에서 발길을 멈추는 손님들이 적지 않고, 국산 콩으로 만든 전통 장을 직접 맛보고 싶다는 요청도 이어진다.

김 셰프는 "싱가포르에서는 대기업의 상업용 장류가 일반적이라 전통 방식으로 만든 장을 접한 경험이 많지 않다"며 "시식 후에는 풍미에 놀라며 한국 발효 음식의 매력을 새롭게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한국 콩의 존재감은 싱가포르 도심 한복판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같은 날 저녁 찾은 싱가포르 만다린 갤러리 'Tofu(두부) G Gelato'. 한국 프리미엄 아이스크림 가게다.

이곳은 비건 두부 젤라또, 비건 하이 프로틴 두부 젤라또, 한국 고구마 젤라또, 피스타치오 젤라또, 비건 검은깨 젤라또, 초당 옥수수 젤라또 등 한국의 식재료를 사용한 젤라또를 판매한다.

이 매장을 운영하는 Initia group은 한국산 두부만을 고집한다. 주요 식자재 역시 한국에서 직접 소싱해 수입한다. 오후 8시가 조금 지나자, 인기 메뉴에는 '품절' 표시가 붙었다. 두부와 검은깨 젤라또는 이미 주문이 막힌 상태였다.

K팝을 좋아한다는 리사(가명) 씨는 "X(구 트위터)에서 이곳이 힙한 디저트 가게로 유명하다"며 "한국 두부가 이렇게 맛있는지 몰랐다"고 전했다. 두부젤라또는 현지 소비자 반응에 힘입어 2호점 오픈을 준비 중이다.

한국 콩을 고집하는 움직임은 장류에서도 이어진다. 경북 포항 죽장면에 뿌리를 둔 농업법인 죽장연은 마을 주민들과 함께 국산 콩으로 장을 담가온 곳이다.

정연태 죽장연 대표는 "농한기에 주민들이 콩 농사를 짓도록 장려하고, 수확한 콩은 전량 매입한다"며 "농협 수매가보다 kg당 300원에서 500원 정도 더 얹어 사들이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했다. 연간 수매 물량은 약 10톤 규모로, 콩이 부족할 때도 인근 지역에서만 조달한다.

이 같은 원칙은 해외 시장에서도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죽장연의 올해 수출액은 약 2억원으로 전년 대비 두 배 수준으로 늘었다. 미국 H마트를 통한 첫 수출 이후 컨테이너 단위 발주가 이어지고 있다. 국산 콩과 전통 발효라는 정체성이 경쟁력이 된 셈이다.

전통 장류의 해외 진출은 기순도 명인의 간장에서도 확인된다. 고려전통식품을 이끄는 고훈국 대표는 "기순도 명인의 간장과 된장은 프랑스 고급 백화점에 납품되고, 미국 시장에서도 꾸준히 수출되며 반응이 좋다"며 "전통 방식으로 만든 장류를 찾는 해외 셰프와 소비자층이 분명히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기업 중심의 수출 구조 속에서도 전통 장문화의 정체성을 지킨 제품들이 조금씩 시장을 넓혀가고 있다"며 "최근에는 한우 볶음 고추장과 딸기 고추장 등으로 품목을 확장해 새로운 시장도 두드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plum@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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