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3년, 위기와 초격차의 경계선

2025-10-21

'삼성전자 매출액 2023년 2589조원→2024년 300조원→2025년(추정치)→323조원. 영업이익 2023년 65조원→2024년 32조원→2025년(추정치)→35조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대한민국의 1등 기업이자 굴지의 글로벌 기업인 '삼성'을 이끌고 3년간 이룬 성과다. 삼성전자의 외형적인 성장을 이끌어냈다는 사실은 숫자에서도 보이듯 부정할 수 없다. 그는 취임과 동시에 초격차 확보를 위해 고삐를 죄었고 기술력 확보에 아낌없는 투자도 감행했다.

물론 이재용 회장의 '삼성'이라는 3년간 여정은 쉽지만은 않았다. 글로벌 시장 D램 1위 자리를 33년만에 빼앗기는 등 삼성의 명성에 점차 금이 가기 시작하면서 위기설에 휩싸였다는 점에서다. 지금껏 초격차를 위해 달려왔던 만큼 삼성전자가 다시금 명성을 찾으려면 혁신과 속도감도 동반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경쟁사들은 이들을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기술에 승부 건 이재용의 3년

21일 재계에 따르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지난 2022년 10월 27일 회장 자리에 올랐고 오는 27일 취임 3년을 맞는다.

이재용 회장은 취임 당시인 지난 2022년에도 별도의 행사나 취임사 발표 없이 예정된 일정들을 소화했다. 업계에서는 이재용 회장이 올해도 별도의 행사나 메시지 없이 지나갈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3년간 이재용 회장은 누구보다 바쁜 나날들을 보냈다. 그가 집중한 것은 기술이었다. 제조업 기반의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기술력 확보가 당연한 얘기이겠지만 그만큼 중요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지난 2022년 10월 이재용 회장이 취임 후 사장단 오찬 간담회에서 강조했던 것도 "창업 이래 가장 중시한 가치가 인재와 기술"이라며 "성별과 국적을 불문하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인재를 모셔오고 양성해야 한다. 세상에 없는 기술에 투자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의 경영철학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 이재용 회장은 취임 후 기술 경쟁력 확보를 위해 투자도 아끼지 않았다. 우선 삼성전자의 시설투자 금액은 2023년 53조1139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찍었으나, 이듬해인 2024년 이보다 소폭 늘어난 53조6431억원이었다.

또한 연구개발비용에도 2023년 28조3400억원, 2024년 35조원을 투입했다. 올해 상반기 역시 18조원을 연구개발비용으로 썼는데 이는 역대 반기 최고 수준이다. 이재용 회장은 '세상에 없던 기술'을 위해 통큰 비용을 투자하는 등 초격차에 진심이었던 셈이다.

이재용 회장의 또 다른 야심 사업인 바이오사업도 빼놓을 수 없다. 바이오사업은 고(故)이건희 삼성전자 선대회장이 지난 2010년 신수종 사업 중 하나로 낙점 짓기는 했으나, 당시 이재용 회장의 강력한 설득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관계자들은 전한다. 특히 바이오 사업은 이재용 회장이 직접 진두지휘하며 키워왔다는 전언이다. 바이오 사업에 대한 이재용 회장의 남다른 애정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재용 회장은 바이오 사업을 제2의 반도체 사업으로 키우고자 했다. 마치 반도체 파운드리 시장에서 압도적 부동의 1위 업체인 TSMC처럼 키우겠다는 의지가 있었다고 한다. 삼성이 2022년 향후 10년간 바이오 사업에 7조5000억원을 추가 투자하겠다고 밝혔던 것도 궤를 같이 한다.

삼성이 바이오 사업에 뛰어든다고 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시장에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지금은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지난해 매출 4조5473억원, 영업이익 1조3201억원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 최초로 '4조 클럽'에 올라섰고 올해 상반기도 매출 2조5882억원, 영업이익 9623억원으로 전년 대비 성장세를 이뤘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지난 2022년 10월 제4공장 가동으로 총 42만 ℓ를 확보, 바이오의약품 위탁 개발·생산(CDMO) 분야에서 명실상부한 글로벌 1위 기업에도 등극했다. 이는 바이오 사업에 뛰어든 지 10년 만에 이룬 성과다. 올해는 5공장 가동으로 생산능력이 78만4천ℓ까지 늘었다.

지난 9월에는 미국 소재 제약사와 약 1조8000억원 규모의 초대형 위탁생산 계약을 따내기도 했다. 이는 창립 이래 두번째 규모의 초대형 수주 계약이다. 이보다 앞선 올해 1월 유럽 제약사와 약 2조원 규모의 계약을 맺은 바 있다.

경쟁사 따돌릴 속도감 있는 초격차 필요

다만 향후 이재용 회장이 삼성의 초격차를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혁신과 속도감도 무시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삼성전자의 현주소를 보면 마냥 안심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라는 점에서다. 이재용 회장이 올해 3월 임원들에게 '사즉생'의 각오를 다진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우선 삼성전자의 '빛나는 세 개의 별' 중 하나와 같았던 반도체 부문 경쟁력이 흔들린 게 가장 뼈아프다. 삼성전자는 그간 인공지능(AI)이 불러온 고대역폭메모리(HBM) 붐에 편승하지 못했다. 초기 대응에 실기하면서다.

그로 인해 D램 시장점유율에서 차츰 밀려났고 33년간 지켜온 글로벌 D램 시장점유율 1위 타이틀을 SK하이닉스에 빼앗겨야 했다. 삼성전자에서 반도체 부문을 담당하는 DS부문의 영업이익은 진즉 SK하이닉스에 뒤처졌다. 심지어 올해 상반기까지 실적으로 보면 SK하이닉스는 삼성전자 전사 부문 합산 영업이익도 10조원 가까이 앞서 있다.

TV, 모바일, 디스플레이 등 나머지 주요 사업들도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중국의 맹추격에 쫓기고 있다. 중국 기업들은 저가 전략을 통해 전방위적으로 국내 기업들을 위협 중이다.

경고등이 가장 세게 켜진 곳은 TV사업이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TV 시장에서 19년 연속 출하량 기준 1위를 지켜왔을 정도로 TV 사업에서 돋보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었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준 TV시장점유율은 출하량 기준 삼성전자가 18.1%로 1위이고 TCL 14.2%, 하이센스 12.1%, LG전자 10.5% 등이었다. 삼성전자가 여전히 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 중이지만 2020년 21.9%에 달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만족할 만한 성과는 아니다. 중국 기업들이 시장점유율을 점차 넓혀간 탓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근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에서 희소식이 연이어 들리며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수년간 연간 적자를 기록하며 고전했던 파운드리 부문은 미국 테슬라, 애플 등 굵직한 고객사들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고 번번이 쓴맛을 봤던 HBM 시장의 큰손인 엔비디아의 HBM3E 12 제품의 품질 승인도 임박한 것으로 알려진다.

더불어 올해 모바일 신제품인 갤럭시S25 시리즈에서 철저히 외면받았던 자사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스(AP) '엑시노스 2600'도 내년 상반기 신제품 갤럭시S26 시리즈에 탑재될 예정이다. AP는 스마트폰 두뇌 역할을 하는 칩이며 엑시노스는 삼성전자 시스템LSI 사업부가 설계하고 파운드리 사업부가 양산한다. 즉 갤럭시 신제품에 채택된다면 시스템LSI 사업부와 파운드리 사업부의 실적 개선은 물론 모바일 사업을 담당하는 모바일경험(MX)사업부의 비용 절감도 기대할 수 있다는 얘기다.

사법리스크 해소로 과감한 리더십 기대

무엇보다 이재용 회장이 오랜 기간 그의 발목을 잡았던 사법리스크를 올해 모두 떨쳐냈다는 점에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이재용 회장은 지난 7월 대법으로부터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 합병 의혹'과 관련 재판에서 무죄를 확정받았다. 2016년 국정농단 사태로 불거진 사법리스크가 약 10여 년 만에 모두 해소된 것이다.

삼성 내부에서는 이후 "삼성이 달라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오너인 이재용 회장이 직접 발로 뛰면서 삼성전자 경영 추진에 점차 힘이 실리고 있다는 점에서다. 실제 이재용 회장은 사법 족쇄를 끊어낸 후 미국의 선밸리 콘퍼런스 참석, 한미 관세 협상 지원, 한미 정상회담 경제 사절단 등의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연이어 출장길에 오르기도 했다. 테슬라와 애플을 고객사로 확보했다는 소식도 이 시점과 맞물려 전해졌다.

M&A 영역에서도 속도가 붙는 모양새다. 삼성전자는 올해에만 미국 마시모 오디오사업부(인수액 3억5000만달러), 독일 냉난방공조 업체 플랙트그룹(인수액 15억 유로), 미국 디지털헬스케어 젤스(인수액 비공개) 등을 연이어 품에 앉기도 했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얼마 전 위기설이 대두됐을 정도로 경쟁사에 뒤쳐지고 따라잡혔다는 평들이 많았다"면서도 "다만 그간의 기술 경쟁력에 대한 제고 노력들이 점차 반영되면서 최근에는 회복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이재용 회장이 사법리스크를 해소하면서부터 현안들을 직접 챙기고 방향성을 제시하면서 구심점이 됐기 때문아닌가 싶다"며 "그가 이제 운신의 폭이 넓어진 만큼 경영에 있어서도 속도감 있는 추진이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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