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컬처 리포트] '대도서관'을 보며…아티스트 건강권 지킬 방법은?

2025-09-17

[비즈한국] 2011년 설날 연휴 직전인 1월 29일, 경기도 안양시 석수동 다세대 주택 월셋방에서 32세의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이 숨진 채 발견되었다. 추운 겨울, 최고은 작가가 발견된 곳은 1층의 냉방이었다. 2층에 사는 아주머니에게 남긴 메모지는 깊은 울림을 주었다.

“그동안 도움 많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창피하지만,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어서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들겨 주세요.”

2000년대 한국에서 누군가 굶주림 끝에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은 슬픔을 넘어 매우 충격적이었다. 최고은 작가의 죽음으로 인해 2012년 11월 19일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설립되었다. 그런데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최고은 작가를 가르친 소설가 김영하는 그해 2월 14일 홈페이지에 다른 사연을 올렸는데 이는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 내용 가운데 핵심은 이렇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고은이가 굶어 죽었다고 당연히 믿는다는 데 놀랐습니다. 아마도 최초로 보도한 한겨레신문의 선정적 기사 때문일 겁니다. 신문에서 보도한 쪽지도 사실과는 조금 다릅니다. 물론 그녀가 풍족하게 살아갔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의연하고 당당하게 자기 삶을 꾸려갔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직접 사인은 영양실조가 아니라 갑상선기능항진증과 그 합병증으로 인한 발작이라고 고은이의 마지막을 수습한 친구들에게 들었습니다.”

김영하 작가는 최고은 작가의 사인이 굶주림, 즉 아사가 아니라는 점을 가장 먼저 강조했다. 최고은 작가가 경제적으로 어려워도 당당했고 주체적이었다고 했다. 더구나 최고은 작가가 남긴 메모 기사도 사실과 달랐다. 최고은 작가가 남긴 원본 편지는 다음과 같았다.

사모님, 안녕하세요.

1층 방입니다.

죄송해서 몇 번을 망설였는데...

저 쌀이나 김치를 조금만 더 얻을 수 없을까요...

번번이 정말 죄송합니다.

2월 중하순에는 밀린 돈들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전기세 꼭 정산해 드릴 수 있게 하겠습니다.

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항상 도와주셔서 정말 면목없고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1층 드림

언론 보도는 한 달 안에 받을 돈이 있다는 점을 삭제하고 굶주림이라는 극적인 설정을 부각했다. 아마도 작가의 삶이 곤궁함을 강조하고 싶었을 것이다. 특히 주목해야 할 대목은 질병이다. 굶어서 죽은 것이 아니라 평소에 지병이 있었다. 만약 최고은 작가가 일찍 그 질병을 진단받고, 제대로 치료를 받았다면 그의 운명은 달랐을 것이다. 젊은 사람이 갑상선기능항진증과 그 합병증으로 인한 발작 때문에 목숨까지 잃을 거라곤 생각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청춘 예술가들은 의료의 사각 지대에 있기 쉽다.

지난 9월 5일은 가수 보아의 오빠이자 뮤직비디오 감독 권순욱이 세상을 떠난 지 4주기가 된 날이다. 고 권순욱은 지난 2021년 9월 5일 복막암 투병 중 세상을 떠났다. 투병을 공개한 지 약 네 달 만이었다. 나이는 고작 향년 39세였다. 그는 팝핀현준 ‘사자후’ 뮤직비디오로 데뷔한 뒤 케이팝 뮤직 비디오의 중심에 있었다. 걸스데이 ‘반짝반짝’, 마마무 ‘피아노맨’, 보아 ‘온리 원’, ‘키스 마이 립스’ 등 뮤직비디오를 만들었고 약 14년간 총 500여 편의 광고, 뮤직비디오, 드라마를 연출했다. 그는 SNS에 올린 글에 “암의 발병(원인)은 스트레스였다”면서 “발병하기 전 해에는 한 해 동안 70편을 제작하고 온갖 스트레스가 있었다”고 했다.

유명한 콘텐츠 크리에이터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 대도서관이 심근경색으로 목숨을 잃어 큰 충격을 주었다. 그는 “잠을 많이 못 잤다”, “아침부터 헤어 메이크업 받느라 3시간 잤나 싶다”라고 말했다. 그런 피곤한 상황에서도 라이브 방송을 약 5시간 30분 진행했다. 지난 2010년부터 활약한 1세대 크리에이터로 구독자 144만 명을 ‘BJ계 유재석’, ‘유튜브 국민MC’라고 불렸지만 노동 강도는 매우 강했다. 그는 평소에도 심장이 찌릿하다고 말했고 선친도 심근경색으로 타계했다. 가족력이 있는 상황인데 과로를 했던 것이다.

과로로 인한 돌연사는 40대에게 흔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연구 논문을 보면, 과로(주 60시간 이상 장시간 노동)는 심혈관질환 발생 위험을 47.7%, 전체 사망 위험을 9.7% 높였다. 영국 공무원 대상 연구에서는 3시간 넘게 초과 근무하면 심장질환 위험이 70%가량 증가했다.

콘텐츠 크리에이터나 아티스트들은 야간작업이 많다. 낮과 밤이 뒤바뀌며 식사도 불규칙해지고 운동조차 하기 어려워진다. 프리랜서 아티스트는 더욱 그러하다. 며칠 밤새서 작업하는 것이 예술혼을 불사르는 행위라는 인식이 아직도 업계에 만연하다. 미래세대는 자기 몸을 촛불처럼 불사르며 창작하지 말아야 한다. 앞선 권순욱 감독은 “젊은 나이에 암에 걸린다는 건 정말 치료 자체가 굉장히 어렵고 불과 며칠 만에 몇 단계씩 기수를 올릴 수 있다는 것도 말씀드리고 싶다”, “암은 정말 모든 합병증을 다 만들어내는 것 같다”라고도 말했다. 젊은 아티스트의 건강에 대해서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케데헌으로 케이팝이 주목받고, 박진영 JYP 대표가 대중문화교류위원회 공동위원장이 되었다. 이참에 아티스트들의 건강을 위한 제도가 제대로 마련되면 좋겠다. 특히 혼자 지내면서 예술혼을 불태우는 아티스트들의 건강 검진과 치료가 적기에 이뤄지도록 아티스트 건강지원 법을 만드는 것은 어떨까. 그들은 우리의 중요한 문화 자산이며 K콘텐츠 창작자다. 건강한 작품 활동을 통해 국민에게 계속 치유와 희망을 주는 그들의 존재는 소중하다.

청소년 아이돌의 건강권을 규정한 ‘대중문화예술산업법’이 2024년 12월 3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는데, 현재 제대로 시행되고 있는지도 점검이 필요하다. 특히 연습생들의 실태 파악과 그들의 건강상태에 대한 전수 조사가 필요하며, 여성 청소년들의 건강 검진과 치료가 전면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정부가 아티스트의 건강권을 잘 보장하는 기획사·제작사에 인센티브를 파격적으로 지원하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다.

필자 김헌식은 20대부터 문화 속에 세상을 좀 더 낫게 만드는 길이 있다는 기대감으로 특히 대중 문화 현상의 숲을 거닐거나 헤쳐왔다. 인공지능과 양자 컴퓨터가 활약하는 21세기에도 여전히 같은 믿음으로 한길을 가고 있다.​​​​​​​​​​​​​​​​​​​​ ​​​​​​​​​​​​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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