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산책] 돈의 역할

2024-06-30

역사적으로 돈의 역할은 여러 차례 달라졌다. 1596년 셰익스피어의 소설 ‘베니스의 상인’에서 돈은 고리대금업자의 인정 없는 이익 추구의 수단이었다. 중세기 돈의 의미는 오늘날과는 아주 달랐다. ‘돈’ 하면 고리대금업자였다. 고리대금업자는 혐오의 대상이었고 고리대금업을 많이 했던 유태인들은 차별의 대상이 됐다.

이러한 돈의 역할이 한차례 달라지는 계기가 등장했다. 돈이 착취를 통해 이익을 불리는 수단이 아니라 노동생산성이 큰 기업을 지원해 이윤을 낳고 국가의 부를 증대시키는 역할을 했다.

이런 전환은 1776년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때문이었다. 애덤 스미스에 따르면 부가가치는 남의 것을 빼앗는 데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노동생산성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노동생산성이 높은 제품이 잘 팔리고 기업의 이윤도 커져 국가의 부를 크게 했다. ‘국부론’ 이전에는 돈이 약탈의 대상이었다면 이후에는 생산성이 큰 기업의 이윤을 통해 국부를 증대하는 수단이 됐다.

1930년대 세계 대공황 이후 돈의 역할은 한차례 더 변화했다. 법과 제도를 통해 은행제도가 정착됐고 주식시장의 신뢰성이 강화됐다. 금융기관은 금융시장에서 예금과 주식으로 자금을 모집해 경쟁력이 더 큰 기업에 중개하는 역할을 했다. 예금과 주식으로 돈을 맡기면 그 대가로 나중에 더 큰 이익이 돼 돌아왔다. 돈의 이러한 역할은 효율적 자원배분이라고 불렸다. 역설적으로 대공황이라는 위기를 거치면서 돈은 환골탈태했다. 돈의 역할은 돈을 둘러싼 사회적 관계에 따라 결정된다.

오늘날에 이르러 돈의 역할이 한번 더 변화하려고 하고 있다. 애덤 스미스 이후로 노동생산성이 높은 기업을 지원하거나 자원의 효율적 배분 역할이 돈의 주된 관심이었다면 이제는 한단계 더 나아가 사회구성원 각자 인간다운 삶과 행복을 구현하는 수단으로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 이를 동반성장의 역할이라고 부를 수 있다. 과거에는 국부를 높이기 위한 기업의 독점적인 지위가 용인되기도 했으나 이제는 사회구성원의 후생을 훼손하는 기업은 단호한 책임 추궁을 벗어나지 못한다. 자연과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염려하고 개인의 후생을 고려할 줄 아는 기업이 성장의 기회를 얻게 된다. 사회가 성숙해지고 사회구성원 각자의 가치가 중시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아울러 이제 돈은 기업의 이윤에 따라서가 아니라 누군가의 모험과 창의성에 따라 그 가치가 확대된다. 정보와 기술이 이제는 누구라도 원하면 이용할 수 있는 세상이 돼가고 있기에 누가 더 창의적 가치를 꿈꾸느냐가 중요해지고 있다.

100세 시대에 접어들면 은퇴 후 여생을 위한 자금으로의 역할이 중시된다. 사람에게는 누구도 예외 없이 은퇴 시점이 있다. 은퇴를 하면 더이상 근로소득은 없고 모아둔 돈으로 살아가야 한다.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은퇴 후를 대비해 자금을 모아 여생을 보장하는 것을 돈의 개인재무 역할이라고 한다. 일평생 예산관리를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개인재무의 가르침이다. 100세 시대를 맞이해 우리나라는 빠르게 초고령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개인재무의 관점에서 우리나라 고령층은 성공적인 준비를 하고 있는가? 우리나라 고령층의 상대적 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높다. 미국·일본의 두배에 이르고 프랑스의 거의 10배에 이른다. 이를 볼 때 개인재무 관점에서 고령층의 처지는 성공적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김자봉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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