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요리사>의 한 장면일까. 화면 중앙 검은색 옷 입은 요리사가 다 조리된 요리를 접시에 올리고 있다. 왼쪽의 하얀색 옷을 입은 조리사는 손에 뭔가를 들고 있는데, 적란운처럼 뭉게뭉게 피어오른 연기 탓에 무엇인지 알아보기 어렵다.
박진아 작가는 갤러리 전시장이 아닌 레스토랑 주방을 방문했다. 우연히 살짝 열린 문틈으로 주방의 치열한 노동 현장을 목격했다. 하앟게 피어오른 연기,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수평으로 뻗은 조리대와 수직으로 걸린 프라이팬···분주한 주방의 풍경이 박진아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국제갤러리 레스토랑 주방 풍경을 담은 ‘키친’ 연작은 그렇게 탄생했다.
일상의 순간을 스냅 사진 찍듯 캔버스로 옮겨온 박진아가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에서 개인전 ‘돌과 연기와 피아노’를 열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박진아는 레스토랑 주방의 분주한 모습, 피아노 공장에서 벌어지는 복잡한 제작공정, 전시가 열리기 전 작품 설치가 한창인 미술관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 박진아는 “ ‘백스테이지’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그렸다. ‘관계자 외 출입금지(staff only)’라고 적힌 푯말 뒤에 가려져 있지만 늘 긴장감이 흐르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순간을 포착한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여러 시간대의 동작을 한 화면에 담은 것을 알 수 있다. 가령 ‘키친 01’(2022)엔 레스토랑 쉐프가 가운데에선 요리를 접시에 담고, 왼쪽에선 동시에 다른 재료를 만진다. 다른 그림들도 자세히 보면 같은 인물이 동시에 등장하며 서로 다른 일을 하고 있다. 현장의 순간을 기록한 사진에서 출발하지만, 박진아는 사진 속 순간을 조합해 자신만의 회화적 장면으로 재탄생시켰다.
일하는 이들의 분주한 움직임 속에서 박진아는 조형미를 발견했다. ‘키친’ 시리즈가 조리대와 조리기구가 복잡하게 수직, 수평으로 배열된 모습에서 조형미를 찾았다면, 미술관 조명을 설치하는 ‘분홍 방의 조명’(2023)은 화면 가운데를 수직으로 가르는 푸른색 사다리차와 분홍색 벽면에 조명이 비쳐 만들어내는 주황빛의 번짐이 강조되어 나타난다.
박진아가 독일 바이로이트에 위치한 슈타인그래버 피아노 공장을 방문해 공장 내부를 그린 그림들도 흥미롭다. 나무로 피아노의 뼈대를 조립하는 공정, 건반이 없는 피아노를 손질하는 모습, 피아노가 최종 출고되기 전 최종 점검을 위해 늦은 밤 텅 빈 공장에서 연주되는 피아노의 모습 등을 담았다.
박진아는 일하는 이들의 뜨겁지만 차갑기도 한 집중의 순간을 화폭에 담았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하는 노동자의 손길과 눈빛에서 예리한 긴장감이 묻어나는 작품들이다. 동시에 이를 한 발짝 떨어져 흥미롭게 관찰하는 작가의 시선이 느껴지는 그림들이다. 1월26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