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의 성공은 내러티브의 성공이다.
반도체 분야 시총 1위 엔비디아의 주가가 지난달 27일 역사에 기록될 충격적인 폭락을 경험했다. 중국판 챗GPT로 불리는 딥시크가 훨씬 적은 수의 반도체칩과 개발비로 개발돼 성능도 뒤지지 않는다는 주장이 뉴스로 퍼져나갔기 때문이다. 이 주장의 사실 여부와 반도체 시장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지에 대해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반도체는 소재·소자·단위공정·장비·설계·집적공정의 총합으로 만들어진다. 초기에는 주로 소재·소자·단위공정 중심으로 기술이 발전하다가, 이제는 모든 요소를 동시에 최적화해야만 수율, 즉 생산된 제품 중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제품의 비율과 성능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단계에 와 있다. 인공지능(AI) 시대에 필요한 초저전력기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소프트웨어까지 최적화해야만 한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던 참이었다. 딥시크의 주장이 검증을 통과하면, 하드웨어가 다소 부족하더라도 소프트웨어 효율화로 시스템 성능을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한 강력한 사례가 될 수 있다.
이번 성취는 ‘더 큰 언어 모델, 더 많은 반도체칩,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해야 더 강력한 인공지능이 된다’는 기존 개발 모델에 일침을 가했다. 딥시크에 대한 확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량원펑(梁文鋒·사진), 뤄푸리(羅福莉) 등 개발자들에게 관심이 쏠리고 있다. 중국 국내파 연구원들의 창의성과 엄청난 연봉도 화제다. 뛰어난 인재들을 영입하여 창의적인 성과를 도출하고, 그에 걸맞은 파격적인 보상을 제시하는 전형적인 자본주의 시스템의 힘이 중국의 기업에서 재확인됐다는 점도 주목해볼 만하다.
국내 반도체 기업의 경우를 보자. 전 사원을 대상으로 하는 인센티브가 얼마가 될지에 대한 협상 과정이나 결과는 매년 신문 지면과 방송 화면을 장식한다. 정작 누가 기술적인 성과를 주도적으로 이끌어냈는지, 그들에게 어떤 파격적인 보상이 주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보도는 없다. 아마도 당사자들을 숨기거나 관심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보도할만한 파격적인 보상이 없는 것이 그 이유라면 더욱 큰 문제다.
이번 쇼크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자본주의 영웅 내러티브’가 기술 경쟁의 주요 요소라는 것이 재확인됐다. 대기업 회장들이 앞장서서 영웅 서사를 창출해야 한다. 세계적인 성과를 끌어낸 기술분야 영웅, 위기를 극복하는 데 앞장서고 있는 경영분야 영웅의 성공담을 널리 알려야 한다. 그들에게 주어진 파격적인 보상의 내용도 보도로 알려주고, 역사에도 기록해야 한다. 그래야 인재들이 기술·경영 영웅시대의 주인공을 꿈꿀 것이다.
이병훈 포스텍 반도체공학과 주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