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한 잔] 미주탕

2025-12-26

김이 모락거리는 모든 것들이 그리운 겨울, 그중 압권은 목욕탕이다. 수증기 가득한 온탕의 나른함, 명절 즈음의 북적거림, 이태리타월의 쓰라림을 잊게 해 주던 바나나 우유의 달콤함까지. 저마다 목욕탕에 얽힌 추억이 있다. 이 뜨끈한 시간을 위해 초기에는 나무나 석탄, 폐타이어를 땔감으로 쓰다가 나중에는 기름으로 보일러를 돌렸다. 매연 때문에 굴뚝을 올려 연기는 주택가 위로 뿜어내야 했다. 별다른 장비도 없던 시절 간판장이들이 페인트로 목욕탕 문양과 이름을 새겨넣은 이 굴뚝은 동네 이정표이기도 했다.

어느 도시에서나 흔해 보이는 이 목욕탕 굴뚝이 유독 높고 많은 도시는 흥미롭게도 부산이다. 개항과 함께 온천 문화를 일찍 받아들인 데다 한국전쟁 당시 피난 수도로서의 인구 밀집은 제대로 씻을 곳이 필요했다. 부산으로 흘러온 이들은 대게 경사진 곳에 정착했다. 경사진 산 중턱 집들이 빼곡한 동네의 굴뚝은 집보다 높기 위해 30m를 훌쩍 넘기기도 했다. 부산에는 아직도 300개가 훌쩍 넘는 목욕탕 굴뚝이 있지만 더는 연기를 뿜어내지 않는다. 가스보일러를 이용한 지 오래인 데다 대중목욕탕 문화 자체가 사그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철거가 필요하지만 비용 문제로 방치된 경우도 허다하다.

사진가 박종우가 거대 도시 부산의 시각적 상징으로 목욕탕 굴뚝을 택한 건 이런 내력 때문이다. 가끔 부산을 오가던 유년시절 그의 기억 속 도처에 목욕탕 굴뚝이 있었다. 그는 부산의 조밀한 동네를 누비며 목욕탕 굴뚝의 초상 연작을 완성했다. 촘촘한 건물 사이로 키 큰 굴뚝을 온전히 보여주는 일은 꽤 시간과 노력이 있어야 하는 과정이었을 테다. 고층 빌딩을 배경으로 우뚝 솟은 미주탕 굴뚝의 손글씨와 빛바랜 파란색 페인트는 부산의 그때와 지금 사이에서 여전히 존재감을 발한다.

송수정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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